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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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폐를 둘러싼 총성없는 전쟁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하위계층 대상의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게 불과 1년전 일이다. 부실대출과 과잉공급이 맞물려 집값 폭락으로 이어졌고 세계 금융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구촌은 대공황 이후 80년 만에 처음으로 극심한 불황에 직면했다. 작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고 그나마 살아남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상업은행으로 전환해 미국 정부와 FRB의 감독을 받는 수모를 겪게 됐다.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부동산대출에서 시작했지만, 저 멀리 아이슬란드 경제까지 망가지게 되었다.

 

『화폐전쟁(Currency Wars)』은 국제금융전문가인 쑹훙빈(宋鴻兵) 중국 환추(環球)재경원장이 무려 10년에 걸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양대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5년동안 부동산 담보대출 자동심사 시스템 설계와 파생금융 상품의 리스크세무분석을 담당했다. 이책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금융재벌들의 음모를 실감나게 파헤치고 있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과 전개과정 까지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책의 전편을 관통하는 단어는 ‘음모’ 또는 ‘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우리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장’ 또는 ‘가격’의 의미가 아니라, 화폐를 주무르는 국제 금융재벌 또는 그림자 정부를 의미한다. 약 3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일어난 중대 사건의 모든 배후에 이들 국제 금융자본세력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결정권은 ‘핵무기’가 아닌 ‘화폐’라며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세계사 교과서에서 익히 들어본 굵직한 여러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국제 금융재벌들이고, 그들이 세계경제를 주무르며 역사를 새로 만들고 세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심지어는 화폐 발행권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던 링컨이나 케네디같은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 배후에도 그들이 깊숙하게 개입되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아연질색할 따름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설립, 1930년대의 대공황, 금본위제도의 폐지, 일본의 장기불황,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외환위기 등이 모두 화폐를 둘러싼 국제금융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특히 국제금융세력들이 각국정부와 화폐 발행권 및 화폐정책의 이익을 놓고 벌인 치열한 싸움의 역사를 읽다보면 흥미로움을 넘어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이책을 읽다보면 이제껏 무심코 믿어왔던 상식이 여지없이 깨진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당연히 공공은행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FRB가 사실은 공공은행이 아니라 민영은행이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은 당연히 미국정부가 달러를 발행한다고 생각하지만, 화폐발행권 역시 정부가 아닌 민간은행인 FRB가 쥐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최근 들어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도전이 거세다. 저자는 안정적인 화폐 도량형이 없이는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장 자원의 합리적 분배도 불가능하다며 금본위제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달러’가 아닌 ‘금’만이 기축통화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단호한 주장이다.

 

21세기,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책 내용대로라면 국제금융재벌의 음모가 수시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면서 우리의 삶에 언제든 큰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어이없게 두눈 멀쩡하게 뜬채로 우리 호주머니를 털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총성 없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5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쪽 눈 질끈감고 백신주사 맞는 심정으로 이책을 읽어야 한다고 권하는 까닭이 여기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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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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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무라카미 하루키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1Q84』를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이하고 리드미컬하면서도 센스 있는 특유의 문장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수많은 열혈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라카미의 문체와 센스,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세계 각국 작가들로 인해 ‘무라카미 하루키 칠드런’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이렇게 하루키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 평론가 등 전문가집단에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폄훼하는 분위기가 있는것도 사실이다.
 

배경은 1984년 일본.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 배경일 뿐이다. 하루키 소설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매력 있으면서도 고독한 인물이 등장하며, 유년시절의 상실감과 유대감 없는 가족관계, 고독·상실·허무와 단절의 그림자가 소설 전편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그들이다. 1, 2권 합쳐 모두 48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홀수 장에는 아오마메가, 짝수장은 덴고가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만나지 않는다. 아니 만나지 못한다.
 

