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인연담 - 인연 속에서 깨치는 부처님 말씀
정태혁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정태혁| 정신세계사| 2007.09.01 | 448p | ISBN : 9788935702909 

 

정태혁 박사가  번역한 법구경을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진리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법구경(다르마파다)!




주옥같은 아름다운 게송.




우리말로 읽어도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가 느껴지는데, 과연 진리의 말씀은 언어의 벽도 넘어서는가 생각한다.




법구경의 말씀들은 일반인도 법구경이 출전인지 몰라서 그렇지, 많이 들어보았을 대중적인 “친숙한” 내용이다.




게송 하나하나가 진실한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이 없건만, 이번 번역판은 각 게송에 관련된 일화가 소개되어 있어 더욱더 감동을 준다.




법구경과 비슷한 수타니파다(경집)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같은 진리의 비유가, 여기 법구경에서도 수천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바로 오늘의 말씀인 것처럼 빛이 바래지 않고 있다.




읽으면서 불가사의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수천년전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시기, 질투, 탐욕, 오해,  한편에서는 그것을 철저히 떠나서 아라한과를 얻은 수행자들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친숙할 수가 있을까?  인간은 수천년간 전혀 진화하지를 않았단 말인가? 아니면 구도의 여정이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란 것일까?







말미에는 팔리어와 한자원문이 붙어있어 더욱 깊이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귀한 선물이 되고 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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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 과학이 외면해온 경이로운 의식 체험의 기록들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유기천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독후감 -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스타니슬라프 그로프 / 정신세계사 2007년 출간)




칼융의 공시성의 원리가 이 책의 서두에도 나오지만, 이 책의 의미는 나에게는 독특한 것이었다.




2년전부터 뜬금없이 시작된 심리학, 심리치료, 최면술과의 인연은 트랜스퍼스날 심리학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되었고, 결국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원래 정신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최면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범우주적인 문제를 탐구할 수 없을까, 초월적 통찰을 얻는 수단이 될까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간 국내에 소개된 브라이언 와이스박사의 전생요법 기타 등등과 서양 채널러의 책들은 “과학” 또는 과학적 방법론 이란 잣대로 보면,,,금방 허물어지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런 부류들의 책을 소설로 분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칼 융 이래 인간의 무의식,,,그것을 넘어선 인류공통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진지한 학자들의 전문적 객관적 탐구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그로프 박사는 이런 분야에 대해, 선구적 연구를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의 LSD 약물을 사용한 환상체험을 이슈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전생과 UFO, 이집트, 고대마야의 신비 등등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주제를 그로프 박사는 LSD 라는 강력한 환각물질을 사용한 세션으로 자신이 직접 또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한 인간과 문화의 신비한 현상들을 실제로서 체험하게 되며, 과거 동서양의 신비주의 전통이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다만, 문제는 이 책의 내용이, 이러한 신비한 인류문명의 수수께끼에 대한 체험서술로 그치지 말고, 그것의 비밀을 푸는 단서 또는 학문적인 작용기전을 밝혀내는 서술이 되었으면 좋은데, 단지 체험한 내용을 개인적 감상 형식으로 기록하였을 뿐이다.




개중에는 아주 공교롭게 맞아떨어져서 저자가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우연의 일치도 있었지만, 학문적 연구라면 “환상”이 정확한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작년에 한창 최면술 연구를 할 때는, 이런 문제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과연 최면 세션 중에 보이는 현상이 사실일까?




여러 실습 내지 주변의 데이터를 참고하여 심사숙고 끝에 내린 개인적 결론은 그것은 꿈과 같은 환상이며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신의 영역에서, 일종의 공통된 영역과 단계, 그리고 동일한 체험이 있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각자가 큰 차이가 있으면서도 또한 아주 동일한 체험과 단계를 공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학자로서 합법적으로 LSD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만치, 최면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의 환각체험을 스스로 체험하고나 환자에게 유도했으며, 많은 기적적인 임상사례도 책에 서술되어 있다.







