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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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너머로 흔들리는 부성의 부재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문학동네, 2010

김훈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아버지는 작년 9월에 이감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뇌물죄로 구속된 아버지와, 그 아버지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고 싶어하는 어머니로부터 도망치듯 멀어져 민통선 안쪽의 최전방에 위치한 수목원으로 들어온다. 그곳에서 1년을 머물며 식물과 나무들의 세밀화를 그리는 임시직으로 일하게 된다. 어느날 인근 군부대로부터 한국전쟁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을 세밀화로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세밀화가인 주인공 조연주와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구속됐던 비리 공무원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어머니가 한 켠에 있고, 통문소대장 김민수 중위와 수목원 연구실장 안요한 등이 다른 한 켠의 이야기를 차지하고 있다. 

김훈의 이전 작품들은 대개 이 세상의 비루함과 몸을 섞어야 했던 남성들이 단골 소재였다. 삶과 죽음이 칼날처럼 맞부딪치는 쓸쓸한 삶의 현장을 묘사하거나, 깊고 핍진한 상실감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주로 남성들)의 내면을 즐겨 그렸다. 이번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칼의 노래』『현의 노래』『남한산성』처럼 굵직한 역사소설이 아니고, 29살 여성 화자를 중심에 둔 현대물을 선 보였다. 생명이 돋아나는 숲의 아름다움과 세월에 마모된 유골의 황폐함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소통의 싹을 틔우는 세밀한 과정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 아버지의 세상과 주인공의 생활이 맞닿는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담아낸 숲의 묘사와 함께 신산한 살풍경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에는 일관된 스토리나 서사구조가 약하고 문체 역시 건조하다. 감정이입이 없고 문장과 문장 사이가 넓어, 든든한 골격(사실) 보다는 섬세한 피부(묘사)에 의지해서 읽어야 한다. (물론 김훈의 팬이라면 이정도의 불친절함은 이미 익숙하겠지만 말이다) 대신, 김훈 소설 특유의 비루한 삶이나, 그 삶에서 묻어나는 파편 같은 것을 끌어모은 풍경이, 삶을 견디는 것은 저렇게 힘들고 쓸쓸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추측하게 할 뿐이다. 

이 소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부성의 부재, 즉 '아버지'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군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뇌물을 챙기고 상납하다가 구속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구속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의 삶에서 떨어져 나와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역시 남편의 시선으로부터 달아나 교회라는 품속으로 맹목적으로 숨어 든다. 물론 아버지의 뇌물수수는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범죄행위가 분명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뇌물을 받다 구속당한 아버지는 가족에게서 버림받는다. 

"지금 아버지가 앉아 있는 집은 아버지가 거처할 곳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다른 아파트로 보낼 것이었다. (- - -) 아버지에게 교도소 안과 교도소 밖은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아버지의 자리는 없었다." (183쪽)

아버지 자리가 없다는 말은 '정자 기증자'이며 '경제적인 기부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꿈을 꿀때면 늘 함께 나타나는 '좆내논'이라고 불리는 말의 은유 속에서 쓸모를 다한 무기력한 폐마(廢馬)와 하나로 겹쳐진다. 주인공은 뼈그림을 그리며 간간이 아버지의 무기력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비루하고 남루한 삶 역시 자신이 그리는 뼈그림을 닮아 처연하고 서늘하다. 

"아버지가 구속된 후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 인간, 또는 그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 - -)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삶은 멸종의 위기에서 허덕거리듯이 위태로웠고, 비굴했다. (- - -)삶이 치사하고 남루하리라는 예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9쪽)

그런데 이러한 아버지의 부재 현상은 따지고 보면 산업화의 결과다.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공장이나 광산으로 떠돌아다녀야 했다. 산업화와 더불어 집에서 더는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아버지라는 종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너무나 슬프고 딱한 소설이다.

