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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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도시에서 태어나 스무살이 되도록 갇혀(?) 살았지만, 서울과 부산의 도매점에서 물건을 떼서 판매하시던, 그리고 물건들을 고르는 나름의 안목을 지니셨던 부모님 덕분에 시골(?)에 살면서도 당시 주변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을 제법 경험해 보거나 가져본 적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소유가 주는 우쭐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물건들의 쓰임에서 오는 편안함과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주는 만족감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다들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할 리 없을 거고, 그러니 부러워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을 발견하고 추구해 보는 것이 더 멋진 일임을 말입니다.

일간지 주말판에서 가끔 만났던 글과 사진의 주인공, 윤광준 작가의 신작 소식에 반가워서 받자마자 후루룩 페이지들을 넘겨보노라니, 눈과 귀에 익숙한 물건들이 제법 보여 또한 반갑습니다.

라이카, 브라운, 허먼밀러, 발베니, 트로이카, 일광전구, 성심당, 코만단테, 스탠리, 샘표, 샤오미, 파이오니어, 발뮤다, 삼진어묵, 빅토리녹스, 필립스, 몽블랑, 지포, 몰스킨, 쓰리엠, 레더맨, 이케아, 조말론, 무인양품, 헹켈, 연두, 갈더마,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복순도가, 다이슨, 리모바, 드롱기...

101개 중 3~40개는 만난 적이 있는 것들인 듯합니다. 차곡차곡 쌓아내는 글맛은 작가가 직접 눈앞에서 보여주는 듯 친절하고 소상하게, 때로는 추억까지 덧입혀 맛깔납니다.
전자제품, 주방용품에서 문구류, 먹거리를 거쳐 패션 아이템 등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생활명품’들 하나하나에 작가는 애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제법 금액이 나가는 것들도 있지만, 쉽게 구입해서 가져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말로만 들었거나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은 조만간 시도해 볼 요량으로 아이폰 메모장에 쭈욱 리스트 업 해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오리지널은 오리지널이구나 하는 겁니다. 물론, 취향이란 것이 개개인의 오감과 라이프 스타일에 근거한 것이다 보니, 이들 리스트에 동의하기도 부동의 하기도 할 터입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지니는 외적 이야기와 개인적 추억 등으로 확장된 이야기는 흠뻑 빠져서 읽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고 맙니다.

한때 가성비가 판을 치고, 반대급부(?)로 끝 모를 고가의 명품에 오픈 런으로 내달리는 대중들 속에서, 줏대 없이 기우뚱대지 말고 자신만의 안목으로 골라낸 생활명품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작가의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당신들 자신만의 감각과 안목의 근육을 길러내길, 그래서 당신 각자의 생활명품 102번부터 새로이 작성해 보라는 권하는 책,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은 이렇게 거실 한쪽 손닿는 곳에 두고 그 개성 넘치는 리스트들을 채워나갈 욕심이 부추기는 멋스러운 책입니다. 일독을, 그리고 반려책으로 곁에 두길 권해봅니다.

#윤광준의생활명품101 #윤광준작가 #을유문화사
#예술책 #소비 #취향 #도서협찬
#헹켈스멜리무버 #몽블랑만년필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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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부치 -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최덕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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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2월부터 일본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고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시민을 지속적으로 학살했다. 이를 ‘난징 대학살’이라 한다.
(p.7)
아즈마 시로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 6주 동안 30만명 이상의 중국 군인과 시민을 학살한 내용을 일기로 써 놓았다가 50년 후인 1987년 <아즈마 시로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p.283)

