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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더운 눈물로 시작하는 고백.
홀린듯, 알지 못하는 무엇에 이끌리는듯. 그렇게 산 책이었다. 그러나 단번에 펴보지 못했다. 읽어주세요라는 신호를 보내오는 책을 일부러 외면했다.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싶어 겁이났다. 마음 반대편 한구석에선 꼭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읽고 그만큼 아프고 나면 죄책감이 덜어질 것만 같았다. 28일, 엄마의 8주기를 치루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가슴이 조금은 두근거린것도 같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간간히 바튼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밤새 마른 기침을 뱉어내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때는 파란 미명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눈앞에 수북히 쌓인 크리넥스 더미를 치우고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옅은 잠이 들었었나보다. 막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감긴 엄마의 눈을 억지로 뜨게하며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다. 한숨을 쉬자 입밖으로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쏟아져나왔다. 목이 잠기고 얼굴이, 몸이 뜨거웠다. 아......녀석들의 감기가 드디어 내게 왔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내 체온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이 콧잔등을 타고 떨어져 베갯잇을 적신다. 한번 터진 눈물은 나도 어쩔수 없이 막무가내다.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머리까지 뒤집어 쓴 이불속에서 소리를 죽이고 펑펑 울었다. 어린 아들은 옆에서 엄마 왜 울어라는 말을 불완전한 발음으로 물어온다. 한동안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숨겨놓은 슬픔은 깊은 우물의 마르지 않는 물처럼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일주일째 식탁위에 자리잡고 나를 기다리던 이 책이 이래서 두려웠다. 읽고나면 갈무리 해두었던 내 죄책감이 또 들쑤셔질까봐 무서웠던거다. 여전히 내 잘못은 뒷전이고 내 마음 아프고, 힘들어질까봐 책을 들지 못했던거다. 머리가 무겁고 숨쉬기가 힘들 정도가 돼서야 가까스로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연신 쏟아지고 있었지만 닦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니까. 밥달라며 졸라대다 갑자기 우는 엄마에게 아빠가 술먹고 늦게 들어왔어, 엄마 어디 아파 연신 물어대며 작고 따뜻한 손으로 미처 마를 새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던 아들. 내 엄마처럼 나도 이 아들의 엄마니까. 그러나 이내 아들을 끌어안고 또 울 수밖에 없었다. 때맞춰 찾아온 감기를 핑계삼아 나는 그렇게 울 수밖에 없었다.
고통의 편린들과 마주하다.
작가는 우리가 잊었던 엄마에 대한 글이라고 했다. 잊고 있던 엄마라......하. 깊고 원망어린 장탄식부터 나온다. 잊었던 엄마라니. 끝까지 이기적인 나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때문에 괴로웠던 날들이 있었다. 쳐다보는 것, 눈길이 닿는 것, 내가 느끼는 오감 모두에서 불쑥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 괴로움과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것이 기억이건만 엄마와 관련된 기억들은 그 옛날, 잊고 있었던 작은 조각까지 불쑥 떠올라서 나를 미치게 만든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들이 그 기억들인데 작가는 이런 내맘과는 상관없이 가슴에 대못을 쾅 박아버렸다.
'너'로 시작되는 어색한 문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로 슬쩍 바꿔서 읽었었다. 뭔가 특이해 보이고자 사용한 소설적 기법같은건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어색하고 유치한 제스추어 같아서 싫다. 이 또한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것 같아서 내심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중엔 귀찮아서 그냥 보여지는 그대로 너로 읽었다. 그런데 이건 작가의 교묘한 작전이었나보다. '너'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무척이나 날카로운 일침이되어 나를 찌르고 있었다. 여태 엄마와 관련된 내 잘못을 누군가에게 드러내 본 적 없는 나는 벼락을 맞은것 처럼 한 순간 모든것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너는 그랬다라는 문장은 내 안에 감춰두고 혼자만 아파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너 왜그랬니가 되어 나를 호통쳤다. 나는 작가의 '너'가 되어 내 대신 조근 조근 기억해주는 사건들에 대해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옷을 입어라도 볼 걸 (엄마를 부탁해 17쪽) 같은 후회는 내게도 수도없이 찾아온 거였다. 자취를 하던 나를 위해 정성껏 싸주신 반찬통들이 무겁고 창피해서 가져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날, 그때 그거 기쁜 맘으로 가져올걸, 저려놓은 배추 좀 씻어달라던 엄마의 지친 목소리를 외면하고 할 줄 모른다고 뻗댔던 날, 대충이라도 배추 씻는 흉내라도 내 볼걸. 늦은 후회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걸 너무 늦게 알았다.