"산업화는 낮에는 아버지들을 공장으로 빨아들였다가 밤에는 작업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동숙소로 이들을 뱉어내었다. 가족들과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점점 더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 (루이지 조야, '아버지란 무엇인가'중에서)

아버지와 헤어지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함께 사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살던 어머니는 막상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긴 울음을 토해낸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뼛가루를 수목원이 있는 자등령 숲속에 산골(散骨)하여 장례를 치룬 후 수목원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향한다. 

"어머니는 뒹굴면서 울었다. 어머니의 몸속에 저토록 모진 울음이 감추어져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울음은 한 번도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고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울음이었다. (- - -)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이 너무 멀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329쪽)

이 소설을 연애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훈의 연애 서사에는 "사랑한다"는 고백도 없고, 하다못해 끌어 안거나 입맞춤 하는 장면조차도 찾아 볼수가 없다. 다만 이 소설의 밑바닥에 흐르는 약간의 온기와, 어쩌면 막 스며들기 시작한 사랑의 무늬가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 안실장의 어린 아들 신우를 한 번 안아 주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속 생각이나, 제대를 앞둔 김중위가 주인공에게 미리 명함을 건네고, 그 명함을 잘 갖고 있는지 여러번 확인하며 다음에 만날 가능성이 여운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그렇다. 작가가 언젠가 다른 책에서 썼듯이 남자가 남성성만으로 온전할 수 없듯이 여자들도 여성성만으로 온전할 수는 없다. 아마도 주인공은 어린 신우나 김중위한테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갈구한다”고 밝힌 작가의 말처럼 다음에 만날 작품에서는 더 온전한 사랑과 희망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숙취가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에 아이를 학원에 밀어넣고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이 소설을 읽었다. 창밖으로 세설(細雪)이 흩날리고 있었다. 자등령 숲 속 너머에서 낯선 나무들이 뿜어내는 날선 풍경의 파편들이 이 도시로 묻어 온 듯 미세한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삶은 순간의 음역을 살며 가슴 저미도록 짧다. 절망이 섞여있지 않은 희망이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겁한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부르르 몸서리가 난다. 때마침 유재석 나오는 ‘무한도전’ 할 시간이라며 귀가를 재촉하는 아이의 문자메시지가 뜬다. 나는 집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나는 다시 아버지가 된다. -끝-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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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0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 리뷰 스타일 참 좋아합니다.
어쩜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깊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책을 읽는다, 생각을 한다, 쓴다.
전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열심히 읽고 노력해야 겠습니다.
글 스타일 비슷해져도 노여워 하지 마세용.
 
2020 부의 전쟁 in Asia
최윤식.배동철 지음 / 지식노마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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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온다

