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답게 삽시다 - 미운 백 살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하여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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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다.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으로 살고 있다.

이시형 박사의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은 각종 TV프로그램과 지면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는데 국민건강, 자기계발, 자녀교육, 공부법 등 다양한 주제로 모두에게 폭넓은 공감을 샀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기도 하다.

75세 때(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건립했으며 지금은 '병원 없는 마을'을 건립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 중이라 한다.

이시형 박사는 나이에 대한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활동을 하며 평생 공부하고 도전해서 배운 삶의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어른답게 삽시다>는 그의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기고 쓴 책이다.


나이듦이란 어떤 것일까.

살면서 겪은 온갖 크고 작은 세상의 풍파와 실패, 좌절의 경험들은 삶에 굳은살처럼 박힌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일도 지나가기 마련이고, 버티다 보면 또 살아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들수록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안목과 참고 견뎌내는 인내심이 젊을 때보다 높아진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나이 들어가진 않는다.

나이가 들면 정신적으로 유연해지고 강해진다고 하지만 나이듦 자체가 정신을 무너뜨리기도 하는데, 나쁜 일을 겪었을 때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보다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나'생각하고 마음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는 '회복 탄력성'이란 게 있는데, 이 '회복 탄력성'은 역경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좌절에 빠지지 않고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 다시 안정된 상태를 회복하는 힘을 말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스스로의 '회복 탄력성'에 불신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나이가 들면 마음의 상처마저 더디게 아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이제껏 살아온 연륜으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게 뇌 과학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은 마음의 틈을 만들어준다.

이 틈이 '회복 탄력성'이다.

숨 쉬는 것조차 아픈 상처를 받았어도, 생의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좌절에 빠졌어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삶도 계속된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눈물은 없으며, 결국은 다시 평범한 삶으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몸보다 마음의 건강이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중요한 건 마음은 세월을 비켜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꾸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그것을 쉽게 하는 이도 있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뇌는 낙관적인 쪽으로 생각하려는 본능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스스로를 믿으면 된다.

아직 건강한 내가 결국에는 절망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마흔이 될 때까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건강을 잃게 되었다.

좋아하던 운동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온다는 것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멀쩡하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될 때가 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그러니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뿐더러,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일이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등산과 걷기를 통해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더불어 잃었던 건강까지 찾을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한 '회복 탄력성'이란게 이런 게 아닐까.

직접 겪고 보니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저절로 존경심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존경은 공짜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디서든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를 '미운 몇 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노인을 불편해하는 인식을 한탄할 것이 나이라 노인들 스스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은퇴를 하고 물러나 앉아 다 차려진 밥상을 받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다음 세대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일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의 노인층이 젊은 시절에는 나라가 풍요롭진 않았지만 일자리는 넉넉했고, 회사에서 조기 퇴직 당할 염려도 없었던 근대산업화의 특수를 누린 세대였다.

정년을 꾹꾹 채운 뒤 퇴직하고 각종 보험과 연금 혜택도 가장 확실하게 받는 세대이며 지하철도 공짜로 타고 온갖 국가적 혜택은 다 누리는 데 반해 요즘 젊은이들은 당장 취업하기도 힘들고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그런데도 노인 복지를 위해 각종 세금은 따박따박 내야 하니 노인들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세대 차이' 정도로 불렸지만 커저가는 불만이 노인에 대한 '미움'으로 나타나, 노인 혐오 시대를 넘어 '증오 시대'로 갈까 염려될 정도다.

젊은 세대는 결국 자신들도 필연적으로 늙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늙음을 적대시한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낙인을 찍지만 노인들은 저마다 가족에게,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해온 사람들이다.

오늘의 젊은이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래에 자기네가 마주쳐야 할 시선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자꾸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노인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단다.

한국 노인들의 우울증이 심각한 것은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회적 특징과도 맞물려 있다.

신체적 노화로 인해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면 쉽게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하게 되는데, 이런 우울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인에게도 홀로서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노인의 자립에는 자신의 건강을 자신이 알아서 챙기는 '건강적 자립'과 은퇴 후에도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자립', 그리고 '정신적 자립'이 있단다.