<아오마베>
 

아오마메, 그녀는 헬스클럽 강사다. 그러나 그녀의 또다른 직업은 청부살인업자. 주특기는 스스로 고안한 아이스픽으로 하나로 조용히, 그리고 순식간에 한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 암살 대상자는 여자들에게 부당한 힘과 폭력을 행사하여 그녀들의 삶을 파괴하는 인간 말종의 남자들. 그 첫 대상자는 그녀와 가장 친했던, 하지만 결국은 파탄에 이른 결혼생활로 인해 자살한 친구의 남편이었다. 그 후 그녀는 어느 돈 많은 노부인과 협력하여,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동시켜’ 마땅한 자들을 처단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맡아 하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아오마메는 또다른 청부살인을 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던중 러시아 작곡가인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고 묘한 기시감에 휩싸인다. 끝없이 이어지는 교통체증을 벗어나기 위해 고속도로 한복판의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그 계단은 새로운 세계인 '1Q84년'으로 통하는 입구이다. 현실인 1984년과 겹쳐지면서도 전혀 다른 1Q84년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기이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어느 날 자신의 후원자인 노부인으로부터 종교단체 ‘선구’의 리더를 제거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받는다. 선구의 리더를 상실케 하는 데 성공한 아오마베는 '1Q84'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 그 세계로 진입했던 고속도로를 찾아가지만 통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984년으로 나가지 않으면 덴고를 살릴 수 없음을 감지한 아오마메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끓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결국 둘이 만나지 못할거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그녀가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1권, 408쪽)

<덴고>
 

덴고, 그는 입시학원 수학 강사다. 그리고 그의 또다른 직업은 소설가. 그러나 자신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등단한 적은 없다. 여기저기 익명으로 청탁받은 원고를 기고하거나 남이 쓴 글을 리라이팅 하는 정도다. 다른 남자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로 인해 NHK 수금원으로 한평생을 보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덴고는 '사랑'이라거나 '관계형성'에 대해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어린시절의 상처를 안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그는 친구도, 절실하게 사랑하는 여자도, 의지할 가족도 곁에 있지 않다. 

우연히 1984년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품고 사는 후카에리라는 17살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쓴 <공기 번데기>라는 신인상 후보에 오른 소설을 개작하는 작업을 맡게 되면서 그 역시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공기 번데기>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가 리더로 있는 종교단체, ‘선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2권, 211쪽)

<아오마베와 덴고>
 

아오마메와 덴고는 둘 다 어린시절의 상처를 기억으로 갖고 있다. 아오마메가 이단종교집단인 ‘증인회‘에 심취된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덴고는 NHK 수금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상처가 있다. 둘은 어린 시절 우연한 계기로 가슴속 깊은 곳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기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성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채 무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기억에 기대어 '1Q84'라는 또다른 시간에서 살고있다. 

소설 속의 소설인 ‘공기 번데기’와 현실인 1984년과 초현실인 1Q84년 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얽히고 설키며 ‘리틀 피플’이라는 기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산양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리틀피플은 선과 악, 사실과 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상상으로 이루어진 다른 세계를 주도하며 개인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욕망을 자극하는 무의식의 원형으로 그려진다.

리틀피플에 저항하기 위해 아오마메가 택한 것은 사랑이었다. 결국 그녀는 덴고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된다. 한편 공기번데기와 리틀 피플의 세계를 접하면서 아오마베의 존재를 새삼 인식한 덴고는 '1Q84' 라는 불길한 세계에 정면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그리고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녀가 누구인건 그녀를 찾자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죽고 없다.
 

혹시라도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만을 따라 읽는다면 이 소설을 반만 읽은셈이 된다. 글의 행간에 교묘한 공백의 세계와 미지의 존재에 담겨 있는 ‘특별한 뭔가’가 하루키 특유의 상상력과 판타지적 극적요소와 적절하게 버무려져 숨겨 있기 때문이다. <1q84>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가득한 흡인력으로 한번 잡으면 좀처럼 읽기를 멈출수 없게 만든다. 새삼 60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기억한다면 생물학적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선다. (2009.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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