  『2020 부의전쟁 in Asia』
최윤식ㆍ배동철 지음, 지식노마드, 2010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이때쯤이면 새해경제를 전망하고 예측하는 책에 저절로 손이 가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2011년은 글로벌 거인들의 생존을 건 부의전쟁 10년이 시작되는 해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20 부의전쟁 in Asia』도 그중 하나로,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의 공동소장을 맡고 있는 기업인 배동철과 미래학자 최윤식이 함께 쓴 책이다. 1년 동안 전세계가 생산한 부의 절반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한방에 날아가 버렸는데 이는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특히 지난 금융위기는 정부와 개인들이 동시에 겪게 되는 경우라서 그 심각성이 더했는데, 당분간 저성장 혹은 낮은 더블딥(이중침체)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다 중국발 대형 악재라도 겹치게 되면 전세계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998년의 IMF 구제금융사태가 낮은 파도였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간 크기의 파도였을 뿐이다. 진짜 거대한 파도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급격한 거시적 미래 변화들을 좀 더 세밀하게 전망해보고,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확대되는 세계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두 저자는 향후 10년을 잘못 보내면 우리나라도 2020년,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온다고 경고한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망한다는 뜻이 아니라 10년 동안 여전히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머무는 장기불황을 말한다. 뛰기는 뛰는데 제자리 뛰기만 하다보니 더 빨리 뛰는 중국을 비롯한 후발 주자들에게 추월 당한다는 뜻이다. 새해 벽두부터 듣기에는 일견 암울한 말이지만 책이 나온게 작년 10월 말이니까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장충체육관을 누가 지어주었는지 아는가? 우리나라 경제성장 초기에 식량 자급의 토대가 되는 고급 농업기술을 전수해 준 나라는? 미국이나 영국 또는 일본이 아니고 필리핀이었다. 60년대 우리보다 잘 살던 필리핀이 지금은 이웃나라에 가정부를 수출하는 아시아의 꼴찌그룹으로 전락했다. 일본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장기적 침체의 늪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낡은 시스템의 한계에 갇혀 낡은 성장 시스템을 혁신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산업에서 중국과 인도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고, 미래형 신산업에서는 미국, 일본, 심지어는 중국에도 경쟁력이 밀리는 '넛크래커'에 빠진 것이 한국 경제시스템의 현주소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평균수명은 23년인데 지금은 변화가 더 빨라 기존 산업은 20년, IT 산업은 10년을 넘기기 힘들다. IT의 2차 혁신이 일어나면서 스마트폰, 미래형 태블릿 PC,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래형 서비스를 앞세운 미국에 밀려 한때 세계 각국으로부터 들었던 IT분야의 성취에 대한 칭찬이 무색해지고 있다. 비즈니스 2.0 패러다임을 놓친 한국은 글로벌 100대 기업 중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기업은 찾아볼 수 없고, IT 서비스 기업은 3개에 불과하다. 10〜20년 안에 30대 그룹 중에서 15개 이상은 사라질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2만 달러 시스템의 한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 1994년 국민소득이 9457달러로 1만 달러에 근접한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2만 달러를 못 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권투에서 세계 참피언이었는데 세상이 변해 주먹만 쓰는 권투는 사라지고 손 과 발 심지어는 상대방을 잡고 조르는 종합격투기가 중심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현재의 국가 시스템, 기업 시스템, 개인 시스템들은 2만 달러용이다. 기존 산업의 성장 한계, 저출산, 고령화, 부동산 거품 붕괴 등은 일본 등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겪었던 문제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3단계에 걸친 부동산 버블 붕괴는 결정적으로 한국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가는 방아쇠가 될 거라고 예측한다. 우리나라도 향후 10년 내에 이런 문제들에 더해서 추가적으로 2가지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들에 맞닥뜨리기 쉬운데 격심한 사회적 분열과 준비되지 않은 남북한 통일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 통일비용과 통일시나리오를 꿰 자세하게 기술한 대목(280〜297쪽)은 꼬일대로 꼬인 최근의 남북관계 지형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사뭇 흥미롭다. 이 책은 전체 3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저출산 고령화의 비극'과 '초읽기에 들어간 부채 위기와 부동산 버블 붕괴'를 다룬 Part 1의 2장과 3장은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읽기에 섬뜩하다. "젊은이 1.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2050년이 되면 지하철 안에 노인석을 따로 둘 필요가 없고,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질병이 아니라 생계형 자살이 될 것이다. 또 일자리를 두고 청년과 노인과 외국인이 3파전을 벌이게 될 지 모른다." 제발 저자들의 예측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든다.

향후 10년간 경제적 패권을 잡기 위한 부의 전쟁의 격전지는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는 아시아지만, 부의 전쟁의 촉발자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로 체면을 구긴 미국의 반격이 시작되고 그에 맞선 중국의 대응이 이어지며, 유럽연합과 일본이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어 참여하는게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새로운 중심지라는 말은 기분 좋은 표현이긴 하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아시아 시장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기업, 정부, 개인 모두 이 일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황폐한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다가올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다행인 것은 그리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1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잃어버린 10년을 먼저 경험했던 일본이라는 반면교사가 이웃에 있다. 운동장에 줄 그을때 앞만 보고 그으면 삐뚤어진다. 멀리 보고 줄을 그어야 똑바로 그을 수 있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부동산은 오를 수 없다. 오를 요인이 없는데도 오른다면 오히려 문제를 키워 더 심각한 폭탄이 되어 돌아오기 쉽다. 일단은 부동산 버블을 더 키우거나 버블 붕괴를 늦추는 정책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 두 저자의 지적이다. 그밖에 금융 능력의 향상, 불확실성 속에 숨은 기회 발견, 미래형 SMART 인재 육성 등을 미래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들이 지난 2009년에 출간한 <2030년 미래 부의 지도> 역시 통찰력과 혜안으로 가득찬 내용을 높이 평가받아 많은 기업에서 임원 교재용으로 채택할 정도였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많은 책들에서 참고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참고 도서・ 참고 방송물・참고 보도기사를 8쪽에 걸쳐 자세히 밝히고 있다. 수많은 자료와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실감나게 쓰여진 내용에 더해 신뢰를 더하는 부분이다.
-끝- (2010.12)
* 기획회의 287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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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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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 자본주의를 촉구한다 

