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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 인생은 대리가 아니니까
김희철 지음 / 동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저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으로 대리기사로 일한 그날 그날의 일들을 까먹기 전에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온라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대리기사를 불렀을 때 기사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매너 있게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바램도 담고 있단다.
내가 뱉은 말, 내가 하는 행동을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가 가져가는 이익이 남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한 것은 아니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써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영화 작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점점 커졌다고 한다.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마이너스가 커지는 고정수입이 없는 생활은 너무 힘겨웠다.
저자는 대리기사뿐만 아니라, ㅌㄷ드라이버, 퀵 배송, 택배 배달, 카풀까지 차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었다.
20%에 달하는 수수료를 제외하고 기름값도 본인 부담, 차가 망가져도 본인 책임, 시간 맞추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는 사람 피 말려 죽이는 이 시스템의 착취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밤에 대리운전을 뛰다 보면 거리에서, 버스에서, 서울 외곽 아파트촌에서 자주 마주치는 대리기사들이 마치 길고양이처럼 느껴졌단다.
휴대폰 대리 앱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길고양이, 바로 저자의 자화상이다.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는 차주 눈치 보면서, 진상 취객의 무례도 참아내면서, 새벽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두 발로 달려야 하는 대리기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리기사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은 접하게 되다 보니 현장 인류학 박사가 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단다.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등록금 내고 배운 것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을 것을 배우는 것 같다고....
저자의 글에서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과 살짝살짝 꼬집는듯한 블랙 유머를 곁들인 혼잣말을 통해 세상이 좀 더 괜찮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리기사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고객들 중에는 배려심 없고, 매너 없고, 무례하고, 인성이 바닥이고, 입이 걸레 같은 천박한 인간들이 참 많던데, 세상을 좀 더 괜찮게 바꿔나가는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심이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기본만 잘 지켜도 참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리기사는 술에 취한 당신의 차를 잠깐 동안 대신 모는 노동자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
p. 90-91
대리기사를 부른다.
10분이 지났는데 오지를 않는다.
이놈의 기사 놈은 뭐 하는 데 이리 오래 걸려?
기사가 헐레벌떡 도착하면 그제사 서로 술값을 낸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출발하자고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며 보닛 위에 짐을 올려두기도 한다.
드디어 출발.
큰소리로 통화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유튜브로 성경 공부를 하든 내 맘이다.
내가 낸 돈으로 산 내 공간이요, 기사 따위는 내가 엄연히 돈을 주고 부른 드라이버니까 상관없다.
불만이 있다면 딴 차 잡아라.
나는 또 다른 놈 부르면 되니까.
너 말고도 대리기사는 얼마든지 많다.
도착 후 주차할 자리를 찾아 뺑뺑 돌다 겨우 주차를 마친 대리기사가 복귀하는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우주정거장 기지 같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비상 탈출하듯 출구를 찾아 10분이 걸려 걸어 나가든, 찜질방에 가서 있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가든 전혀 내 알 바가 아니다.
당신은 대리기사고 나는 결제를 마쳤다.
대리비가 너무 낮다고?
네가 계약한 회사에 얘기해라.
나는 경제적 소비자일 뿐이다.
p. 267
오후에 이촌동에서 방배동 학원으로 가는 젊은 친구를 태웠다.
유튜브를 보는지 그 소음이 무척 크고 거슬렀지만 줄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시비라도 붙어 괜한 문제가 생기면 운전기사인 나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학생에게 아무런 지적을 해주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부모의 책임을 묻는 것도 부질없다.
부모는 학원비, 등록금 버느라 바빠서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나의 관심과 나의 이익과 내가 받는 고통만 중요하고 타인에게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신세대의 출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꼰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