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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2월
평점 :
이 소설은 1886년에 나온, 그러니까 137년 전에 이 세상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 소설은 문예영화의 독보적 거장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하고 저 유명한 원조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매들린 포터가 주연했던 1984년 작 <보스턴 사람들>의 원작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미시시피 출신의 보수주의 변호사 베이질 랜섬과 여성의 그의 먼 친척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 올리브 챈설러의 논쟁과 성장의 이야기이자, 랜섬이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게 된 급진 연설가 버리나 태런트와의 사랑 이야기이며 또한 올리브와 버리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랑과 시대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마음이 각각의 인물들과 분위기에 녹여낸 704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면서도 베스트 드라이브의 조수석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창 너머의 풍광도 즐길 수 있는 가독성 장착한 이야기입니다.
“올리브는 10분쯤 있으면 내려올 거예요. 선생님께 그렇게 말해달라더군요. 10분쯤이라니, 정말 딱 올리브다워요. 5분도 아니고 15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히 10분인 것도 아니라 9분도 11분도 될 수 있죠. 기쁠지 아닐지 모를 일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는 상황에 절대로 처하고 싶지 않아서죠. 아주 정직한 사람, 그게 올리브 챈설러예요. 정직의 화신이죠. 보스턴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요. 나로서는 이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뭐, 어쨌든 전 선생님을 봬서 무척 기쁘답니다.”
<p.9, 소설의 첫 문단>
창작자도 그러하겠지만, 저에게 소설의 첫 문장이나 첫 문단은 굉장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하고 작품 전체를 이해하거나 방향을 잡는데 어떤 기준이 되거나 징크스 같은 것이 됩니다. 이 소설 <보스턴 사람들>의 첫 문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주요한 두 인물이 만나기 직전에 제3자의 입을 통한 소개입니다. 뒤에 따라올 실제 인물이 정말 그러할지 혹은 이런 인물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풀어갈지를 기대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첫 문단이었다 싶습니다. 뒤이어 지는 올리브와 랜섬의 첫 만남으로 시작하는 멋들어진 열쇠가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또 다른 한 여성 버리나와 엮어내는 이야기는 현재 독자의 시선으로도 전혀 예스럽지 않은 과정과 대화들이어서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오가는 시점의 변화라는 리드미컬함이 주는 힘이 짧지 않은 이야기의 분량임에도 나름의 긴장과 해소를 오가고 독자의 이해를 문장에서 오롯이 해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미스 버즈아이와 닥터 태런트의 존재감이 스며내는 연극적 진행도 지금으로도 신선한 감각을 일으켜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열정과 진지함인가, 그야말로 거룩한 대의에 자신을 바친, 오점 하나 없는 처녀가 전율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이것만 봐도 분명하다, 두 사람은 모두 안전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버리나를 엄청나게 부당하게 취급한 것이다. 그년 천천히 버리나에게 다가가 두 팔로 감싸서 그대로 가만히 끌어안고는 살며시 입맞춥했다. 그것으로 버리나는 그녀가 자신을 믿게 되었음을 알았다.”
<p.470>
그럼에도 19세기 말의 문학작품에 대놓고 등장하는 동성커플의 애정행각(?)은 논란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란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얼마 전에서야 겨우 공공연히 예술분야에서 드러내놓을 수는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과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이면에는 분명히 작가 헨리 제임스 본인의 이야기가 녹여진 것일테고 이를 통해 당시 겪었을 작품에 대한 여론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의 힘은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쨌든 소설은 작가가 단어로 직조한 문장과 문장들이 엮어낸 이야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녀가 들어가려고 하는, 화려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두 사람의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이 그녀가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은 아닐 우려가 있다.”
<p.704, 소설의 마지막 문장>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전혀 다른 결이지만 감정적인 면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과 유사한 향취를 남깁니다.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전진한다, 뭐 이런 희망의 향취 같은 것 말입니다. 그녀들의 눈물들이 만든 우리가 사는 지금을 떠올리면 조금 뭉클하고 조금은 안쓰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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