『그들이 말하지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ㆍ안세민 옮김, 부키, 2010 

스탈린이 루스벨트에게 미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아마 한 달에 300달러쯤 될 겁니다." "그럼 생활비는 얼마나 필요합니까?" "대충 200달러쯤 들겠지요." "그럼 100달러가 남는데 어디 사용합니까?"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이번엔 루스벨트가 물었다. "러시아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얼마입니까?" "한 달에 한 800루블이 될 겁니다." "그럼 생활비로 나가는 돈은 얼마가 됩니까?" "1000루블입니다." "그럼 한 달에 200루블이 더 있어야 살아가겠군요.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이 책에도 비슷한 유머가 등장한다. 1980년대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중앙 계획 시스템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해서, "우리는 일을 하는 척하고 그들은 보수를 주는 척한다."라는 우스개가 공산주의 국가들에 유행할 정도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의 신화가 대공황과 금융위기를 겪으며 깨지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자본주의가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929년 대공황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경제 위기라 할 수 있는 2008년 금융 위기는 자칫 세계 경제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질뻔 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이 재앙은 정확히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지난 30여년간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로 통칭돼온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해 승리한 것이지 그 자체가 완전한 체제가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않는 23가지』는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한다. 23가지 키워드로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을지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쓴 책이다. 저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 학위도 받기 전인 1990년, 27세 나이에 한국인 최초의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기존의 좌파, 우파 이념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 않는다. 좌파와 우파 양쪽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주류 경제학의 통설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내는 책마다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영국의 가디언紙가 최근 사설을 통해 "노동당은 장하준 교수에게 배워라"고 썼을 정도로 이번 책 역시 영국 언론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가디언이 전통적으로 좌파 경향을 띤다는 점을 감안해도, 주류 경제학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비주류 경제학파 교수에게 큰 관심을 보인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저자는 그동안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이전 책들을 통해 신 자유주의를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이 책에서도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첫 번째로 내세우며 신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다양한 테제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와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라는 항목을 대비시키는 방식을 통해 '워싱턴 컨센서스'가 상징하는 미국식 신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그의 부정은 '다른 자본주의'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을 설파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 자유주의가 최선'이라는 경제학의 오랜 믿음속에 감춰진 이면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또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등의 흥미로운 주장을 통해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이 친숙하게 품고 있던 통념과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그의 전작들을 읽어온 독자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동어반복은 아니다. 주장은 더 단호해졌고 논리는 한층 정교해 졌다. 거기다 다양하고 풍부한 비유와 사례가 설득력을 높인다. 경제학자를 넘어서 '문장가 장하준'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 말고도 여러 지면을 통해 기회 있을때마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이 책의 출판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도 어김없이 제조업 문제를 거론하며 "현 정권이나 지난 정권이나 마찬가지인데, 제조업 버리고 금융업 쪽으로 가서 쉽게 돈벌려는 생각을 자꾸 하는 것이 제일 걱정된다"며 제조업을 제발 소홀히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전자나 조선 등에서 1등 하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제조업 생산성이 구미의 40〜50%에 불과한 현실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이나 금융쪽에만 마음이 팔려 이제는 '구닥다리' 제조업은 필요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정책당국자가 있다면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다. (실제로 지난 금융위기 직전에 리먼브라더스가 봉 잡으려고 망하는 회사를 한국에 팔려고 했다. 그 때 만약 산업은행이 샀으면 나라가 거덜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세계 경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하면서 명심해야 할 8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문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이지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가 나쁜 경제시스템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2.인간의 합리성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라. 3.이기심이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인간의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4.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해야 한다. 5.제조업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잊지마라. 6.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7.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8.개발도상국들을 '불공평'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대하라.

