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피언 왕자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4
C. S.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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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세계를 그렸다고 하지만 이교도적인 그리스로마의 신화 세계가 버무려져 있는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신자로 돌아갔다는 저자의 정신적 경험이 모순적 두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양립시킬 수 있는 배경이었나 싶다. 이 편은 상상력이 유난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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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의 피아노
케이티 해프너 지음, 정영목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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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정말 글을 잘 쓴다. 인간의 모순, 삶의 모순, 시간의 운명적 엇갈림과 교차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당연히 인간 굴드의 매력에 홀렸고 문제의 그 피아노에게도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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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상징성
뽈 디엘 지음 / 현대미학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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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면에서-생소하고 전문적인 내용, 번역 문제, 등등-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신화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특히 문학 전공자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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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
이수련 지음 / 위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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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부분은 지나치게 압축적으로 언급되어서 좀 더 설명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식만을 건조하게 늘어놓거나 자신의 생각을 단정적으로 전달하면서 아이의 양육자인 어른을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아이의 본질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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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소년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3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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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소년>은 나에게 단순한 모험, 성장이야기 이상의 더 근원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 이야기로 읽혔다. 

 

옛날에 옛날에 어떤 낯선 나라에 가난하고 비열한 어른 밑에서 구박을 받는 연약하고 불쌍한 주인공이 살았다... 소설은 이렇게 전형적인 옛날이야기 혹은 민담처럼 시작된다.

 

아이들은 주인공에게 당장 마음이 끌릴 것 같다. 아이는 어른보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하고 독립해서 살아갈 수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약자, 속상한 약자, 그래서 샤스타에게 자연스럽게 동질감을 느낄 법하다. 샤스타는 부모가 없는 고아에다가 못된 어른 밑에서 고생을 하는 처지였다. 샤스타를 데리고 사는 어부는 갓난 아이인 샤스타가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건져준 사람이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나쁜 부모라도 아이들은 그 부모에게 매달리고, 아무리 나쁜 집이라도 아이들은 그곳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샤스타가 어부와 집을 떠나려면 극적인 일이 벌어져야 했다. 어느날 샤스타를 노예로 사고 싶어하는 귀족이 나타나고, 샤스타가 아버지라고 부르던 어부가 샤스타이 몸값을 놓고 귀족과 흥정을 벌인다! 그래서 이제  샤스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낯선 세계로, 바깥으로, 더 위험한 세상으로 나설 준비를 갖추게 된다. 

 

모험에 꼭 필요한 조력자는 말이었다. 브레라는 이름의 이 말은 샤스타에게 도망칠 것을 제안하고 자기자신도 도망칠 이유가 충분히 있었는데, 나니아에서 태어난 '말'을 할 줄 아는 말로서 어릴 때 불행하게도 납치를 당해 낯선 나라에서 갖은 모욕을 참으며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는 자신을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샤스타와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자긍심이 넘치는 인물이다. 자긍심과 자만심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지.

 

(이야기가 단조로워지는 것을 막는 장치로서, 작가는 한 쌍의 여자아이-말을 등장시키는데, 남성과 여성의 조합은 세상의 조화로움을 상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듯 싶다.)

 

샤스타와 친구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나니아로 가는데, 그 여정에서 나니아의 창조자인 신적 존재 아슬란은 이들이 자신들의 최선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이때의 최선은 최선의 능력이기도 하고 최선의 선함, 최선의 지혜로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슬란이 이들을 돕는 방식이 의미심장하다. 아슬란은 샤스타와 친구들을 직접적으로 돕지 않고 (내지는 은총을 내리지 않고) 이들이 이미 자신 안에 갖추고 있는 '잠재된 가치와 힘'을 발현시킬 수 있게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도와준다. 신은 다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조력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켜보는 것이 신의 역할이 아닐까? 정말 감탄해야 할 것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지켜보는 신을 생각해낸 인간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샤스타는 나니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본래 위치를 찾아낸다. 샤스타는 왕의 아들이었다! '왕'의 아들이라니, 보잘 것 없는 아이에서 사회계층의 맨 꼭대기로 신분이 극적으로 솟구친 것이다.  

 

아이들은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 엄마는 계모이고, 언니 오빠들은 이복형제들이며, 자기는 더 훌륭한 집안의 자식인데 불행하게도 비천한 위치로 떨어져 불행하게 산다고. 실은 내가 한때 그랬다. 아이들이 이런 상상을 하는 까닭은, 이들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게 미숙한데 어른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나를 야단치기만 하고, 나의 자유는 의무에 뒷전으로 밀리고, 나는 귀한 대접을 받고 싶은데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세상에 적응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두 이상주의자이다. 이상주의자들이기에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과 세상은 더더욱 끔찍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세상을 꿈꾼다. 이를테면 나니아 같은...

 

어쩌면 기독교적 세계는 너무나 이상적이라는 점에서 어린이가 꿈꾸는 세계와 많이 닮았다. 작가가 기독교의 세계를 판타지로 다시쓰기한 이 소설에서 나는 기독교 사상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의 열망을 읽었다. 이상향을 향한 뜨거운 바람을.

 

아이들은 이 소설에서 단순히 재미만 느낄까? 어떤 아릿한 통증 같은 것이 여운으로 남지는 않을까? 이상향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세계인데, 두 세계의 괴리가 이 판타지 이야기 때문에 더 뚜렷하게 부각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하늘의 별은 절대 딸 수 없고, 나니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왕의 아들 딸이 아니고, 설사 왕자와 공주라고 해도 이것을 절대 증명할 수는 없다는, 그 어떤 절절한 안타까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

 

이 판타지 이야기는 여러 길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길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가치있고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하겠다. 이 이야기가 외로운 아이에게는 위안을, 혼란한 아이에게는 안정감을, 씩씩하고 행복한 아이에게는 만족감을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힘을 내서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놀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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