정작 수입이 한 푼도 없으면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고 이 기대 심리가 결국 가족 간의 분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작은 수입이나마 있어야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식에게 올인하며 살아가는 부모들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월급의 반 이상을 학원비로 갖다 받치며 공부시켜 대학에만 보내면 끝일 줄 알았는데, 대학 등록금 내주고 유학까지 보내줬더니, 취업이 어렵고 스펙도 쌓아야 한다며 대학원을 보내주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 이젠 자식 밑에 돈 들어갈 일 없으려나 싶지만, 결혼한다기에 집까지 사주는 부모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되니까 그렇게 해주겠지만 실상 그 속을 까보면 모든 것을 내어준 부모는 빈 깡통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그 자식이 과연 부모님을 책임지고 보살펴 줄까?

한국 최고의 명문대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모님이 몇 살까지 사시면 좋겠냐'는 질문에 학생들의 대답은 63세였다고 한다.

그 나이까지의 부모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으니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곁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된다는 것이다.

공부도 마쳐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자력만으로 어렵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63세면 한창나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자식들을 위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더 이상 줄 게 없게 되면, 그 젊은 나이게 죽으란 소리인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상식선에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이기주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온갖 헌신을 다하고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부모들의 맹목적인 사랑 또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집 장만에서부터 결혼 비용, 혼수까지 다 해주고 나서 정작 자신들은 돈에 쪼들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자식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된 부모들을 자식들은 짐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이런 세태가 노인들을 불쾌한 집단으로 보는 사회현상을 부추기게 되는 요즘 한국 사회의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한창 일할 때 열심히 벌어 모든 걸 다 내어주었지만 남은 건 나이 들어 부실해진 몸뚱어리와 비어버린 잔고뿐이라면 은퇴 후 앞으로 살아가야 할 30여 년의 긴 시간들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시대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는 노인들의 책임도 반은 된다고 본다.

자식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되 지나치게 모든 것을 쏟아붓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에게 더 퍼줄 게 아니라 삶을 지키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여전히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행동하며,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아랫사람을 대우한다면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노인 공해'니 어쩌니 하며 짐짝 취급받지는 않을 것이다.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은 나 하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남김없이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끝까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다 죽을 수 있는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자.


나이가 들어 쓸쓸하다느니 고독하다느니 얼른 죽어야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의 빚쟁이'라는 인식이 없는 이들이다.

일이 힘에 부치면 반나절도 좋고, 이틀에 한 번도 좋으니, 무슨 일을 하든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든 끝까지 일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과 내가 사회를 위해 아직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간 닦은 경험들을 활용하며 아직 내가 속까지 녹슨 깡통은 아니라는 뿌듯함을 심어주는 적당한 노동, 그것이 건강하게 늙어가는 비결의 답이다.

그것이 어른답게 사는 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가 이만큼 들었으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의 기분을 배려하며 나를 표현하는 세련된 화법도 중요하다고 했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와 사회적 지위, 교육수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인격, 품위와 연륜 등 내면의 성숙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나이'에 대한 존경심이 변하고 노인을 존경하지 않게 된 시대를 탓하기 전에 혹시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나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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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 인생은 대리가 아니니까
김희철 지음 / 동아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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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으로 대리기사로 일한 그날 그날의 일들을 까먹기 전에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온라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대리기사를 불렀을 때 기사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매너 있게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바램도 담고 있단다.

내가 뱉은 말, 내가 하는 행동을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가 가져가는 이익이 남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한 것은 아니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써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영화 작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점점 커졌다고 한다.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마이너스가 커지는 고정수입이 없는 생활은 너무 힘겨웠다.

저자는 대리기사뿐만 아니라, ㅌㄷ드라이버, 퀵 배송, 택배 배달, 카풀까지 차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었다.

20%에 달하는 수수료를 제외하고 기름값도 본인 부담, 차가 망가져도 본인 책임, 시간 맞추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는 사람 피 말려 죽이는 이 시스템의 착취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밤에 대리운전을 뛰다 보면 거리에서, 버스에서, 서울 외곽 아파트촌에서 자주 마주치는 대리기사들이 마치 길고양이처럼 느껴졌단다.

