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길을 걷는 디자이너
정재완 지음 / 안그라픽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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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북 디자이너이자 거리 글자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개인전을 열었던 이력의 작가가 대구의 구부러진 골목을 거닐며 남긴 이미지와 그 이미지들이 텍스트로 투영되어 인쇄된 책의 페이지들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즉흥과 무의식의 경험이 차곡차곡 내 몸과 마음에 쌓여가는 것이다. 디자인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장소를 이해하는 방식은 걷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걸으면서 만나는 글자들을 보는 것이다.”

<p.6, 여는 글. >

 

가족여행이나 타인의 의견을 취합, 수렴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의 여행 목적지나 일상의 산보의 경로는 대개 빌딩 숲의 곧게 뻣은 대로나 한두 블록 안쪽이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간판들이 즐비한 공간을 포함합니다. 산과 들, 강과 바다도 무척 좋아하고 그 고요함이나 변화무쌍함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이내 익숙해지거나 지루함을 느끼는 탓에 시간을 소비하는 가성비를 따지면 도시가 저에겐 훨씬 매력적인 탓입니다. 그리고 큰 틀에서의 계획은 있으나 그 세부적인 사항들은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주는 흥미로운 모험 같은 구석이 주는 긴장감과 의외의 순간들이 인상적인 기억과 아이디어, 때로는 심신의 리프레쉬먼트가 되곤 합니다. 그렇게 오가며 보고 듣게 되는 다양하고 낯선 것들을 참 좋아합니다.

 

이 책 <낯선 골목을 걷는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서의 작가 스스로가 관여했던 일 얘기들과 그 과정을 통과하며 남겨진 소회들이나 때로는 엉뚱 발랄한 상상이 치고 빠지며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그 의견이 어떠한지 궁금해 하는 문장들 사이를 이리저리 걷고 또 걷는 듯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역 페스티벌 이야기에 더위와 끝내 마주한 시월의 가을, 그리고 그 계절에 만나는 글자들 이야기를 어쩌면 대책 없이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독립출판, 북 디자인과 북 디자이너로서의 스스로의 고해성사를 들려주는가 하면 삶의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디자인의 영향력과 확장성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무해하나 무료하기도 한 이야기, 동떨어진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 악의 없는 주저리 주저리를 따라 가노라면 오래 전에 친하게 지냈던 고향 친구나 선배를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환승 중 우연히 만나 근처 커피숍에서 그간의 안부를 묻고 듣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선약이 있으면서도 자리를 쉽게 박차고 나서기 어려운 마음 들게하는 친근하고 아련한 추억 같은 문장들과 간간히 점묘법으로 그린 듯한 흑백 사진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더니 이내 빠져들게 하는 마법 같은 구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자신의 생각과 색깔을 표방하고 밀땅을 하다가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허허 웃는 듯 마주하고 앉은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북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책을 통해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노력하는 한편 과연 내 삶이 아름다운가를 반성하기도 한다. 젊고 새로운 것만이 아름다움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라, 늙고 오래된 것도 내용과 형식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 충분히 아름답다. 책이 그런 것이라면 사람도 그렇다. 북 디자인을 생각하면서 아름답게 나이 드는 일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헌책이 되고 싶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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