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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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출신이긴 하지만 물리와 화학 그리고 수학은 학창시절 제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수학이나 화학보다는 물리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현상의 결과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그 현상의 과정을 유의미하게 육안 확인이 가능하거나 상상으로라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제게 과학관련 서적이나 기사는 대략 요약이나 헤드라인 정도만 챙기는게 전부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단 책의 등장은 우선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뭘 믿는단 거지?

 

이 책의 원제는 ‘Into the impossible’ 불가능 속으로입니다. 이는 아서클라크인류상상센터의 공동소장으로 진행하였던 초청 강연회 중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의 강연과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요약하고 추출한 그들의 지식, 철학, 투쟁, 전술, 습관에 대한 팟캐스트였고 그 원고를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출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원제의 그 불가능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과학적 천재성에 주목하느라 보지 못했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또 다른 분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들 역시 불확실성과 불안, 자기 의심 속에서 어려운 판단을 내리고 실패하면 다른 각도를 찾고 경쟁자와도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과학적 영감을 꽃피웠다. 이런 경험을 나눈다면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서 불안과 의심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장애물을 넘어서려고 쓴 도구와 전술을 우리 삶을 개선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p.10-11, 프롤로그 중>

 

그렇다면 이 책은 물리학자들, 특히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그들의 인생철학이나 처세술을 담은 자기계발서인건가 싶어 에필로그를 지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노라니 일정 부분 그러하고 또 일정 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각자 다른 인생의 이면을 가진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스스로가 설정한 이론이 정말 그러한지를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밝혀내는 것,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대부분의 실생활과 전혀 무관한 지식을 확장해나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추구함이 만들어낸 열매로써의 검증된 이론들을 향하는 그들이 장착한 삶의 태도와 관계를 다루는 방법을 저자의 말로 오해나 왜곡됨 없이 전달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기계발서 였습니다. 그러나 삶으로 검증되고 연구로 검증된 그 표본들의 액기스를 담아낸 것이니 억지스럽거나 강요당하는 느낌없이 수용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의 자기계발서들은 확증편향이나 일반화의 오류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경우였기 때문에 불호의 카테고리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적절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시간을 써야 하는 겁니다. 늘 같은 날씨에 같은 장소를 비행한다면, 1만 시간을 쓰고서도 노련한 조종사가 되지 못하겠죠.”

<p.123. 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칼 위먼의 대답 중>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법칙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확증편향, 일반화된 것들이다 싶습니다. 그중 한동안 유행했었던 1만 시간 법칙. 그 악의 없는 달성치로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법칙에 사람들은 무장해제 되거나 여우의 씬 포도 보듯 해왔습니다. 법칙의 답습하여 그저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진정 변화를 추구하며 의식적으로 조금 무리하려는 태도를 설명하는 칼 위먼의 제언은 꽤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이런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계를 재해석하고 이면을 꺼집어내려는 노력들을, 그 지혜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홉 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지식은 노벨상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연을, 그들의 지혜는 이 책에서 확인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저는 그 저자의 자신감에 동의할 수 있을 듯합니다.

 

PS1. 참고로, 저는 노벨상 홈페이지는 방문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PS2. 머리가 복잡하고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날들을 위해서 손 닿는 곳에 이 책을 두고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보려 합니다. 물리학자들의 입을 빌려 쓴 잠언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S3. 책표지 뿐만 아니라 책의 곳곳에 숨겨둔 보석 같은 마크 에드워즈의 그림들은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느낌을 주는 이스터 에그!

 