휴대폰 대리 앱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길고양이, 바로 저자의 자화상이다.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는 차주 눈치 보면서, 진상 취객의 무례도 참아내면서, 새벽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두 발로 달려야 하는 대리기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리기사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은 접하게 되다 보니 현장 인류학 박사가 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단다.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등록금 내고 배운 것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을 것을 배우는 것 같다고....

저자의 글에서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과 살짝살짝 꼬집는듯한 블랙 유머를 곁들인 혼잣말을 통해 세상이 좀 더 괜찮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리기사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고객들 중에는 배려심 없고, 매너 없고, 무례하고, 인성이 바닥이고, 입이 걸레 같은 천박한 인간들이 참 많던데, 세상을 좀 더 괜찮게 바꿔나가는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심이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기본만 잘 지켜도 참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리기사는 술에 취한 당신의 차를 잠깐 동안 대신 모는 노동자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



p. 90-91

대리기사를 부른다.

10분이 지났는데 오지를 않는다.

이놈의 기사 놈은 뭐 하는 데 이리 오래 걸려?

기사가 헐레벌떡 도착하면 그제사 서로 술값을 낸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출발하자고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며 보닛 위에 짐을 올려두기도 한다.

드디어 출발.

큰소리로 통화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유튜브로 성경 공부를 하든 내 맘이다.

내가 낸 돈으로 산 내 공간이요, 기사 따위는 내가 엄연히 돈을 주고 부른 드라이버니까 상관없다.

불만이 있다면 딴 차 잡아라.

나는 또 다른 놈 부르면 되니까.

너 말고도 대리기사는 얼마든지 많다.

도착 후 주차할 자리를 찾아 뺑뺑 돌다 겨우 주차를 마친 대리기사가 복귀하는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우주정거장 기지 같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비상 탈출하듯 출구를 찾아 10분이 걸려 걸어 나가든, 찜질방에 가서 있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가든 전혀 내 알 바가 아니다.

당신은 대리기사고 나는 결제를 마쳤다.

대리비가 너무 낮다고?

네가 계약한 회사에 얘기해라.

나는 경제적 소비자일 뿐이다.



p. 267

오후에 이촌동에서 방배동 학원으로 가는 젊은 친구를 태웠다.

유튜브를 보는지 그 소음이 무척 크고 거슬렀지만 줄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시비라도 붙어 괜한 문제가 생기면 운전기사인 나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학생에게 아무런 지적을 해주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부모의 책임을 묻는 것도 부질없다.

부모는 학원비, 등록금 버느라 바빠서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나의 관심과 나의 이익과 내가 받는 고통만 중요하고 타인에게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신세대의 출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꼰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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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수업
성호승 지음 / 경향BP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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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물었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과연 좋은 사랑일까?"

사랑이 답했다.

"좋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아."



짬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고 좋고,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에 새기며 사색하기 좋고,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라 공감하기 좋고, 무엇보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아 좋았던 책이다.

분명 나보다 어릴 텐데도 어쩜 이렇게 속 깊은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 놀라웠다.

글을 쓰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책과 글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살이가 있기 마련인데 저자의 글 속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희로애락의 담백한 깊이감이 느껴져 되려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진실하고 솔직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고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꼭 해주고 싶었던 사랑, 행복, 인간관계, 다양한 감정 등에 관한 진솔한 글들이 가득 담겨 있어 좋았다.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성호승 <감정수업>을 읽어보길 바란다.



<사랑에 앞서>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좋음과 싫음을 정확히 하고, 사람이 좋다고 나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상대방을 알아가 볼 것.

-믿음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감정 소비를 하지 않고, 빈틈없이 표현해주는 사람과 사계절을 걸을 것.

-사랑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공존해야 하며, 상대방이 해주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이별했다고 바닥을 보이지 않으며, 금방 잊고 싶어 커다랗게 생긴 멍을 스스로 짓누르지 않을 것.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나의 잘못이라며 자책하거나 나를 미워하지 않으며,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

-혼자 있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며 자존감을 올릴 것.

-충분히 나를 사랑할 때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상처 없는 듯 모두를 사랑할 것.



<그 여자의 사랑>, <그 남자의 사랑>을 통해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의 풋풋한 연애담에 스르르 입꼬리가 올라가며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가슴 설레었던 사랑의 시작과 서로를 알아가던 행복한 시간들, 금방이라도 관계가 깨어질 것 같았던 전쟁 같은 사랑싸움을 헤치고 나올 때면 더욱 굳건해진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해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결혼을 했다.