저자는 결론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상 언급한 여덟 가지 원칙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독자들 중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지 모른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중병에 걸렸음을 통보받는 당혹스런 느낌이다. 그러나 그 병을 치료할 능력을 갖고있는 유능한 의사를 앞에 둔 일말의 안도감도 함께 들어 다행이다. -끝- (2010.12)
* 기획회의 285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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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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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최근 대한민국 독서계가 ‘정의’라는 화두로 들썩이고 있다. 하버드에서 최고 인기라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묶은『정의란 무엇인가(원제, Justice:What's the Right Thing to Do?』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거나 또는 읽은체를 하는 듯이 보인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정부도 최근들어 ‘공정’을 국정의 핵심과제 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의에 관한 모든 이론들의 바탕에는 존 롤스(1921∼2002)가 있다. ‘정의’를 연구하는 미국의 대부분 학자들은 롤스를 닮거나 혹은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을 발전시켜 왔다.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대변서이며 마이클 샌델 교수 역시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며 그의 이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밀, 롤스 등 도덕철학, 사회 정의 분야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들인다.

저자는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건 정당한가, 자유시장은 정말 공정한가 등의 문제제기를 통해 정치철학사를 일관된 눈으로 꿰뚫는다.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인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철로를 이탈한 전차,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대가를 받는 임신’ 등 제목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구체적인 사례들이 가득하다. 난해한 철학적 명제를 주제로 삼고 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까닭은 그나마 이처럼 풍부한 사례와 시사성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키워드는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저자는 겨우 책의 끝부분에 가서야 이중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세 번째 방식에 호감을 갖고 있음을 슬쩍 표시한다. 

샌델의 여정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의관에서 시작하여 칸트의 도덕철학과 롤스의 정의론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으로 넘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의관인 ‘좋은 삶(good life)'과 ’공동선(common good)'을 동원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행동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미덕은 우선 그것을 연습해야 얻을 수 있다. 공정하게 행동해야 공정한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해야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며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를 촉구한다. 즉 가치 중립이란 없다는 뜻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물음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단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례들 속에서 논쟁의 핵심을 끄집어내며 독자들에게 판단과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기대한 독자라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미리 만들어진 해답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꾸불꾸불한 길을 보여주며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길로 들어서든 막다른 골목에서 반드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치는데 안타깝게도 正義에 대한 定義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이 무수히 많은 사례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어쨌든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인들이 ‘정의’라는 샘물 앞에까지는 겨우 오긴 했는데 제대로 목을 축이고 갈증을 얼마나 해소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끝-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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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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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눈먼 시계공』

