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슬픔만 남는 것이 아니다.

흔히 자식은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묻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슬픔의 자이레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우리의 삶을 더 푸르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추임새로 돌아온다.


세상에 많은 이별이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어떻게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이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위안과 희망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던 딸은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국으로 떠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꿋꿋이 공부를 해 검사가 되지만 사랑했던 남편과의 이혼,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고, 실명의 위기를 겪으며. 작은 아들은 자폐 진단과 암 투병이라는 고통을 겪게 된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모든 고통들을 이민아는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암으로 투병 중인 극한 고통 속에서도 아프리카의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선교봉사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다시 암이 재발하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의 평온을 지켜내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 이어령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딸을 떠나보내고 3주기를 맞으며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펴낸다. 이 책 속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이어령과 아버지로서의 이어령의 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아내가 딸을 임신한 축복의 순간부터 딸을 떠나보내는 슬픔의 순간까지 딸의 모습을 회고하며 그때그때 딸에게 전하지 못 했던 아버지의 사랑과 아픔과 후회하는 마음을 회고하는 글이다. 그리고 딸에게 직접 해주지 못 했던 굿나잇 키스를 이젠 하늘나라에 있는 딸에게 글과 함께 보낸다.


우편번호 없는 편지

그런데 어찌하면 좋으냐, 너는 지금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자고 있으니, 내가 눈을 떠도 너는 없으니, 너와 함께 맞이할 아침이 없으니.

모든 게 글 쓰는 아빠로부터 시작된 일이니 그것을 푸는 것도 글로 하는 수밖에 없구나. 그래, 네가 어렸을 때 해주지 못한 굿나잇 키스를 하듯이 너의 연혼을 향해 이제부터 편지를 쓰려는 것이다. 생전에 너에게 해주지 못 했던 일,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루었던 말들을 향불처럼 피우련다.

굿나잇 민아, 잘 자라 민아, 보고 싶다 민아야.....


아이가 태어난 자란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요 행복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 곁을 떠나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헤어짐의 긴 과정이기도 하다.

네가 혼자서 목마를 타던 그날이 우리에게는 앞으로 계속될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의 시작이었던 거야,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그 반복의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너의 얼굴들이 있다....

나는 네가 탄 회전목마를 멈추게 했어야 했다. 그 목마에서 너를 내리게 하고 손을 잡고 빨리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까지도 너는 내 곁에 있었을 것이고 이 편지를 너에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페가수스처럼 목마에 날개가 돋치고 너는 하얀 차양의 모자를 쓰고 눈부신 구름 위로 사라졌구나.  


유명한 정신의학자 V.E. 프랑클은 인간을 호모 파티엔스로 정의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아픔을 아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기쁨도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산모의 고통을 통해 깨달았다. 엄마가 널 낳을 때 겪었던 고통으로 사랑을 얻었던 것처럼, 나는 너를 잃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너에 대한 사랑을 얻었다. 네가 살아있을 때에는 경험하지 못 했던 절대에 가까운 그 사랑 말이다.


나는 잠시 하나님을 원망했다. 주님을 위해서, 훈우 또래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방황하는 땅끝 아이들을 위해서 아픈 몸으로 기도를 드렸던 너의 정성이 안타까웠던 거야. 병들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사역해야 하는 너의 그 검불 같은 야윈 몸에서 무엇을 더 가져간단 말이니. 차마 애처로워 무엇을 더 네 몸에서 거둬 갈 수 있었겠니. 나는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정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너를 세상으로부터 데려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납득할 수가 없었어.
그 조용한 방, 새벽이 지나고 밝은 햇빛이 비치는 그 방에 3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정말 네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어. 그 속에서 너는 하늘의 신부로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어. 그때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비겁하다고 느꼈어. 당사자인 너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의 신부 옷을 입고 지상을 떠났는데, 신앙심이 부족한 나는 주님에 대해 욕된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거야.


너는 한 아들을 잃고 세상의 땅끝 아이들을 품었다.

나는 딸 하나를 잃고 더 넓은 세상의 딸들을 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부모님을 떠올리고 아이들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곁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듯 저 아이들도 자기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언젠가의 우리의 곁을 떠나겠지. 내가 자라는 동안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듯 내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의 모습들 어떻게 기억할까.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서 딸과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어릴 적 모습들을 기억하곤 했다.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도 떠오르지만 서운했던 일들,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속상한 일들이 뒤늦은 지금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제 기력이 쇠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아빠는 손녀의 모습에서 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곤 하신다. 나는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부모님은 손자 소녀를 통해서 당시 딸에게 전하지 못 했던 마음과 사랑을 전해준다. 책을 읽으며 용기를 내어본다. 부모님에게 미쳐 전해드리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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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5-07-1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