결혼은 사랑의 완전체인 줄만 알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끝없는 전쟁 같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결혼 후 20년 정도면 사랑보다는 정 때문에 또는 전우애나 동지로 살아간다고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도 지금도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를 사랑하기에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사람과 사랑을 한다는 건 분명 아름다운 일이긴 하나 먼저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 또한 필요하다.

살다 보니 사람을 보는 시선을 신중하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아끼는 것임을 몸소 느끼게 돼 곤 한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걸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해선 안될 일이다.

사람을 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나를 떠나가는 사람에게는 미련을 둘 필요가 없고 나에게 다가올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도 머물러 있을 테니 조급해 하지 않길 바란다.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신중한 마음을 먼저 가진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자.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누군가를 넘치듯 사랑하자.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야 하니까...



<담백하게 살아갈 것>

-사람은 절대 완벽할 수 없고, 좋은 말만 듣고 살 수 없으니 때로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 것.

-타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스스로를 더 의지하며 담담하게 걸을 것.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며 쉽게 속을 다 보여주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마주할 것.

-누군가와 마음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설렘이 요동칠 때는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거짓 없이 바라볼 것.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떠나가는 사람이 있거든 바보처럼 혼자 아파하지 말고 미련 없이 함께 떠나갈 것.

-아픔을 쉽게 잊으려고 하지 말고, 충분히 시간을 주며 누구보다 나를 기다려 줄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에게 너무 부족하지 않고, 남에게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히 담백하게 살아갈 것.



<사랑에 앞서>, <담백하게 살아갈 것>에 적힌 글들이 살아가다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될 아들과 딸에게 꼭 일러두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당당해라.

뜨겁게 사랑해라.

미련을 두지 말라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가장 사랑해라.



<내가 꼭 지켜야 할 것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그것은 곧 약점이 된다.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마라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들은 온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

믿음이 깨지면 다시 되찾기 힘들다.

사랑을 할 때 지치고 힘들면 그만해라.

사랑의 기분은 나의 행복이다.

자존감을 낮추지 마라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나를 위해 해야 할 것들>

어디든 여행을 다닐 것.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을 것.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을 것.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것.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

나를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



<당신은 꼭 그런 사랑을 하라>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행복한 사랑을 하라.

힘듦과 아픔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

아낌없이 주고 싶은 사랑을 하라.

허물 벗듯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하라.

그리고,

당신을 소중히 하는 사란과 함께 사랑을 하라.



<이런 사람을 만날 것>

연락이 잘 되는 사람을 만나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다.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사람이다.

예의 바른 사람을 만나라. 부모님이 110% 좋아하신다.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선물 주는 사람을 만나라. 끔찍이 좋아하고 있다는 거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라. 다투게 되면 오래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 그만큼 당신이 사랑한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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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 이방인 안겔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김지혜 지음 / 파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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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안젤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다름과 부족함의 경계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이다

저자 김지혜가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산 지도 벌써 10여 년.

한국인과 독일인 사이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여유를 선물 받았다고 말한다.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소박한 식탁,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 아무리 보아도 특별할 것이 없는데,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건데, 왜 이곳은 지옥이 되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들은 왜 행복할까?

궁금증을 품은 채 그들 속으로 들어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수많은 질문과 마주해보니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타인의 고통과 행복에 무뎌지지 않고 살아가노라면 그 행복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더란 것이다.

낯선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해도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며 힘이 되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헬조선에서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그곳….

몸이 아파도 출근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 인간의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파업이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는 모습, 한 부모 가정이 국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되려 손가락질 받는 행태 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들.