김탁환·정재승 글, 김한민 그림, 민음사, 2010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먼 시계공』은 로봇공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가상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테크노스릴러 소설이다. 소설가 김탁환과 과학자인 정재승 KAIST 교수의 공동작업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과학의 통섭을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때는 2049년, 세계는 국가와 민족개념이 폐기된지 오래고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으며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시대다. 장소는 서울특별시, 유비쿼터스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21세기형 메트로폴리탄으로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이 공존한다. 기계는 좀더 인간 같아지고, 인간은 좀더 기계 같아진다. 자동차가 자동항법장치를 통해 알아서 운전을 하고, 사람몸의 상당부분은 기계로 대체되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은석범 검사가 팀장으로 있는 서울특별시 보안청 ‘스티머스 수사팀’은 스티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전전두엽에 저장된 최근 10분의 단기기억을 복원해,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뇌에서 마지막 단기 기억을 영상으로 재생해 범인을 체포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한다. 특별시 안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피해자의 뇌가 사라진다. 단기 기억 재생 장치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의 소행으로 짐작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특수 수사대의 형사들도 하나하나 희생당한다. 같은시간, 과학과 자본의 욕망이 어우러져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인 ‘배틀원’은 점점 더 광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한쪽에서는 자연 회귀주의자들의 테러와 투쟁이 격화된다. 무엇보다 로봇격투기라는 SF적 요소와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를 결합한 흥미로운 소재에,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보태져 지루할 틈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숨가쁜 추격과 액션, 그 사이에 흐르는 로맨스와 세계 최강 격투 로봇들의 극적이고 생생한 한판 승부가 책읽기를 좀처럼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같은 제목의 책에서 따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이란 작품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명쾌하게 설명해냈다. 자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보니 자연은 목적도 설계도 없는 자연 선택의 산물이고 그저 잘 짜여진 시계와 같더라는 이야기다.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힘이 아닌 바로 ‘자연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창조주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 책 『눈먼 시계공』은 여기서 조금 더 많이 나간다. 인류가 로봇공학과 사이버네틱스 그리고 정보기술 같은 기계문명을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로봇에게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로봇이 인간처럼 욕망하고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사람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인물 중 하나인 뇌 과학자 노민선 박사다. 독자들과 만난 한 강연회에서 저자들은 제목에 숨겨진 뜻이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로봇 ‘글라슈트’는 사실 유명한 수제 시계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글라슈트를 만든 이가 노민선 박사다. 즉, 글라슈트를 만든 과학자가 ‘눈먼(어리석은) 시계공(로봇공학자)’이라는 것이 연상된다. ‘눈먼 시계공’은 로봇을 우승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로봇공학자 노민선을 뜻하기도 한다. 소설에 담긴 인류의 미래는 충격 그 자체다. 그렇다고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소설로 치부해버리고 지나칠 수가 없다. 테크노스릴러로 포장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 올 미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과 인간 생존 문제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미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이라는 심원한 혁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재미 이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소설의 大尾는 에필로그인 ‘눈보라’다. 은석범 검사와 남앨리스 형사는 연쇄살인을 해결한 일등 공신이었지만 보안청을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노민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스티머스 수사팀의 실체를 폭로한 석범에게는 기밀 누설죄가 적용되었고, 사고로 75%의 기계몸을 갖게 된 앨리스는 인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석범은 죽은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특별시를 떠나 생태주의자들의 마을로 가기로 하고, 눈보라 마을로 사람들을 초청하는 안내문을 작성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끼리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 있습니다. 깨어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고 맙니다.” 그때 방송국 PD인 왕고모 이윤정이 새 작품을 의논하자고 들이닥친다. 이를 피해 석범은 앨리스와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앨리스가 묻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석범이 답했다. “눈보라 속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는데, 특히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멋진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매주 한차례씩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최근에 읽은책이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n Near)』였다. 이 책의 저자인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2030년쯤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급격한 변화의 시점인 ‘특이점’이 온다고 예언했다. 그때쯤이면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게 되며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기계에 이식해 정신적으로 불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그의 주장이 무척 엉뚱하고 과격하게 들렸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2010년의 인류는 집단지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고 정보기술의 발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의 기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지속된다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컴퓨터의 출현은 결국 시간문제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가 특이점 이후를 ‘유토피아’로 부르지만, 특이점대를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시도로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정신적 불멸을 추구하는 부류와 현재의 모습을 지키려는 부류로 인류가 나뉠 가능성도 있다.『눈먼 시계공』에서 그리는 미래사회의 모습도 결코 ‘유토피아’ 는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마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미래모습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는지는 결국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과연 인류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력은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미래의 인간은 그래서 더 행복할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다. “가장 좋은 시간이었으면서도 가장 나쁜 시간이었다. 지혜로움의 시대였으면서도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두 도시이야기》에서 찰스디킨스가 한 말이다. 우리시대를 두고 그렇게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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