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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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집의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사라지고 집 안에 꼼작없이 갇히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여기는데 이 책의 설정처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책 거대한 상자처럼 변한다면 과연 어떨까?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공간이 순식간에 위험한 장소로 변하는 신선한 설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도, 창문도 사라진 집에 갇혀 버린 남매 해리와 해수는 처음에는 당황하고 절망하지만, 점차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일상적인 재난,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성장하며 이야기 속을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일어난 해수가 현관문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놀라 누나인 해리를 깨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현관문이 사라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의 창문마져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전화도 되지 않고 인터넷, TV도 되지 않는다. 벽을 두드리고 휴대폰을 수십번 껐다 켜도 소용 없다. 또, 인터폰을 이것저것 눌러보아도 역시나 작동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해수와 해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코로나 19라는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게 해리와 해수가 처한 상황은 결코 낯설지 않다. 집은 우리를 보호하든 둥지이자, 때로는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다.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채 문 없는 집에 갇힌 남매는 혼란스럽고 막막하지만 어린이다운 긍정과 유머로 현실을 헤쳐 나간다. "문이 없어서 못찾는 거 아니야"라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은 그대로 있잖아. 119 구조 대원들이 벽을 부수고 구출해줄 거야"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럼 우리...... 오늘은 학교 못 가겠지?"라는 대화에서 예상치 못한 자유에 대한 은근한 기대마져 엿보인다.


가둬진 현실이 주는 공포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층간 소음을 걱정하며 까치발로 다니던 일상이 사라지고, 구조 요청을 위해 음악을 크게 틀며 신나게 뛰논다. 엄마의 금지령을 깨고 가스불을 켜서 직접 라면을 끓이며, 깨끗한 벽지에 낙서를 하는 순간,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의 놀이로 변모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고군분투가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유쾌한 버티기는 온전하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해수는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유일하게 접속 가능한 동영상 앱 '아이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따뜻한 응원만은 아니다. "딱 보니 주작", "조회 수 벌려고 꾸민 일"이라는 악플이 달리고 심지어 경찰마저 의심한다. 비극적인 상황조차 연출로 의심받는 현실,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고립감은 점점 깊어져간다. 이 장면들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조차 쉽게 의십하고 가볍게 소비하는 현실의 단면을 날카롭게 조명하게 만든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재난,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해리와 해수의 고군분투는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더욱 깊이 와닿는다. 과연 남매는 문과 창이 사라진 집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좁은 집 안에서 갇힌 채 점점 더 지쳐가던 해리와 해수에게, 유정란을 부화시키지는 해수의 장난 같은 제안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새로운 희망이 된다. 둘은 정성을 다해 알을 돌보며 작은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마침내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순간, 그 조그마한 투쟁이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제 그들은 구조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문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한다. 두려워하던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내딛는 이들의 선택으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은 단순한 탈출 이야기만은 아니다.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상상을 하고 직접 시도해 보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또한, 만화와 그림책, 일러스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메작가의 선명한 색감과 과감한 화면 구성으로 묘사된 그림은 해리와 해수의 모험을 아주 역동적으로 담아내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한층 높인다. 불시의 재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긍정의 힘과 웃음을 잃지 않고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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