저자 개인의 연애문제(이집트 전생에서의 누이와의 갈등이 현대까지 미친 사건 등등) 같은 프라이버시적인 사건을 솔직히 풀어놓은 것도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이 부분은 최면의 전생퇴행 체험과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왔다.




책의 본문중에도 나오지만, LSD가 강력한 마약이기에 종종 어느 사람에게는 최면술 세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케타민이라는 진정제를 투여하고 전 우주적인 체험을 한 대목이 아주 재미있었다. 많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비체험의 의식과 아주 흡사하지 않는가?




끈끈이 식물이 되어 파리를 잡아먹었을 때의 맛은 도저히 설명 불가라나? ㅎㅎㅎ

석유층의 의식이 되자, 거기서 느끼는 폭력성과 혐오성을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대목도 무척이나 흥미로왔다.  인간의 착취에 대해 석유층이 의식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만물에 의식이 있다면 그 의식을 그로프 박사가 느꼈듯이, 인간에 대한 자연의 분노가 어디까지 왔을까?




마지막에 나오는 예전에 읽었던  <코스모스>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란 책의 저자인 칼 세이건과의 의견대립 부분도 재미있었다. 칼 세이건은 어떤 근거를 대어도 초월적인 체험은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당사자가 무의식간에 티비라든가 라디오에서 들은 정보를 다시 되새겨 내는 것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즉 칼 세이건 박사는 무엇이 참으로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보다는 불신을 위한 불신, 객관을 위한 객관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 저자 개인의 주장이 그렇단 것이다^^세이건 박사의 입장은 또 다를지도...)

 

 




개인적으로 명상과 최면 내지 약물환각의 차이가 크다고 본다.

명상은 아무리 황홀한 체험이라도 거기에 빠지지 않는 ‘객관적 관조’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긴 하다만, 명상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를 크리슈나무르티 선생님이나 여타 수행자들이 말씀하신 ‘수동적 관찰’ 또는 ‘조건화되지 않는 순수의식’ 등에서 따온다면 말이다).  요즘 상당수 사람들이 명상과 최면에서의 체험이 동일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최면에 대한 공부를 깊이있게 해본 개인적 견해로는 천만의 말씀이었다. 오히려 인간의 '에고' 자체가 질병이고 최면상태라는 견해에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최면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어떤 면에서, 특히 수행계에서 본다면 ‘마장’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간혹 이런 환상이 나타나도 무심히 쳐다보기만 하고 절대 관여치 말라고 선각자들이 경고하지 않는가.




어떤 분은 이런 현상만 최면술로 수집해서는 이것을 가지고 예언을 하니, 돈을 버니 하기도 했으니, 그 어리석음에는 실소가 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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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초개인심리학의 정수를 옅볼 수 있을까 했으나, 그로프 박사의 대중적인 서적이어서 그런지 에피소드 소개에 그친 점은 약간 아쉽다.




LSD 약물을 쓰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저자가 밝힌 “홀로트로픽 호흡법” 이 궁금하기도 하고.(책에는 이 호흡법에 대한 이름 이외의 정보는 전혀 없다. 어떻게 하는지 등등) 




사람은 관심있는 것만 보인다더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관심과 흥미는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단상들에 대한 우연한 발견의 재미였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 프리츠 펄츠의 수제자가 에살렌 연구소를 설립했고, 거기서는 펄츠의 유산에 의해 무료 게슈탈트 세션이 제공된다는 이야기(게슈탈트 심리학에 무척이나 개인적인 관심이 있다보니...).




묵타난다, 사이바바 등 인도 행자들의 에피소드.




프로이드가 경계한 최면술에서 내담자의 의존문제를 역발상으로 해결한 “융합요법”(P44)의 이야기.(세션중에 오히려 내담자를 필요할 때 포옹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서상에 부족한 갈증을 채워주는 방법을 사용했더니, 오히려 세션 후의 의존현상이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기적수업(어 코스 인 미라클)의 탄생에 저자가 조력한 이야기(기적수업이란 책은 어느 심리학자의 채널링에서 시작되었다. 그 책의 발간에 저자가 격려한 에피소드).