책 제목의 ‘뚜이부치 (對不起)’는 미안하다를 뜻하는 중국말입니다. 일본군으로 난징 대학살에 가담해야만 했던 아즈마 시로가 노년에 다시 중국으로 단체관광여행을 가면서 손자가 적어준 이 말을 되뇌어 연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덕현 작가의 그래픽노블 <뚜이부치,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는 아즈마 시로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대학살의 뼈대 위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팩션입니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난징 대학살은 일본군이 중국군과 시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것이지만, 그 죽음의 행렬에 한반도에서 끌려간 무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압제와 전쟁 통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었겠다 싶습니다. 상상도 되지 않는 대학살의 참극을 일본군 장교를 대신 보고 듣고 느끼도록, 이 책은 제법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스케치해냅니다. 여성을 성노리개로 삼고, 참수를 경쟁하며 게임하듯 저지르는 모습에서는 인면수심, 아니 악마들을 마주하는 것이 이런 것 일거란 생각뿐이고 빨리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으면 하는 간절한 속앓이마저 터져 나왔습니다.
작은 희망의 여지들을 곳곳에 배치시켜 숨죽이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보지만, 여지없이 희망은커녕 더 큰 절망과, 심지어 인간에 대한 환멸, 전쟁의 폭력성과 비인간화를 단번에 쏟아내는 상황들이 연거푸 재현되는 장면들에서는 몇 번이고 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와 그에 따른 피해자. 그일 후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과는, 분명히 가해자의 입장과 언어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과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아즈마 시로는 용기를 낸 단 한마디, ‘뚜이부치 (對不起)’ 되뇌입니다. 굳이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1947년 4월의 제주에서 그리고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가 베트남인들에게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사과의 입장과 언어를 준비해서 표현하였나 생각이 깊어집니다. 피해자의 입장과 언어로 그들을 만나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사죄해야만 하는 것, 더 이상 지체되거나 회피되어서는 안되는 것, 인간으로의 도리를 다하는 것.

미안...하...단...
말도... 못 했는데...
(p.227)

우리의 말을 들을 피해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죄의 말을 준비하는 것. 그 숙제를 품고 마지막 페이지를 무겁게 덮었습니다.

#뚜이부치 #단한마디를위한용기 #對不起
#최덕현작가 #북멘토
#우리의숙제 #피해자의언어 #사죄의언어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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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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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극장>과 <니체 극장>으로 유명한 한겨레신문 기자/논설위원이기도 한 고명섭 작가의 신작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제법 투툼한 책에 우선 압도당할 수도 있으나, 목차를 들여다보면 그럴만도 하다 하며 금새 수긍하게 됩니다. 작가가 101권을 일일이 리뷰하며 그 속에 담겨진 생각들을 드러내는 글을 6개의 장에 나누어 펼쳐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안내하는 여정은, ‘사유의 숲길-생각의 요새-사상의 기원-회통에서 개벽으로-마음과 우주-지혜의 시대’로 연결되며, 성실과 집요로 책들을 들여다보되, 최대한 독자를 배려하며 보폭을 맞추려한 친절함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책을 여는 ‘프롤로그’를 읽는 것으로 이미 마음은 웅장해집니다. 사마천과 마키아벨리의 편지로 그들의 저작물이 어떻게 잉태되어 출산에 이르렀는지, 인류를 이끈 생각의 큰 흐름들 마다 우뚝 서있는 책들은 그 저자들의 곤란함과 혼란스러움에서 태어났음을 차례차례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독서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생각 읽기이고 마음 읽기’여서 이 또한 ‘곤궁한 마음에 생각의 씨를 뿌리는 일’이라 일갈합니다.

‘오래 굶주린 생각이여, 어둠 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 닿도록 자라 올라라.’
(p.23)

저자는 이렇듯 우리 독자의 자세를 고양하는 글로 시작해서, 동서고금의 다양한 생각이 담긴 101권의 책들을 읽어내며 그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내놓아 나누면서, 독서함이 얼마나 신성하고 유의미한 일인지를 설파하고 또한 격려합니다. 책의 말미에 부록처럼 붙여놓은 ‘도서목록’은 모두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임을 확인할 수 있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해내야 할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한 무더기의 숙제를 보따리를 받아든 엄청난 부담감과 더불어 든든한 지원세력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페이지 순서대로 쭉 읽어내도, 장별로 묶어서 읽어내도, 아니면 아무 페이지라도 탁 펴서 읽어내도 나름의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중한 책들의 책입니다. 처서를 지나 가을로 들어가는 지금, 생각의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보길 권합니다.