매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기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는 데만 급급하고, 너와 나를 나누고, 분류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다름'과 '부족함'이라는 잣대 안에서 누군가를 이방인으로 만들거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지옥을 면하는 길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단상들과 학벌과 능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들만의 세상을 사는 소수 상위 몇% 부류들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통받는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같이 공감해주며 나아갈 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유학으로 생후 15개월 된 아들과 함께 독일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독일과 한국의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들을 생활 속 에피소드들을 저자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에 음악가 특유의 감성과 부드러움을 더해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살기 좋고 행복해 보이는 독일이라도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경계와 인종차별은 그를 숨 막히게 만들었지만 그녀가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 였단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고향인 한국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을 머나먼 독일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사람을 알아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사람 그 자체이지, 사람의 조건이 아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특정 나라나 종교에 선입견을 갖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고, 한정된 경험과 부족한 정보에서 오는 편견만큼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게 없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P. 24~25

사람들은 '학벌'을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만 쓰지 않는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아까운가' 저울질하는데 쓰기도 한다.

결혼 전, 남편의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정호가 정말 아깝다고 생각해요. 알아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재빠르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미국엔 가봤어요?"

"아니요."

내 대답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하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왔으면 멀리도 온 거지. 코스닥이 뭔지는 알아요?"

미국과 대구, 서울 그리고 코스닥에 이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닐 때, 남편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남편을 본 그분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남편에게 말했다.

"정호야! 제수씨가 사람이 아주 좋아."


p.66

“정말? 정말 그것만 받아?”

유디트의 생각에 내가 받는 월급이 너무 적은 액수였던 모양이다.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자니까 그렇겠지.”

내 말을 듣던 유디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독일 공립학교의 경우는 달라.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는 기본급이 있어. 수위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교사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말이야. 아, 정말 말도 안 돼.”


P. 67

이곳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한다.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런 말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걸 물어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사람 옆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조금 더 배려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P.68

독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 자체가 엄청 어려운 일이라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단하거나 똑똑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걸 말해주어야 할 의무 같은 걸 느꼈다.

"한국은 독일하고 상황이 달라서 대학 간 격차가 있어. 미국처럼.

내가 나온 대학은 그렇게 좋거나 유명한 대학은 아니야."

내 말이 끝나자 한나는 잠깐 내 얼굴을 말없이 몇 초 동안 응시하더니 조용히 내게 말했다.

"너랑 나랑 친구가 되는데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문이 막혔는데, 희한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늘 나이, 출신 학교, 직업, 가족 관계를 묻는 호구조사부터 시작하고, 배우자나 부모의 직업부터 사는 곳, 사는 정도까지 탈탈 털어놔야 관계가 시작되던 한국에서 30년 살다 온 내게 조금은 낯선 풍경이었다.


P.76

문득 내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적어도 몇 번씩은 썼던 말들, '이쁘다', '날씬하다', '키가 크다', '살이 쪘다, 빠졌다'같은 표현들을 독일에 온 뒤로 써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때 나는 겉치장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얼굴에 자신 있나 보지?"하는 농담을 가장한 비아냥거림이 날아들거나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일이 많았고, 사람들은 옷과 화장, 날씬한 몸을 잣대로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논했다.

몸매나 옷차림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 건 이곳에 오고 난 뒤부터다.

한국에선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면 거리 전체가 그 옷으로 물결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에서는 그런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거나 똑같은 가방을 드는 일은 자기만의 취향과 색깔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고, 따라서 그런 일을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당당하게 입고 다닌다.

옷에 의해 인간이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옷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서로 존중할 줄 하는 공동체.

이곳에서 옷과 가방이 사람을 삼키는 일은 없어 보인다.


p. 80

독일에서는 경제가 불황이든 호황이든 상관없이 벼룩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상위 10%, 하위 10%가 아이들 옷차림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회.

최소한 이곳에는 옷과 가방의 가격으로 '계급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없다.

구별과 차등이 없을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P. 85

그 친구와 니야기를 나누며 나는 또 그 '먼 나라'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된 엄마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회.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기는커녕 무자비하게 짓밟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사회가 그 친구에겐 정말 상상하기 힘든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p. 98

누군가의 목숨을 갈아 넣은 편리함은 과연 우리에게 안락함만을 가져다줄 것인가?

누군가의 저녁 시간을 빼앗고, 누군가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과 맞바꾼 신속하고 편리한 시스템으로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길현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영화 <일 포스티노> 속 집배원 마리오가 감명받았다며 읊조리던 네루다 파블로의 시 한 구절을 탄식처럼 내뱉는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p.153

인지학은 몰라도 만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노는 게 공부'라는 걸 알고 있고 자신 역시 그렇게 자라온 사람들.