#물리학자는두뇌를믿지않는다 #노벨물리학상 #책추천 #자기계발서 #마크에드워즈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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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소스빨 - 배달 음식이 필요 없는 황금 소스 레시피 51
소연남 지음 / 페이퍼버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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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하며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만남들 그리고 독립생활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 매일매일의 고달픔과 외로움이 더 컸던 기억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먹는 것의 해결이었지요. 물론 도처에 맛나고 새로운 음식들이 식당의 메뉴판들에 넘쳐났지만 기숙사, 하숙집, 자취방을 전전하던 갓 스무살의 촌놈의 입에는 모두 겉도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즈음에 향수병이란 것을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해주는 집밥에 대한 애닲음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향수병. 그래서 가끔 고향 다녀오는 길에 싸주시는 김치나 짠지들, 마른반찬들로 상경한 2-3주를 버티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파워풀한 반찬은 소고기고추장볶음. 이것만 있으면 맨밥에 올려먹으면 덮밥, 면류에 비벼먹으면 비빔면, 야채를 찍어먹으면 그로써 완벽한 사이드메뉴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자 소연남 (소스 연구.개발하는 남자)의 새책 <요리는 소스빨>은 이미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소스 레시피를 선보여왔던 그의 소스의 엑기스라 할 만 합니다. ‘배달 음식이 필요없는 황금 소스 레시피 51’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의 일상에 더없이 든든한 지원군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달픈 타향살이 촌놈의 일상을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것이 소고기고추장볶음이라는 파워풀한 소스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포털사이트에 원하는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레시피들이 즐비할 테지만, 검증되고 자기 입맛에 맞는 무언가를 찾아서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여정은 그닥 순탄치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달픈 우리들은 배달의 민족으로 대동단결하여 1회용 배달용기만을 생산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스 몇 개만 잘 쟁여놓기만 해도 간단하고도 스피디하게 아는 맛을 무한생산해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습니다. 이를 위한 레시피북을 주방 한켠에 마련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습니다.

 

요즘 음식 트랜드는 소스에서 시작해서 소스로 끝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리를 돋보이는 역할에서 끝나던 소스가 메인 요리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p.4_서문 중>

 

요새 종종 듣게 되는 말 중에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미 검증되고 경험한 맛들은 그 맛집들과 그 메뉴들에 사용된 소스들에 빚진 바 클테니 그 아는 맛을 내가 만들어내는 재미와 성취감도 나름의 부록 같은 선물이 될 수 있겠습니다.

눈에 띄는 소스들 중, ‘대파 크림치즈 소스’, ‘밀면 소스는 조만간 실전 적용해볼만한 최애 소스들로 낙점해둔 상태입니다. 갈수록 높아만 가는 앵겔지수와 맛집 웨이팅 소진 에너지/시간에 대한 괜찮은 대책이 되어줄 듯합니다. 어쩌면 이를 통해 인생은 팁빨이라는 나름의 테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간만에 반갑고도 맛있는 책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요리는소스빨 #소연남 #만능소스 #소스레시피 #페이퍼버드 #책들의정원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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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 topclass 2024.5 - 집중력을 켜라
톱클래스 편집부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월간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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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의 고효율한동안 저의 대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예정된 기한에 임박해서야 집중할 수 있고 단위시간당 내놓는 결과물의 양과 퀄러티가 임박하기 전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경향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나름 만들어낸 전문용어(?)가 바로 마감의 고효율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시험기간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할 때나 성인이 되어 직장에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한을 앞둔 연속된 야근이라는 불치병은, 분명한 그 고효율의 체험에 기인한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중력 상실의 시대입니다. 디지털 세계라는 거대한 사탕가게가 점점 더 교묘한 수법으로 우리를 유혹하지요. 내 취향과 성향을 기막히게 파악해 , 이거 좋아하지?’ ‘이건 어때?’ ‘이래도 안 볼래?’라며 치밀한 덫을 놓습니다. 집중력은 쪼개지고, 생각은 이리저리 부유하며, 깊은 사유가 어려워집니다. 집중 시간이 점점 짧아져서 한 번에 몰입 가능한 시간이 평균 47초라는 군요.”

<p.004>

 

오롯이 집중하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그러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디지털 세계 여기저기 남겨둔 흔적들을 집요하게 수집해서 또 그렇게 알고리즘이라는 이라는 악마는 영혼까지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요구하고 우리의 지갑을 우리의 시간을 요구하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립니다. 유모차의 아이들에서부터 피곤한 몸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은 직장인들의 손에 들려있는 모바일 기기들은 쏟아내는 쇼츠들로 그들의 시야를 독점해내며 시간을 생각을 성큼성큼 가져갑니다. 유튜브 영상의 황금비율은 15분 내외의 길이라던데, 요즘 모두가 화면을 쓸어내리며 집중적으로 탐닉하는 그 쇼츠들의 평균 길이가 어쩌면 47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초 단위로 쪼개지고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우리의 몰입, 이대로 괜찮은가 싶습니다.

 

해변에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고 앉아 온종일 책을 읽은 후 드디어 내 뇌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석 달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기란 어려울 거예요. 그러나 일상에서 조금씩 실천할 방법은 찾을 수 있고, 찾아내야 합니다.”

