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를 해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 속 이면에 숨겨진 윤리성의 파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내용들에 숙연해졌다.
저자는 서론에서 밝히길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접근하며, 과학의 작용 방식에 대한 놀라운 사실도 알려준다.
총 12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1장에서는 '해적질' - 표본 수집일까, 식민지 약탈일까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월리엄 댐피어는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로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마저 자처해서 그의 제자라고 했을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바, 그는 대체 어떤 일생을 살았던 것일까.
댐피어의 가난과 생물학에 대한 집착은 결국 그를 해적으로 만들었다. 부커니어가 된 댐피어는 사략선이라 불리는 해적선을 타고 약탈을 일삼으며 자신의 생물학에 대한 욕심을 채워나간다. 각각의 장소에서 식물상과 동물상 및 바람과 해류를 연구하며 그는 일류 항해사로 거듭난다. 그의 저서 『새로운 세계 일주 항해」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박물학과 인류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해적질을 그만두고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길 희망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에 다시 해적 생활로 돌아가는데 그의 해적 생활은 과학적 해적 행위로 자신의 과학적 집착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과학자로서 댐피어의 해적 행위는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지만 그의 업적은 대단해서 항해학, 동물학, 식물학, 기상학 등 그 당시 모든 과학 분야에 진전을 가져왔다. 한 전기 작가가 말하길 '이 한 사람에게 새로운 시대정신 전체를 빚졌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과학의 어두운 역사 중 하나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2장은 노예 무역과 관련된 '흰개미집 연구자의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국인 헨리 스미스먼은 박물학자로서 탐사를 위한 향해를 시작한다. 노예 제도가 향해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노예 제도 반대자였다. 그랬던 그가 과학자로 거듭나려는 야망이 도덕심보다 훨씬 강한 동기로 작용하게 되면서 그의 윤리도 뒤집어 놓는다. 처음엔 물질적 지원 때문에 노예 상인들에게 의존했던 스미스먼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예 거래를 시작하게 되고, 농장 생활의 잔혹성을 보고 나서는 다시 노예 제도를 부정하게 된다. 그의 내면의 갈등을 보면 이는 지극히 인간적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과학은 늘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와 새로운 남용 기회를 낳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3장은 '시신 도굴'에 관한 이야기로 '해부학자들의 위험한 거래'의 역사를 들려준다. 해부용 시신의 거래를 위해 연쇄 살인범이 되고만 윌리엄 헤어와 윌리엄 버크의 이야기는 참 끔찍했다. 또한, 해부학계의 윌리엄 댐피어라고 칭할 만한 존 헌터의 해부학 집착에 관한 일화들도 도덕적 둔감이 어떠한 상태를 불러오는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과학의 여명기인 17세기의 범죄부터 미래의 첨단 중죄까지 세계 곳곳을 망라해 보여주는 과학 잔혹사의 역사는 상상보다 훨씬 끔찍했다. 과학은 진보이며 세상 발전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해왔고, 할 것임에 추후의 의심이 없지만 도덕성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면이 많아 보인다.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