함께 노는 것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영어 유치원 같은 건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지구 한편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이 의외로 꽤 괜찮으며,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도 꽤 기대가 되고 믿음이 간다는 것을 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 세상엔 대치동 말고 이런 동네도 있다.


p. 161

10년 넘게 독일에 살면서 느끼는 건데, 이곳에서는 최소한 돈이 없다고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당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런 게 '야만'이라는 것 정도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없어도 최소한 야만은 벗어던진 세상 정도는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돈이 아니라 인간이 기준이 되는 공정함과 잣대로 굴러가는 세상 정도는 꿈꿔볼 만하지 않겠는가?

건물은 낡고 후지고 인터넷을 느려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공감이 제도와 법으로 뒷받침된 사회, 그래서 서로가 공존 가능한 사회 말이다.


p. 167

아트라베시아모!

이탈리아어로 "같이 건너보자"는 말이다.

독일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이슈들을 지켜볼 때마다 매번 이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머리를 짓밟지 않고 손을 잡고 함께 강을 건너는 사람들,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아는 사람들.

인간 세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지옥을 면하는 길은 가능해 보인다.

그저 서로 손을 잡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작곡, 연주한 피아노곡이 담긴 CD가 별책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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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김광연 지음, 박승희 그림 / 지콜론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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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보다 규칙이 많은

이곳은 을지로 광장입니다.

광장은 셀프서비스, 선불제 가게입니다.

이어폰이 없는 영상통화, 고성의 대화 금지.

반말로 주문 시 결제 금액의 2배가 청구됩니다.

혼자 오면 더 좋은 술집, 광장.



'광장'은 세상의 불편함에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던 고집쟁이가 얼마나 이 사회와 결을 같이할 수 있는지 시험 삼아 시작한 밥 먹는 술집이다.

어차피 잘되지 않을 거고, 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걸 모두 해볼 심산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벌려왔단다.

광장장은 가게를 꾸려 수익을 낼 생각보다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낸 수익으로 적자를 메울 생각을 할 만큼 가계 수익에 대한 기대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광장'은 나와 같은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단다.

집에서만 일하는 작업자들에게도 내킬 때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오래 일해도 눈치를 보지 않는,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광장'의 시작은 광장장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단다.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의 장이라고 생각했었던 '광장'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고 함께 공감해주었다고 한다.

누구나 각자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한 것 같았다.

물론 집이 그 기능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지만 홀로 앉아 쉬는 집 말고도 기분을 환기시키고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데 '광장'이 그런 곳이길 바란다고 광장장은 말한다.

'광장'은 누군가에게 집 같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건강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갈 힘이 생기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룰 많은 불편한 공간이고 얼굴을 붉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는 '광장'다운 공간이라고 생각한단다.

공간이 공간만의 매력을 갖게 되는 것, 가끔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기에 더욱 편안한 공간이고 싶었다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광장'과 잘 맞는 이들만의 공간, 그들만의 안락함이 되도록 더욱 공고히 쌓아가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단다.


'광장'을 알게 된 건 <밥하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책을 통해서다.

'광장'이 마음에 들었고 광장장의 운영 방침과 마음 씀씀이마저도 나에겐 취향 저격이었다.

룰이 많다는 '광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반말 페이'였다.

'반말 페이 : 반말로 주문하면 두 배로 받습니다.'

광장장은 '광장'을 오픈하고 반말로 주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반말 페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괜히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광장은 불꽃 튀는 싸움터가 된 것이다.

광장장이 반말 페이를 제도화한 건 돈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반말에 마음이 상했으니 음식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의미가 더 컸다.

'광장'은 선불제를 시행한다.

반말 주문을 했을 경우 금액이 2배 청구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알려주므로 부당하다 싶고, 기분이 언짢고 불쾌하다 싶으면 주문을 취소하고 가게를 나오면 될 일이다.

솔직히 돈을 더 내고 먹고 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있었고 반말 페이에 받은 돈은 따로 보관해 기부를 한단다.

며칠 전 인스타를 통해 불미스러운 글을 보게 되었다.

반말 페이로 기분이 상한 한 손님이 두 배 청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주문을 했고 식사를 했단다.

그리고는 SNS를 통해 불만사항을 올린 모양이다.