<p.018>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가장 SNS에서 자주 봤던 책의 표지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었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의 마음에 소구하는 바가 컸다는 반증 일텐데, 작가의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통한 몰입의 회복은 그야말로 마약중독의 재활훈련의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습관화되어버려서 안하면 불안해져버린 거짓 집중력들 강탈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실천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그와의 인터뷰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결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외 이번 이슈의 여러 꼭지들을 통해 집중력 도둑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몰입의 기술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기사들은 그자체로 몰입을 부르는 컨텐츠들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기생수: 더 그레이>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 기사는 제작 뒷이야기와 연출 철학을 엿볼 수 있어서 그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보물같은 기사였습니다. 항상 놓치고 싶지 않는 마지막 꼭지, ‘서기자의 동네책방은 역시나 아기자기하게 방문욕구를 자극해서 좋았습니다.

 

“You just keep pushing. You just keep pushing. I made every mistake that could be made.

But I just kept pushing.”

<Rene Descartes>

 

이번 이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러니 그저 그렇게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생각하며 마침표를 찍어봤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속도와 리듬에만 몸을 맡기느라 정작 내가 추고 싶은 춤은 한순간도 추지 못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인생이 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되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AI 프렌들리 제너레이션들의 역습이 바꿔놓을 근미래의 우리 삶은 또 어떻게 전쟁과도 같은 저항을 통해 오롯한 몰입과 스스로의 지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끊임없는 물음표만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topclass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opclass #탑클래스 #집중력을켜라 #집중력

#도둑맞은집중력 #김지용 #당신의뇌를바꿔드립니다 #몰입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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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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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오브 뷰티 -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미하엘라 노로크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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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틀라스 오브 뷰티>는, 50여 개국에서 만난 500명의 여성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는 것으로 말과 글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루마니아 출신의 포토그래퍼 미하엘라 노로크의 첫 번째 사진집입니다. 다양한 인종과 나이, 표정과 분위기의 여성들이 꾸밈없이 카메라의 렌즈를 향하고 있는 다양한 크기의 사진들과 사진이 촬영된 나라와 도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작가의 간단한 멘트만을 달고 어떤 일관된 순서 없이 나열되어있을 뿐인데도 그들의 표정과 눈동자를 들여다보느라 한참을 머무르게 만드는 얼굴들에 묘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푸른 자연 속의 천진한 소녀의 모습을 간직한 할머니에서부터 어린 동생을 돌보는 난민캠프의 고단한 삶이 오롯이 담긴 소녀의 어색한 미소까지, 자유분방한 성소수자 모임에서 만난 동지들의 어깨동무에서부터 국경일에 광장에 모인 수백명의 군무를 뒷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묘한 표정으로 서있는 평양의 소녀까지. 말하지 않지만 말하고 있는 이미지만으로 건네오는 말들을 들으려 귀를 기울이게 되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럽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에는 그렇게 하기가 늘 쉽지만은 않아요. 여성들이 특정한 방식의 외모와 행동을 보여여 한다는 압박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환경에서는 겸손하게 최대한 많이 감추도록 하는 압박이 있어요. 또 어떤 환경에서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여야만 하는 압박이 있죠. 하지만 결국 모든 여성은 자신이 드러내는 모습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외부 세계의 압박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해요.”
<p.6-7>

아름다움을,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려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는 미하엘라 노로크는 그 아름다움을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 본 듯합니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보여주고 추구하는 것이라는 아름다움. 그런 의미에서 이 사진집은 여전히 외부의 압박이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그 아름다움의 지도를 다시 만들고자 떠나온 여정을 사진들에 담았다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여성들의 표정과 눈동자를, 그리고 그들의 시간과 도시들을 자꾸만 뒤적이며 들여다보게 됩니다.

#아틀라스오브뷰티 #theatlasofbeauty #미하엘라노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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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
이충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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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노란색 트레일러가 반대편 도로에서 이쪽 차선으로 방향을 틀며 돌진했다.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마찰 계수를 잃은 뒷바퀴가 중앙 가드레일에 살짝 부딪치더니 핸들이 완전히 90도로 꺾였다. 변속 레버를 잡아당기자 차체가 다시 절반 돌면서 반대편 차선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 광경을 침묵 속에서 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마주친 트레일러가 급커브를 틀었다. 뒷부분이 내 차로 기울며 측면을 때리고, 그 반발로 뒤따라오는 SUV에 부딪친 뒤 다시 튕겨나오는 과정에는 작은 화면에 몰린 픽셀처럼 놀라운 명료함이 있었다.”

