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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 이방인 안겔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김지혜 지음 / 파람북 / 2019년 6월
평점 :
이방인 안젤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다름과 부족함의 경계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이다
저자 김지혜가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산 지도 벌써 10여 년.
한국인과 독일인 사이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여유를 선물 받았다고 말한다.
한국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소박한 식탁,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 아무리 보아도 특별할 것이 없는데,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건데, 왜 이곳은 지옥이 되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들은 왜 행복할까?
궁금증을 품은 채 그들 속으로 들어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수많은 질문과 마주해보니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타인의 고통과 행복에 무뎌지지 않고 살아가노라면 그 행복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더란 것이다.
낯선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해도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며 힘이 되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헬조선에서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그곳….
몸이 아파도 출근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 인간의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파업이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는 모습, 한 부모 가정이 국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되려 손가락질 받는 행태 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들.
매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기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는 데만 급급하고, 너와 나를 나누고, 분류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다름'과 '부족함'이라는 잣대 안에서 누군가를 이방인으로 만들거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지옥을 면하는 길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단상들과 학벌과 능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들만의 세상을 사는 소수 상위 몇% 부류들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통받는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같이 공감해주며 나아갈 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유학으로 생후 15개월 된 아들과 함께 독일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독일과 한국의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들을 생활 속 에피소드들을 저자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에 음악가 특유의 감성과 부드러움을 더해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살기 좋고 행복해 보이는 독일이라도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경계와 인종차별은 그를 숨 막히게 만들었지만 그녀가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 였단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고향인 한국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을 머나먼 독일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사람을 알아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사람 그 자체이지, 사람의 조건이 아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특정 나라나 종교에 선입견을 갖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고, 한정된 경험과 부족한 정보에서 오는 편견만큼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게 없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P. 24~25
사람들은 '학벌'을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만 쓰지 않는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아까운가' 저울질하는데 쓰기도 한다.
결혼 전, 남편의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정호가 정말 아깝다고 생각해요. 알아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재빠르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미국엔 가봤어요?"
"아니요."
내 대답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하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왔으면 멀리도 온 거지. 코스닥이 뭔지는 알아요?"
미국과 대구, 서울 그리고 코스닥에 이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닐 때, 남편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남편을 본 그분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남편에게 말했다.
"정호야! 제수씨가 사람이 아주 좋아."
p.66
“정말? 정말 그것만 받아?”
유디트의 생각에 내가 받는 월급이 너무 적은 액수였던 모양이다.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자니까 그렇겠지.”
내 말을 듣던 유디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독일 공립학교의 경우는 달라.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는 기본급이 있어. 수위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교사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말이야. 아, 정말 말도 안 돼.”
P. 67
이곳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한다.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런 말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걸 물어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사람 옆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조금 더 배려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P.68
독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 자체가 엄청 어려운 일이라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단하거나 똑똑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걸 말해주어야 할 의무 같은 걸 느꼈다.
"한국은 독일하고 상황이 달라서 대학 간 격차가 있어. 미국처럼.
내가 나온 대학은 그렇게 좋거나 유명한 대학은 아니야."
내 말이 끝나자 한나는 잠깐 내 얼굴을 말없이 몇 초 동안 응시하더니 조용히 내게 말했다.
"너랑 나랑 친구가 되는데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문이 막혔는데, 희한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늘 나이, 출신 학교, 직업, 가족 관계를 묻는 호구조사부터 시작하고, 배우자나 부모의 직업부터 사는 곳, 사는 정도까지 탈탈 털어놔야 관계가 시작되던 한국에서 30년 살다 온 내게 조금은 낯선 풍경이었다.
P.76
문득 내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적어도 몇 번씩은 썼던 말들, '이쁘다', '날씬하다', '키가 크다', '살이 쪘다, 빠졌다'같은 표현들을 독일에 온 뒤로 써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때 나는 겉치장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얼굴에 자신 있나 보지?"하는 농담을 가장한 비아냥거림이 날아들거나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일이 많았고, 사람들은 옷과 화장, 날씬한 몸을 잣대로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논했다.
몸매나 옷차림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 건 이곳에 오고 난 뒤부터다.
한국에선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면 거리 전체가 그 옷으로 물결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에서는 그런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거나 똑같은 가방을 드는 일은 자기만의 취향과 색깔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고, 따라서 그런 일을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당당하게 입고 다닌다.
옷에 의해 인간이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옷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서로 존중할 줄 하는 공동체.
이곳에서 옷과 가방이 사람을 삼키는 일은 없어 보인다.
p. 80
독일에서는 경제가 불황이든 호황이든 상관없이 벼룩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상위 10%, 하위 10%가 아이들 옷차림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회.
최소한 이곳에는 옷과 가방의 가격으로 '계급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없다.
구별과 차등이 없을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P. 85
그 친구와 니야기를 나누며 나는 또 그 '먼 나라'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녹초가 된 엄마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회.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기는커녕 무자비하게 짓밟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사회가 그 친구에겐 정말 상상하기 힘든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p. 98
누군가의 목숨을 갈아 넣은 편리함은 과연 우리에게 안락함만을 가져다줄 것인가?
누군가의 저녁 시간을 빼앗고, 누군가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과 맞바꾼 신속하고 편리한 시스템으로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길현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영화 <일 포스티노> 속 집배원 마리오가 감명받았다며 읊조리던 네루다 파블로의 시 한 구절을 탄식처럼 내뱉는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p.153
인지학은 몰라도 만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노는 게 공부'라는 걸 알고 있고 자신 역시 그렇게 자라온 사람들.
함께 노는 것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영어 유치원 같은 건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지구 한편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이 의외로 꽤 괜찮으며,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도 꽤 기대가 되고 믿음이 간다는 것을 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 세상엔 대치동 말고 이런 동네도 있다.
p. 161
10년 넘게 독일에 살면서 느끼는 건데, 이곳에서는 최소한 돈이 없다고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당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런 게 '야만'이라는 것 정도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없어도 최소한 야만은 벗어던진 세상 정도는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돈이 아니라 인간이 기준이 되는 공정함과 잣대로 굴러가는 세상 정도는 꿈꿔볼 만하지 않겠는가?
건물은 낡고 후지고 인터넷을 느려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공감이 제도와 법으로 뒷받침된 사회, 그래서 서로가 공존 가능한 사회 말이다.
p. 167
아트라베시아모!
이탈리아어로 "같이 건너보자"는 말이다.
독일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이슈들을 지켜볼 때마다 매번 이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머리를 짓밟지 않고 손을 잡고 함께 강을 건너는 사람들,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아는 사람들.
인간 세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지옥을 면하는 길은 가능해 보인다.
그저 서로 손을 잡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작곡, 연주한 피아노곡이 담긴 CD가 별책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