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세상의 불편함에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던 고집쟁이가 얼마나 이 사회와 결을 같이할 수 있는지 시험 삼아 시작한 밥 먹는 술집이다.
어차피 잘되지 않을 거고, 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걸 모두 해볼 심산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벌려왔단다.
광장장은 가게를 꾸려 수익을 낼 생각보다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낸 수익으로 적자를 메울 생각을 할 만큼 가계 수익에 대한 기대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광장'은 나와 같은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단다.
집에서만 일하는 작업자들에게도 내킬 때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오래 일해도 눈치를 보지 않는,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광장'의 시작은 광장장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단다.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의 장이라고 생각했었던 '광장'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고 함께 공감해주었다고 한다.
누구나 각자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한 것 같았다.
물론 집이 그 기능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지만 홀로 앉아 쉬는 집 말고도 기분을 환기시키고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데 '광장'이 그런 곳이길 바란다고 광장장은 말한다.
'광장'은 누군가에게 집 같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건강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갈 힘이 생기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룰 많은 불편한 공간이고 얼굴을 붉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는 '광장'다운 공간이라고 생각한단다.
공간이 공간만의 매력을 갖게 되는 것, 가끔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기에 더욱 편안한 공간이고 싶었다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광장'과 잘 맞는 이들만의 공간, 그들만의 안락함이 되도록 더욱 공고히 쌓아가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단다.
'광장'을 알게 된 건 <밥하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책을 통해서다.
'광장'이 마음에 들었고 광장장의 운영 방침과 마음 씀씀이마저도 나에겐 취향 저격이었다.
룰이 많다는 '광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반말 페이'였다.
'반말 페이 : 반말로 주문하면 두 배로 받습니다.'
광장장은 '광장'을 오픈하고 반말로 주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반말 페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괜히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광장은 불꽃 튀는 싸움터가 된 것이다.
광장장이 반말 페이를 제도화한 건 돈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반말에 마음이 상했으니 음식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의미가 더 컸다.
'광장'은 선불제를 시행한다.
반말 주문을 했을 경우 금액이 2배 청구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알려주므로 부당하다 싶고, 기분이 언짢고 불쾌하다 싶으면 주문을 취소하고 가게를 나오면 될 일이다.
솔직히 돈을 더 내고 먹고 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있었고 반말 페이에 받은 돈은 따로 보관해 기부를 한단다.
며칠 전 인스타를 통해 불미스러운 글을 보게 되었다.
반말 페이로 기분이 상한 한 손님이 두 배 청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주문을 했고 식사를 했단다.
그리고는 SNS를 통해 불만사항을 올린 모양이다.
양측의 입장을 서로 밝혔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다르던데 진실공방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SNS에 달린 댓글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반말 페이'가 이렇게까지 욕 들어야 할만한 문제인가 싶었다.
반말을 했다고 더 돈을 지불하라는 게 미친 짓이라 욕하기 전에 반말을 하는 게 더 문제 아닐까?
나이가 많으면 반말해도 되고, 손님이면 반말해도 된다는 건가?
요즘엔 나이를 불문하고 반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끝이 모호한 반말도 많이들 한다.
실제 '광장'에서도 반말을 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초중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입장을 바꿔 본인이 반말을 듣게 되어도 기분이 불쾌할지,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생각은 말이 되고, 감정은 말투가 된다"고 했다.
본인이 한 말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든 걸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 접한 사건이라 내심 괜찮을까 걱정도 되고 이러다 가게 문을 닫는 건 아닐까 우려도 되었다.
꼭 가보고 싶은 '광장'이었고 꼭 체험(?) 해보고 싶은 '랜선에서 광장으로'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든 생각은 광장장은 사고가 굳건하고 멘탈이 강한 분 같아 꿋꿋이 잘 견뎌 내주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광장'에서의 시스템이 사회에서도 익숙해진다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게가 될 것이라며 '광장'에서의 규칙들이 특별하지 않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도 사소하게라도 지켜보고 누려본다면 조금씩은 달라질 거란 광장장의 말에 동감한다.
광장장이 전하는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입니다' (P.310~)
처음엔 혼자 식당을 이용할 때 겪던 차별과 불편함에 반대해서 '광장'을 열었다.
그래서 '혼자 오면 더 좋은 술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혼자가 좋은, 단체로는 이용할 수 없는 가게를 만들었다.
그러자 소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여성의 날, 비건 파티, 416TV 후원, DSO 후원, 조선학교 차별 반대 집회, 퀴어 파티, 탄핵 축제, 여성 영화제 상영 등 광장은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보여 왔다.
'광장'을 운영하기 이전부터 관심 있는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공유하고 싶었기에 광장을 운영하며 참 많은 소리를 냈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광장이라는 공간과 함께 더 크고 깊게 울리는 것 같다.
나의 외침에 가까운 의견에 사람들은 늘 걱정했다.
정치적인 이슈에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 걱정은 더 커졌다.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개중에 비이성적인 사람도 존재하기에 주위에서 많이들 걱정했다.
걱정이 너무 많다며 웃어넘기기도 했지만 실제로 불쾌한 상황은 자주 일어났고 자주 공격을 받았다.
공격하는 그들에게 광장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였다.
나는 늘 차별의 언저리에서 살아왔다.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익숙한 것만 취했다.
다르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했다.
그들은 외면하려 들었고, 그게 안 될 때는 외면하는 척했다.
나는 다름을 틀림으로 외면하려 애쓰는 사람의 비겁함에 화를 내고,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이야기가 들릴 것 같아서 버둥거렸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반대였다.
소리치는 나를 나무랐으며 차별을 차별이라 크게 이야기한 것이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시키려 하다 보니 점점 공감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그 주변이 조금씩 이해하는 색으로 물들어 갔다.
내 주변만이라도 바뀌어가는 사회를 경험하며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광장'을 통해서 하는 이야기에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고 적대적으로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다.
다양한 생김새를 지녔고 다양한 기분을 표현하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
사회가 하나의 답을 요구한다고 해도 모두의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
그 다양성의 한 점을 '광장'은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느끼는 이 세상을 뒤집어버리겠다는 기분으로 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도 위협받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 적어도 내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곳에서는 다름을 얘기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광장은 그런 공간이다.
불편할 수도 있고,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굴도 성격도 다르게 살아가듯 가게 또한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
'광장'을 운영하면서 상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
나의 상식이 비난받는 순간은 물론, 상대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항의하는 순간마다 그래왔다.
모두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없고, 모두의 욕망이 나의 욕망과 같을 수 없다.
모두가 다르다.
모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른 건 나쁘지 않다.
스스로도 피로하다 느낄 만큼 설명하며 안내하는 순간에도, 이 단단한 규칙을 무르게 느끼는 사람에게 광장이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주절주절 말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