#생각의요새 #고명섭 #교양인
#독서하는즐거움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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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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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출간되었던 책. 일본 거리 구석구석 토머슨의 유령, 그러니까 토머슨을 일본어로 음독하여 쓴 초예술(HyperArt)이 결합하여 나온 것이 이 책 <초예술 토머슨>이란 종이 묶음에 들러붙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봄직하고 읽음직한 작품들을 내놓기를 즐겨하는 안그라픽스를 통해 한반도에까지 상륙하기에 이르렀고요. 그런데, 큰일입니다. 토머슨들이 가는 곳곳, 식당이며 골목길이며 아파트 담벼락에까지 출몰하고야 맙니다. 이렇게나 해악을 끼치는 본 책 <초예술 토머슨>은 의식하지 못했던 존재들, 어쩌면 유령들?,을 인식하고 마주하고 심지어 간파하거나 간파당하고야 말게 합니다.

관념의 자주성, 로지컬 오토노미 logical autonomy는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반드시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한심한 육체 관리가 만들어낸 뇌신경의 군살 현상이다. 그런 군살이 붙으면 뇌신경은 대부분 활성화되지 못하고 망가진다. 평소에 뇌가 육체와 제대로 보폭을 맞추면 그런 군살은 뇌에 붙지 않는다. 이를 부연하자면 즉 평상시에도 물건과 자주 교제하면 뇌는 상쾌해진다. 육체가 바로 물건이니까. 그런데 뇌의 군살이라니, 이거 뇌의 토머슨 같은데...
(p.172)

이런 식입니다. 토머슨은 사물이더니 어느새 인류를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1956년작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외계인을 대신해서 토머슨이 스멀스멀 인간 세상에 인간 자체에 들러붙는 것, 동일 시 되는 과정을 묘한 공포와 핍진성을 끼얹었듯 말입니다. 뇌의 군살이라는 토머슨이라는 유령이라니 말입니다.

급기야 일본을 벗어나 프랑스와 중국 도처에서도 출몰하는 토머슨들에 대한 보고들을 마주하자니, 정말 큰일이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들이 40여년 전의 것이라면 지금은 얼마나 퍼져있고 우리 인류는 얼마나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억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정말로 이 책, 해악 덩어리입니다.

어른이라면 이런 쓸모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단 앞에 서보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이 올라가고 싶어졌습니다. 이 물건은 인간의 행동마저 토머슨화하는 힘을 지닌 듯 합니다.
(p.435)

‘토머슨화’로까지 진화(!)한 그들의 무쓸모의 아름다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슴없게 합니다. 사물의 토머슨화로 사물은 최고급 물건이 되게도 하고 말입니다. 수목이 인공물을 집어삼키거나 흡수해버리기까지 하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확장력을 보고한 부분에서는 마침내 절망적 운명을 실감하고 맙니다.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나 토머슨을 인식해버리게 내버려뒀는지 <초예술 토머슨>이 소름끼치기도 합니다. 이미 하나의 사상이 되어버린 토머슨,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도처에 숨어있는 토머슨들과 토머슨화되고 있는 현장들을 색출해내는 수 밖에.

#초예술토머슨 #아카세가와겐페이 #서하나 #안그라픽스
#Hyperart_Thomasson
#신체강탈자의침입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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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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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네 시골집, 그러니까 외가댁은 내 어린 시절의 천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방학기간이나 명절 연휴에는 2박 3일 정도 그곳에 머물며 외사촌들과 까마득한 시간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특히, 해가 길었던 여름방학의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추억 범벅 오감으로 내 몸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부모님 없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지기라도 한 날들엔 정말이지 끝나지 않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놀아재꼈습니다.
들판의 꽃과 나무, 산등성이에서 마주한 동물의 발자국 때로는 시체, 해질녘 돌아오는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며, 마당을 가로질러야 있던 화장실과 방 한구석에 작은 문으로 연결된 다락방까지.

여름의 한날, 소년과 엄마가 엄마의 옛집을 방문하며 마주하는 사물들, 사람들, 사건들, 추억들을 여백 가득한 그림들과 담백한 대화들로 보여줍니다. 수채화의 색들이 서로 마주쳐 번지듯 여름과 지금과 과거가 마주치며 묘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어느 순간에 울컥하게도 합니다. 엄마의 흔적,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자리들, 물건들, 공간들, 산과 들. 그렇게 소년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으로 기억될 시간, 하지만 언젠가 흐릿해져 잊혀질지 모를 여름이 흘러갑니다. 소년은 자라나고, 엄마도 자라납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과 사람들을 눈과 마음에 담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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