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름다운 고독
크리스틴 해나 지음, 원은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하늘이 파랬다. 색이 얼마나 선명한지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터의 짙은 녹색과 흔들리는 풀, 보랏빛 야생화, 자갈 해안을 따라 숨을 쉬는 파란 바다로 이어지는 잿빛 지그재그 모양 계단. 그 너머에는 아주 오래전 빙하가 조각해놓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피오르가 있다. (72p)
한 없이 아름답지만 더없이 잔인한 땅, 알래스카
레니에게는 알래스카가 그런 곳이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아빠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늘 악몽에 시달리고 포악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런 아빠를 아픈 사람이라고,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엄마는 레니에게 늘 강해져야한다고 말한다.
레니는 싸움과 사랑을 반복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여느 아이들처럼 살아왔다.
그런 레니의 인생에, 어쩌면 레니 가족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한 통의 편지.
그 편지는 아빠와 함께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보의 아버지로부터 날아든 것이였다.
보가 아빠를 위해 남겨둔 땅이 있다는 거, 그 땅은 바로 알래스카 벽지의 땅이였다.
아빠는 거침없이 선택하고 실행에 옮긴다. 레니와 엄마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로 웃음과 삶의 의욕을 잃은 아빠가 그 순간만큼은 행복함을 보며, 원치 않은 삶이지만 아빠의 선택에 따르게 된다.
'알래스카에서는 한 번의 실수만 저지를 수 있다. 두 번째 실수는 곧 죽음이다.' (49p)
알래스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은 큰마지라는 여자가 해 준 이 말은 단순히 알래스카가 무서운 곳이라고 겁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알래스카에 오기 전의 삶과 생활 태도는 모두 잊고, 알래스카의 겨울에 적응하며 최상위의 포식자가 인간이 아니기에 총을 쏘고 죽여서 식량을 구하고 안전을 지켜나가야 하는 말 그대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알래스카의 생활과 그곳에서의 아빠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예상치못한 야생 동물의 습격,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이 점차 폭력으로 치달음등은 레니의 삶을 점점 바꿔 놓게 된다.
답답했다. 안타까웠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하지 못함에 힘들어하는 레니를 보는 것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코라의 모습이, 이성에 눈을 뜨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레니와 매슈 사이의 장애물과도 같은 매슈 아빠와 레니 아빠의 갈등이....
나에게 알래스카는 미지의 땅이였다. 이 소설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나에게 크로스틴 해나의 <나의 아름다운 고독>이라는 작품은 알래스카라는 땅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잔혹한 땅이기도 함을 보여 주었다.
레니에게 있어 알래스카는 매슈라는 친구를 선물해주었고 사랑을 알게 해 주었지만 모든 것을 앗아간 곳이기도 했다.
알래스카보다 더 혹독하고 잔인했던 아빠, 그런 아빠에게 매맞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레니는 그녀를 옥죄고 있던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였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이 작품은 끝날 때까지 숨죽이게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레니의 삶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양의 소설이였음에도 작품 속에 그려지는 알래스카의 전경과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알래스카인의 강인함, 레니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면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나가게 했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이 순간도 뭔지 모를 먹먹함과 안타까움으로 계속해서 레니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