<p.10>


예전에 즐겨 읽던 월간 <GQ>의 편집장 시절의 에디토리얼을 제외하고는 처음 접하는 작가 이충걸이 만든 세상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자동차사고. 그 사고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균열과 상실입니다.


자동차 사고와 같은 순식간에 생사의 경계를 체험하는 사건을 실감나게 그리는 문장들에 예전 그의 에디토리얼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실감’은 물질적인 생생하다의 느낌보다는 사고 피해자가 느끼는 ‘주마등’, 즉 정신적이고 심리적 서술을 담은 그 문장과 단어들입니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던 개인적인 체험에 비추어볼 때, 그 몇 초간 벌어지는 사건의 현장에 육신은 속절없이 나뒹굴고 있지만 그 머릿속의 이미지를 포함하는 다량의 정보들과 감각기관들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무한한 시공에 순간 노출되는 듯했던 기억입니다. 사고현장과 구급차 그리고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그 과정들에 무기력하게 움직여지는 나의 육신을 내려다보는 듯 한없이 객관화된 채로 이루어지는 그 영겁 같다가도 순식간에 치러져버리는 기억과 편린이 초반부에 펼쳐지는데 읽는 동안 몸의 여기저기가 아리고 서늘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통증을 잊게 만드는 약성분이 온몸의 체액을 따라 돌면, 자꾸만 깊고 깊은 잔잔한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바닥을 향해 빠져드는 긴 잠에 사로잡히고 길고 긴 꿈과 같은 과거와 재회하게 되었던 기억들을 소설은 문자로 다시금 재연해냅니다.


자신의 이야기, 아이와 그 친구 이야기, 계절이야기, 사소한 풍경 이야기... 미술과 영화, 음악과 패션에 관한 대화와 묘사들이 예전 잡지 <GQ>의 페이지 여기저기를 들춰보듯 늘어뜨려 놓으며 이야기가 흩어지는 듯 하다가도 하나의 사건으로 하나의 시간으로 하나의 관계로 모아내고, 다시 멈추어선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들다가 그렇게 또 이야기를 흩어내며 나아가는 묘한 구석 가득한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6월이 되자 구강 주위에 살이 달라붙었다. 눈을 번갈아 찡그리고 혀를 엉킨 근육 사이로 넣어 침을 바르려고 했지만 톱밥 만지는 느낌밖에 없었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피를 뽑았다.”

<p.73>


이 소설의 특이점은 시선이 오간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시선이었다가 아이의 시선이었다가, 그래서 엉뚱하게 이야기를 짓다가 다시 해체해서 그 시선으로 조정하느라 초반 한동안은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함의 이유가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깊숙하게 독자를 이끄는 기술(!)이다 싶게 여겨졌습니다.


요즘 제 책상 한쪽에 뉘어져 있는 책이 한권 있는데, 루마니아 출신 포토그래퍼인 미하엘라 노로크의 사진집 <아틀라스 오브 뷰티>라는, 50여 개국 500명의 여성들의 얼굴을 담고 있는 사진집입니다. 다양한 국가, 다양한 인종, 다양한 표정들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들인데 들여다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기도 하고 어떤 생각으로 저 표정들을 짓고 있을까 호기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때마침 이 소설과 사진집을 오가며 읽고 있자니 묘한 마음이 더 해지는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삐뚤빼뚤해진 인생이 보자기로 꿰매지자, 자동차 사고는 덮개에 덮여 잘 떠오르지 않았다. 천국의 갈망은 잦아들고, 집으로 가고 싶은 희망도 스러졌다...

내가 행방불명되었던 기간 동안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도 나의 부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 나의 고립 상태는 일종의 참호가 되어주었다. 대인 관계가 얄팍하다는 것이 지금처럼 위로가 된 적도 없었다. 세상이 계속 돌아가는 동안 나 혼자 고통받지는 않았다...“

<p.338>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책의 마지막에 도달하니 그 궁금증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허나 이내 그렇게 살아왔으니 또 그렇게 살아가리라 여기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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