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서 밖의 복음서 - 예수의 또다른 가르침을 찾아서
이재길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성서 밖의 복음서 독후감 - 이재길 지음 / 정신세계사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어릴적에 피흘리는 예수상에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에 있는 결가부좌 불상을 보고 어떤 친구들은 무섭다고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명상에 잠긴 그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였었다. (그렇다고 절에 다니지는 않았음^^)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어릴적에 느낀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
성장하여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보니, 가부좌 틀고 앉아있다고 해서 평화와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요, 십자가에 매달린다고 해서 고통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인류의 죄를 어느분이 대신했다는 말도 전혀 믿지를 않는다만.
인류의 원죄설 내지, 독선적인 몇몇 개신교인들의 교회중심적 신앙에 거부감이 들어서일까?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관심이 들었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은 영지주의 서적들이었다.
세계사를 약간 자세하게 들여다 본 덕분에, 현재의 기독 바이블은 로마제국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상당한 왜곡이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고, 뭔가 물들지 않은,,,초기 교회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책들을 원했던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이러한 자료들은 여러 곳에서 등장하였으며, 인터넷 시대에서는 더욱 더 쉬운 일이었다.
성서 밖의 복음서는 이러한 영지주의 문서들을 모아서, 엮은이의 역주와 해설을 붙인 책이다.
표지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여, 손가락을 창에 찔린 상처에 넣어보고서야 믿었다는 도마의 그림이다.
도마는 예수의 형제(가족)였는데, 그런 그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처를 만져보고서야 알았다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구세주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가 있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없지 않은가. 손으로 만져보면 그가 참 구세주인지 알 수 있으니...^^)
이재길씨의 서문이 전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재자(대속자)가 필요한 자는 화가 있다. 스스로 은총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영지주의에서는 원죄라든가 대속사상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스스로 안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 교부사상가들에 의해 정립된 “원죄” 개념은,,,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거의 모든 자를 더러운 죄인 으로 보는 작금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한다. 신 앞에서 교부가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은, 원죄설과는 아주 다르지 않는가.
도마복음서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면, 마치 선어록을 읽는 것 같은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역주에서도 중국 선사들의 일화를 여러번 소개한데서 그 유사함을 알게된다. 지금 바이블의 4복음서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신격보다는 그 가르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고, 종교를 절대권력화 하면서 실지로 이득을 본자는 누구였을까?
정말로 말씀-복음- 을 듣는 자에게 도움을 주려 했다면, 무지를 벗기려 했다면(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말씀의 내용에 중심이 있지, 사건이벤트 내지는 신격화에 중심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상식적 관점에서도 영지주의 문서의 진실성이 드러난다고 느낀다.
요한의 비밀서 에는 질투많은 하느님인 얄다바오트 에 의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읽다가 놀란 것은, 구약바이블의 신은 바로 이 얄다바오트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인간을 만든 이유가,,,인간이 얄다바오트와 그 권속들에게 빛이 되게, 빛의 권능을 주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얄다바오트가 인간을 만들었지만-수많은 부하들에게 시켜 인간의 각 지체를 조립(?) 하였다- 그 인간이 움직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그 어머니(소피아여신)의 빛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인간은 그 얄다바오트보다 더욱 현명하고 빛나는 존재이므로, 그 부하들이 이를 알고, 지상으로 인간을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빛을 회복하여 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신은, 그 정체가 우주의 주재자가 아니고, 애초에 불완전한 자였고(그 어머니가 홀로 불완전하게 낳았다고 함), 그가 그 어머니의 빛을 훔쳐서 인간을 만든 이유도, 인간에게서 광명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
나는 매트릭스 3부작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였는데, 그것이 바이블에 베이스를 둔 것임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렇게 영지주의 전통을 정확하게 따르는 영화인줄은 몰랐었다!
매트릭스의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스미스 요원은 오라클을 어머니 라고 불렀다. (3편에서 흡수하러 가기 전에)
시스템이 만든 네오가 오히려 시스템을 구원함이 - 빛으로 화하는 마지막 장면 - 영지주의적 사상인 것이다.
***
야고보의 비밀서에서 사탄의 유혹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라는 대목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였다.
유혹이 없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유혹을 통해 성장하고 내면의 빛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지칭함일까?
***
책의 끝부분에 실린 “진주의 찬미” 는 서사시이다.
바다의 용이 지키는 진주를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왕자가 그만 이를 망각하고 지내다가, 부모로부터 보내온 편지에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사명을 완수하고 왕국으로 돌아가 영광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서양의 환타지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그리스신화, 로마신화,,,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그런데, 앞부분의 영지주의 복음을 읽다보면, 진주의 찬미는 약간 틀린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 문서에서 제자들이 여러번 예수님에게 여쭙는다. 신의 왕국은 도대체 언제 오냐고....
예수님은 그곳이 여기에서 뭔가를 잘 하여, 그 보상으로 어디론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오히려 아버지 왕국은 이 땅위에 퍼져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도마복음 113)
***
영지주의...
화석화된 기성 종교에 뭔가 문제점을 느낀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져봄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영지주의 문서가 모두 사실이라는 섣부른 판단도 권유치 않는다.
다만, 그 전달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것과 세계, 그리고 나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같이 “숙고”해봄이 좋을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