너는 왼손과 왼발을 쓰는게 편한데 엄마는 왼손을 쓰면 인생에 울 일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엄마를 부탁해 49쪽)라는 기억은 엄마의 왼손을 떠오르게 했다. 짧고 투박한 왼손으로 누구보다 반듯한 글씨와 현란한 칼솜씨, 바느질 솜씨를 갖었던 분.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라 당신 옆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늘 미안해 했던 엄마였다. 왼손을 볼때마다, 왼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은 언제부턴가 엄마가 돼버렸다. 엄마도 왼손을 써서 인생에 울 일이 많았을까. 묻고 싶어도 이젠 물을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너는 젓가락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다. 엄만 그리 먹으면 맛이 덜하다, 그냥 아, 해봐라, 했다.(엄마를 부탁해 56쪽)를 읽을땐 엄마가 내밀던 뻘건 김치속이 생각났다. 이리와서 간 좀 봐주라 했을때 양치해서 먹기 싫다고 했었는데. 너밖에 없어서 간 봐줄 사람이 없어 얘. 얼른 와봐,라고 부를때 억지로 한 입 받아먹고 선심 쓰듯이 맛있어 무뚝뚝한 한마디를 뱉었던 그날이 행복이었다는걸 알았다면 나는 매운 김치속을 백번이라도 감사히 받아 먹었을텐데.
이 밤 안에 아들에게 꼭 전해줘야 할 것이 있다는 그의 엄마 말을 들은 청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동사무소까지 바래다준것이었다. 그의 엄마는 한겨울인데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엄마를 부탁해 91쪽)에서 잠시 눈이 감겼다. 그때 엄마는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나 불현듯 이상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날까지 가져가야 하는 학급비를 주지 못했던 엄마에게 오만 신경질을 부렸고 2교시 끝나고 교문 앞에서 만나자 말씀하시며 미안해 하셨었다. 그리고 2교시가 끝나고 부리나케 교문 앞으로 간 내게 잠긴 철창 문 사이로 2만원을 내미셨었다. 어디서 났냐는 말따위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늦지 않게 낼 수 있어서 지킨 어린 날의 자존심만이 소중할 뿐이었으니까.
대학생인 네가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안 가본 나에게 학교에 가자면서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했을 때의 네 말투의 높낮이도 기억하고 있고나 (엄마를 부탁해 220쪽) 그런날이 있었다. 개교기념일 축제를 알리는 초대장이 집에 도착했던 날, 학교에서 하는 행사같은데는 관심도 없던 내가 훑어보고 쓰레기통에 버린 그 초대장을 엄마는 보셨나보다. 얘는 이런데 엄마 좀 데리고 가면 얼마나 좋니, 꼭 이런건 말도 안하더라라는 섭섭함을 동생에게 내보이셨다는 말을 듣고 당시에도 조금 미안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보같은 나는 입학식과 졸업식, 딱 두 번 엄마와 교정을 밟아봤었다. 그게 뭐 큰 행사라도 된다고. 실컷 좀 모시고 다닐걸. 팔짱 끼고 연극도 보고, 날마다 출석도장 찍듯이 들렸던 근사한 까페에서 커피도 마셔 볼걸. 당신은 가지 못해 동경하던 공기와 기분이었을텐데. 나로 인해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느끼실 행복을 드릴 수 있는 날들은 무수했음에도 덧없이 흘러버려 지금은 그 비슷한 흉내도 낼 수 없게 돼버렸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중략) 자랑스러워서 난 지금도 가끔 니가 진짜 내 속에서 나왔나 신기하다니까.....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나.(엄마를 부탁해 93쪽~94쪽) 책을 펼치고 조금씩 찾아온 슬픔이었다. 한 번을 참고 읽었다. 내 이야기처럼 슬퍼서 또 펼쳐 읽었다. 그렇게 자꾸 자꾸 읽게 만들더니 결국 나는 폭발했다.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흐느꼈다. 나도 엄마에겐 처음이었다. 기쁨을 주었던 처음이었다. 자랑스러워했던 처음이었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특별했던 처음이었던거다.