이러한 뜬금없는 개인적 관심사와의 마주침도 ‘공시성의 원리’ 일까?




다음에는 초개인심리학의 정수 내지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이 발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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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거나 반짝이는 - 음악평론가 김진묵 에세이
김진묵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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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악평론가 김진묵씨의 에세이가 나왔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였지만, 일부로 음악평론가의 글을 사보지는 않았었다^^

 

음악은 그냥 들으면 되지, 무슨 평론은....촌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은 꽤나 재미나는게 아닌가. 심지어는 김진묵씨도 음악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냥 들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음악은 느끼는 것이기에....

 

 

이글은 음악에 대한 한 남자의 일기장이라 할 수 있을까?

 

근데, 김진묵씨가 참 유머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 웃기지 않는데도,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일까?

 

오래전 김씨가 늦은시간 혼자서 장위동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자기 혼자뿐이자, 기사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서는 한강대교를 질주해 달렸는데, 그때 마침 버스 라디오에선 브람스 음악이 울려퍼졌고, 김씨는 일종의 엑스타시 체험을 하려던 찰나,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 김씨를 서울역 근처에 내려놓고, 내뺐다는 일화(버스기사분 중에 클래식을 듣는 분도 드물거니와, 일부러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놓고는 갑자기 서울역에 버려두고 사라져 버린 것도 미스테리란 것^^).

 

나도 오래전 직장 초년생일때, 여의도에서 밤늦게 택시를 탔는데,,,어라..이 택시는 아주 독특한 택시였다. 개인택시인데, 엄청난 오디오 시스템으로 튜닝이 된 택시였다(푸른 네온 등으로 시각적으로도 공들여 튜닝을 했던 것). 내가 오디오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자, 기사분이 신이나서 볼륨을 끝까지 올리고 서강대교를 질주해 여의도를 가로질러 집으로 왔던 추억이 있다^^

 

아마도 김진묵씨도 명상을 좋아하는 분인가 보다. 군데군데, 좌정하여 호흡을 가다듬었다는 서술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나 역시 클래식 음악 들으면서 명상을 하는 즐거움을 아는지라(조용한 방에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크게 틀어놓고 그 공명에 눈을 감고 몸을 맡기는 즐거움을 아는 이는 공감할 것이다).... 이분의 글에서 나의 체험이 환기되어 들려오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독일의 무한질주 아우토반을 술이 만취된 상태로 질주했다는 일화나, 산골에 홀로서 집을 지으면서 음악과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일화들은 싸나이의 로망이 아닐까나?(정확히는 요즘 남자들이 한번은 생각해보는 그러한 로망?^^)

 

그런면에서 김진묵씨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즐기고 체험했던 용기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아울러 음악을 통해 세상과 미래를 예견하는 그의 날카로운 식견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음악하는 분들 중에서는 나쁜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어디 음악하는 분들이 사람 쳤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ㅎㅎㅎ

 

공자께서도 음악을 사랑하시고, 교육과목에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처럼,,,인간의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예술 장르가 음악일 것이다.

 

절제된 극치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클래식, 자유로운 정신을 노래하는 재즈.  영원한 현역인-결코 올드팝으로는 분류될 수 없는- 비틀즈의 노래들.

 

소리를 가르고 올라가는 음이 아니라, 타고 올라가는...그래서 연륜이 올라가야만 제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 소리,, 우리 음악!

 

김진묵씨가 역동성이 없는 멈춰 있는 소리를 들으려고 트럼펫을 한 음으로만 계속 산속에서 불었다는 이야기에는 공감하는 바가 많이 있었다. 김씨는 아마 음악을 자신의 수행의 일부로 여겼으리라. (나 역시 소리 없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기에...그 멈춰 있는 소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였다)

 

 

사람 중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음악과 관련한 상처가 있어서이겠지...(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우리 각자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자!

