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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판정위원회
방지언.방유정 지음 / 선비와맑음 / 2025년 9월
평점 :
현업 방송작가인 방지언, 방유정 친자매 작가의 장편소설 <뇌사판정위원회>를 읽었습니다. 예전에 한동안 흉부외과 수술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터라, 특별히 심장이식 관련한 조사와 환자, 보호자, 의료진 등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기억과 소설 속 인물들, 사건들이 오버랩 되면서 꽤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논쟁적인 소재인 뇌사판정과 장기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윤리적 잣대와 개인/집단의 이기심, 의학적 판단의 주관성 등 다양한 부분을 인물들의 관계와 마주하는 사건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건드리며 나아가는 구성이 중요한 재미요소 였습니다. 당연히 아는 만큼 더 즐겁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비교적 쉽게 읽히도록 써내려간 것과 인물이나 장면 묘사가 꽤나 시각적이어서 영상화를 염두에 둔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뇌사는 죽음의 과정이지,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고요. 아직 따뜻한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건 살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짓는 권한이 주어진 뇌사판정위원회. 그 구성원들의 종횡으로 가지쳐진 갈등이 이야기의 외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뇌 기능은 영구적으로 멈춘 상태를 말하는 ‘뇌사’. 이를 통해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감상적인 접근은 위원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건 데이터와 절차에 따라서,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예의입니다.”
현실적인 딜레마에 놓여진 인물들의 태도와 목소리가 크게 혹은 간절하게 지면을 뚫고 독자에게 와닿는가 하면, 또 그 이면의 아이러니가 그 인물들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제법 답답함과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면서 구축된 서사가 인물들과 그 관계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요.
“심장이 다시 뛸 가능성. 뇌 기능이 단 1%라도 돌아올 가능성. 우리는 그 희박한 가능성을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배제해야만 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존엄을 위해서.”
뇌사판정위원회의 결정이 단순한 죽음 확인의 절차를 초월해서 망자의 존엄성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후 이야기들 까지 아우르는 숭고한 선택임을, 소설은 무겁게 말하는 듯 했습니다.
드라마 제작과정에 작게 나마 참여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도 재미있지만, 역시 제작현장의 즐거운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뉴하트>를 다시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그야말로 정통 메디컬 드라마를 그린 이 소설이 그래서 더 반가웠습니다.
처음과 나중 몇 장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는 정확하게 1주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각 장의 제목을 직함과 이름으로 삼고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병원 안팎의 인물들과 그 사이를 미끄러져 가는 사건들과 결정 혹은 번복을 쌓아가며 이야기는 스릴러적 재미로 끝을 향해가는 장르적 즐거움까지도 선사합니다.
<뇌사판정위원회>는 친자매인 두 작가가 어떻게 취재하고 정리해서 문장으로 이야기를 함께 직조해낼 수 있었는지, 그 저작 과정이나 소통방식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던지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 이 작가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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