양측의 입장을 서로 밝혔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다르던데 진실공방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SNS에 달린 댓글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반말 페이'가 이렇게까지 욕 들어야 할만한 문제인가 싶었다.

반말을 했다고 더 돈을 지불하라는 게 미친 짓이라 욕하기 전에 반말을 하는 게 더 문제 아닐까?

나이가 많으면 반말해도 되고, 손님이면 반말해도 된다는 건가?

요즘엔 나이를 불문하고 반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끝이 모호한 반말도 많이들 한다.

실제 '광장'에서도 반말을 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초중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입장을 바꿔 본인이 반말을 듣게 되어도 기분이 불쾌할지,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생각은 말이 되고, 감정은 말투가 된다"고 했다.

본인이 한 말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든 걸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 접한 사건이라 내심 괜찮을까 걱정도 되고 이러다 가게 문을 닫는 건 아닐까 우려도 되었다.

꼭 가보고 싶은 '광장'이었고 꼭 체험(?) 해보고 싶은 '랜선에서 광장으로'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든 생각은 광장장은 사고가 굳건하고 멘탈이 강한 분 같아 꿋꿋이 잘 견뎌 내주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광장'에서의 시스템이 사회에서도 익숙해진다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게가 될 것이라며 '광장'에서의 규칙들이 특별하지 않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도 사소하게라도 지켜보고 누려본다면 조금씩은 달라질 거란 광장장의 말에 동감한다.


광장장이 전하는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입니다' (P.310~)

처음엔 혼자 식당을 이용할 때 겪던 차별과 불편함에 반대해서 '광장'을 열었다.

그래서 '혼자 오면 더 좋은 술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혼자가 좋은, 단체로는 이용할 수 없는 가게를 만들었다.

그러자 소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여성의 날, 비건 파티, 416TV 후원, DSO 후원, 조선학교 차별 반대 집회, 퀴어 파티, 탄핵 축제, 여성 영화제 상영 등 광장은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보여 왔다.

'광장'을 운영하기 이전부터 관심 있는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공유하고 싶었기에 광장을 운영하며 참 많은 소리를 냈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광장이라는 공간과 함께 더 크고 깊게 울리는 것 같다.

나의 외침에 가까운 의견에 사람들은 늘 걱정했다.

정치적인 이슈에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 걱정은 더 커졌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개중에 비이성적인 사람도 존재하기에 주위에서 많이들 걱정했다.

걱정이 너무 많다며 웃어넘기기도 했지만 실제로 불쾌한 상황은 자주 일어났고 자주 공격을 받았다.

공격하는 그들에게 광장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였다.

나는 늘 차별의 언저리에서 살아왔다.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익숙한 것만 취했다.

다르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했다.

그들은 외면하려 들었고, 그게 안 될 때는 외면하는 척했다.

나는 다름을 틀림으로 외면하려 애쓰는 사람의 비겁함에 화를 내고,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이야기가 들릴 것 같아서 버둥거렸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반대였다.

소리치는 나를 나무랐으며 차별을 차별이라 크게 이야기한 것이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시키려 하다 보니 점점 공감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그 주변이 조금씩 이해하는 색으로 물들어 갔다.

내 주변만이라도 바뀌어가는 사회를 경험하며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광장'을 통해서 하는 이야기에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고 적대적으로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다.

다양한 생김새를 지녔고 다양한 기분을 표현하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

사회가 하나의 답을 요구한다고 해도 모두의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

그 다양성의 한 점을 '광장'은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느끼는 이 세상을 뒤집어버리겠다는 기분으로 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도 위협받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 적어도 내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곳에서는 다름을 얘기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광장은 그런 공간이다.

불편할 수도 있고,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굴도 성격도 다르게 살아가듯 가게 또한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

'광장'을 운영하면서 상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

나의 상식이 비난받는 순간은 물론, 상대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항의하는 순간마다 그래왔다.

모두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없고, 모두의 욕망이 나의 욕망과 같을 수 없다.

모두가 다르다.

모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른 건 나쁘지 않다.

스스로도 피로하다 느낄 만큼 설명하며 안내하는 순간에도, 이 단단한 규칙을 무르게 느끼는 사람에게 광장이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주절주절 말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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