 

비틀즈의 렛잇비를 오리지날로 듣고 싶은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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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나를 보자 - 45년간 물만 먹고 살아온 양애란의 삶과 그 뜻
양애란 구술, 박광수 엮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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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십년간을 물만 먹으며 살아오신 분이라 여러번 화제가 되었던 분인데...

책이 주는 감흥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은 과연 빵으로만 살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는 증거가 되는 분이 현존하고 계시니....물질에 목매다는 인간들에게 그 자체로 힘을 주는 것 아닐까..라고 예전에 생각했었는데...

양애란 선생이 어릴 때 부터 겪은,,,,극심한 고통에는 놀랄 수 밖에 없다. 손가락의 고통을 위해 손가락을 모두 촛불에 지지면서 오히려 촛불로부터 감동을 받아 서원을 세우는 이야기..

누구는 고통을 통해 세상을 저주하지만, 누구는 고통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공부로 삼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않고, 오히려 "남속의 자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숭고한 일일 것이다.

어째서 하늘은 양선생님에게 그런 고통을 내렸을까? 그분의 고통스러운 삶을 들여다보면, 범인들의 고민과 번뇌는 차라리 귀여운 애교가 아니던가...

(p158) 차사고가 났을 때는 그것을 가지고 명상하십시요. 그러면 공부가 되면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고, 점차 남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근래 자동차 접촉사고가 있어서,,,큰돈을 갈취? 당했는데...열받았던 일이...생각이 났다. 따지고 보면 그를 통해 본인이 배운바가 있고,,,남과 사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공부가 되었던 것인데...그리고 또한, 그일로, 그간 내 차를 긁고도 몰래 도망친 얌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오든 공부꺼리로 삼을 때, 이를 극복하고, 남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남들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내가 남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 보다는, 남 안의 자기를 보고, 자기를 돕는다고, 사랑한다고 여기십시요. 그것은 에미의 마음입니다"



이광수 시인의 육바라밀 이란 시를,,,"에미"의 마음으로 바꾸어 읽은 대목은,,,옮겨 쓰고 싶지만,,,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진흙은 연꽃이 필요없지만, 연꽃은 진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처는 중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느 스님이 구름 위 전망 좋은 곳에 선방을 짓는다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나는 공부자리는 반은 나쁘고, 반은 좋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름 위의 좋은 곳에서만 공부한 스님네들이, 천상의 즐거움만 알아서, 어찌 세상을 밝히겠습니까"



보통사람으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을 겪은 분,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만물의 에미 심정이 되신 분....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온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모두 주위의 고마운 분들의 음으로 양으로의 기도와 도움이 아니던가...


어느 인터넷 만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양영순의 1001).

"나의 오늘 삶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와 눈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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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밖의 복음서 - 예수의 또다른 가르침을 찾아서
이재길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성서 밖의 복음서 독후감 - 이재길 지음 / 정신세계사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어릴적에 피흘리는 예수상에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에 있는 결가부좌 불상을 보고 어떤 친구들은 무섭다고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명상에 잠긴 그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였었다.  (그렇다고 절에 다니지는 않았음^^)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어릴적에 느낀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


성장하여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보니,  가부좌 틀고 앉아있다고 해서 평화와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요, 십자가에 매달린다고 해서 고통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인류의 죄를 어느분이 대신했다는 말도 전혀 믿지를 않는다만.


인류의 원죄설 내지, 독선적인 몇몇 개신교인들의 교회중심적 신앙에 거부감이 들어서일까?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관심이 들었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은 영지주의 서적들이었다.


세계사를 약간 자세하게 들여다 본 덕분에, 현재의 기독 바이블은 로마제국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상당한 왜곡이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고, 뭔가 물들지 않은,,,초기 교회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책들을 원했던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이러한 자료들은 여러 곳에서 등장하였으며, 인터넷 시대에서는 더욱 더 쉬운 일이었다.


성서 밖의 복음서는 이러한 영지주의 문서들을 모아서, 엮은이의 역주와 해설을 붙인 책이다.