아.........내가 엄마에게 해드린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하찮은 것 하나 해드리지 못했다. 해드리고 싶어도 지금은 해드릴 수가 없다. 다 알고 있던 일이기에 충분히 아파하고 괴로워했는데 이 글은 이렇게 잔인하게 나를 꾸짖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나를 흔들어버렸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했다. 자식을 둘이나 키우는 지금도 겨우 그 시작만을 알 뿐이다. 늘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들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비롯됐다. 되돌릴수 없는 사랑.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갚고 싶은 사랑이 생겼는데 받을 사람이 곁에 없다. 처음이었던 오롯한 그 마음을 나는 겨우 두 번째나 세 번째에 자리를 잡아 넣고 선심 쓰듯이 돌려드리려고 건방을 떨고 있었는데 이럴줄 알고 화가나셨었나 보다. 그깐 동정같은 마음은 필요 없다 미리 물리치신건가보다. 한 번만 봐주시지 그러셨냐고 원망과 투정을 부려봐도 소용없는 것을. 이 세상 어떤 말이 이 애달픔을 이처럼 생생하게 와닿게하고 가슴을 난도질하며 후벼팔 수 있을까.
이 책이 무서워졌다. 불면의 밤을 보낸 수많은 날이 단 하루로 모아져 나를 후려치는것 같았다. 짧은 내 인생의 뒤를 밟고 쓴 이야기가 아닌가 섬뜩했다. 머리 아픈 엄마, 늘 일만 했던 책속의 엄마는 내 엄마와 오버랩되어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쓰러져 의식을 잃기 전까지 혼자 벚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으시고, 아픈 머리를 싸매고 가을에 거둔 콩을 골랐다. 선선함이 지나쳐 쌀쌀했던 그날이, 그 속의 엄마가 떠올라 숨이 막혀왔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목이 메어 헐떡이게 만들었다.
나만의 아픔은 아니었거늘 돌아보지 못했다.
엄마가 우리 곁은 떠난 후, 나는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을 보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한다 여겼던 사람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슬픔과 실망에 눌려 오랫동안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작가는 이런 나를 또 한번 야단쳤다. 나만 아팠던 게 아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너만 괴로운것이 아니야라는 말을 큰 오빠와 아버지의 기억과 아픔을 통해서 알려줬다. 우리 식구는 엄마가 떠난 후 한번도 함께 슬픔을 게워낸 적이 없다. 남동생은 술과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도망다녔고, 여동생들은 나약한 아버지와 언니때문에 내색조차 못했다. 받은 사랑이 제일 커서 나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나는 엄마가 쓰러진 날로부터 상을 치루는 날까지 씌여진 막내 동생의 일기장을 통해 이 아이가 이렇게 슬펐구나 했을 뿐이었다. 배우자를 잃은 아버지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혼자 이겨내기도 벅찬 일을 안고 있는데 어른이 왜 중심을 못잡을까 싶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던 슬픔은 각자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엄마때문이었다는 것을 큰 오빠와, 아버지의 슬픔을 접하고 나서 나는 알았다. 누구의 슬픔이 더 크고 작은지 따질 수 없게 만드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똑같이 슬픔과 후회라는 이름으로 자라면서 각자를 좀먹었던 거다. 그런데 우리는 왜 슬픔으로 변하여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남아 있는 엄마의 기억을 함께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우리의 엄마이고 아내였는데 왜 슬픔의 기억들은 혼자만 끌어안고 감춰두었을까. 한동안은 아프기 싫어 서로 피했던 단어가 '엄마'였다. 시나브로 그게 어떤 규칙처럼 우리를 옭아맸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러면 우리보다 엄마가 더 슬펐을거라는 생각을 진즉에 했어야만 했다. 함께 했던 시간을 많이 그리워하고, 당신의 빈 공간때문에 많이 슬프다는걸 엄마에게 알려줬어야 했고 그것이 엄마를 향한 마지막, 오롯한 사랑이라는걸 알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위로받고 위로해야만 했다. 그 또한 엄마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거라는 걸 알아야했다. 바보같은 나는,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이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엄마를 잃어보지 않은, 그래서 그 슬픔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사람의 글을 통해 알게 된 거였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생각한다.