표지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여, 손가락을 창에 찔린 상처에 넣어보고서야 믿었다는 도마의 그림이다.


도마는 예수의 형제(가족)였는데, 그런 그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처를 만져보고서야 알았다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구세주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가 있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드는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없지 않은가. 손으로 만져보면 그가 참 구세주인지 알 수 있으니...^^)


이재길씨의 서문이 전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재자(대속자)가 필요한 자는 화가 있다. 스스로 은총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영지주의에서는 원죄라든가 대속사상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스스로 안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 교부사상가들에 의해 정립된 “원죄” 개념은,,,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거의 모든 자를 더러운 죄인 으로 보는 작금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한다.  신 앞에서 교부가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은, 원죄설과는 아주 다르지 않는가.



도마복음서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면, 마치 선어록을 읽는 것 같은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역주에서도 중국 선사들의 일화를 여러번 소개한데서 그 유사함을 알게된다.  지금 바이블의 4복음서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신격보다는 그 가르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고, 종교를 절대권력화 하면서 실지로 이득을 본자는 누구였을까?


정말로 말씀-복음- 을 듣는 자에게 도움을 주려 했다면, 무지를 벗기려 했다면(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말씀의 내용에 중심이 있지, 사건이벤트 내지는 신격화에 중심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상식적 관점에서도 영지주의 문서의 진실성이 드러난다고 느낀다.


요한의 비밀서 에는 질투많은 하느님인 얄다바오트 에 의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읽다가 놀란 것은, 구약바이블의 신은 바로 이 얄다바오트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인간을 만든 이유가,,,인간이 얄다바오트와 그 권속들에게 빛이 되게, 빛의 권능을 주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얄다바오트가 인간을 만들었지만-수많은 부하들에게 시켜 인간의 각 지체를 조립(?) 하였다- 그 인간이 움직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그 어머니(소피아여신)의 빛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인간은 그 얄다바오트보다 더욱 현명하고 빛나는 존재이므로, 그 부하들이 이를 알고, 지상으로 인간을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빛을 회복하여 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신은, 그 정체가 우주의 주재자가 아니고, 애초에 불완전한 자였고(그 어머니가 홀로 불완전하게 낳았다고 함), 그가 그 어머니의 빛을 훔쳐서 인간을 만든 이유도, 인간에게서 광명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


나는 매트릭스 3부작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였는데, 그것이 바이블에 베이스를 둔 것임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렇게 영지주의 전통을 정확하게 따르는 영화인줄은 몰랐었다!


매트릭스의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스미스 요원은 오라클을 어머니 라고 불렀다. (3편에서 흡수하러 가기 전에)


시스템이 만든 네오가 오히려 시스템을 구원함이 - 빛으로 화하는 마지막 장면 - 영지주의적 사상인 것이다.



***

야고보의 비밀서에서 사탄의 유혹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라는 대목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였다.


유혹이 없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유혹을 통해 성장하고 내면의 빛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지칭함일까?


***


책의 끝부분에 실린 “진주의 찬미” 는 서사시이다.


바다의 용이 지키는 진주를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왕자가 그만 이를 망각하고 지내다가, 부모로부터 보내온 편지에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사명을 완수하고 왕국으로 돌아가 영광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서양의 환타지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그리스신화, 로마신화,,,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그런데, 앞부분의 영지주의 복음을 읽다보면,  진주의 찬미는 약간 틀린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 문서에서 제자들이 여러번 예수님에게 여쭙는다. 신의 왕국은 도대체 언제 오냐고....


예수님은 그곳이 여기에서 뭔가를 잘 하여,  그 보상으로 어디론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오히려 아버지 왕국은 이 땅위에 퍼져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도마복음 113)



***

영지주의...


화석화된 기성 종교에 뭔가 문제점을 느낀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져봄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영지주의 문서가 모두 사실이라는 섣부른 판단도 권유치 않는다.


다만, 그 전달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것과 세계, 그리고 나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같이 “숙고”해봄이 좋을 것 같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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