당신이 일찍 생을 접을거라는것을 아셨을까. 생전의 언젠가 먼 하늘을 보며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엄마가 아직 돌아가시 전부터 하늘을 나는 새들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엄마가 떠난 지금은 말할것도 없다. 홀로 날고 있는 새를 보거나 나무에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를 볼때면 혹시 엄마가 아닐까, 믿기 어려운 상상을 한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글속의 엄마도 새가 되었고 곧 나의 상상에 확신을 주었다. 우리 엄마도 분명히 새가 되었겠구나. 눈을 감기 전날 엄마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내 인생이 불쌍하다였다. 엄마는 태어날때부터 엄마인줄 알았다는 셋째 딸의 고백에서 붉어지던 내 얼굴을 숨길수가 없었던건 나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고 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이 던진 마지막 그 한마디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것 같지만 어디선가 한마리 새가 되어 훨훨 날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막혀있던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진다. 날고 있는 어떤 새를 보건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내면서 나는 또 한번 내 죄를 감추고 만다.
피에타 상을 보며 흘리던 '너'의 눈물 한 방울의 의미가, 엄마를 부탁해라는 '너'의 말 한 마디가 절절히 내 이야기 처럼 들려오는 것. 이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겪어보지 않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작가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곁에 있는 엄마를 보고, 곁에 없는 엄마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감추고만 있었던 치부와 같은 마음들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게워낼 수 있게 만든다는 것. 당신도 엄마가 돌아가셨나요? 그래서 되돌릴수 없는 후회로 가슴을 치며 새운 밤들이 있었나요?라고 물어 보고 싶게 만들며 어떤 동질감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 이것들은 내가 이 책을 통해 작가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내 상처의 일부를 치유해준 작은 희망이었고 빛이었다.
겁쟁이였던 나는 조금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스스로의 죄임을 알기에 누구 앞에서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찔러댔다. 그 슬픔과 고통으로 느끼는 자학을 죄갚음으로 여기며 살던 내게 조금은 면죄부같은 희망을 주었다. 너도 아팠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게 아팠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힘들었다. 너만의 슬픔이 아니었다라는 눈물어린 꾸지람과 위로를 동시에 해주었다. 그리고 편안해진 나는 그 어느때보다 진심어린 기도를 드릴수 있을만큼 여유도 생겼다.
엄마를 부탁해요.
더 이상 고통없는 곳에서 편안히 쉴 수 있기를.
엄마를 부를 수 있는가.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해 주시는 분이 옆에 계신가. 그런 분이시라면 부탁드린다.
부디 내가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그 말에 내 대신 애정을 담아서 불러 주시길.
오늘 할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마시길.
제발, 제발 평생을 지고 갈 나와 같은 후회는 하지 마시길.
망음을 담아 진심으로 드리는 말은 단 하나,
엄마를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