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윤후명 소설전집 1
윤후명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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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원에 닿아 있는 곳

 

강릉

윤후명 지음, 은행나무, 2016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윤후명은 70평생을 언어의 탁마琢磨를 통해 우리말이 가진 울림과 특유의 정서를 씨줄과 날줄로 교차시킨 독자적인 세계를 올곧게 구축해 오고 있다. 대표적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은 그의 문장은 빼어나고 빼어나서 견줄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로 우리나라 문단의 가장 치열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시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 무미건조하고 숨 막힐 것 같은 일상에서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과 그리움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는 그의 문장 앞에서 나는 번번이 베이곤 했다. 윤후명 작가에게 지심도가 마음의 섬이라면 강릉은 마음의 육지이다. 노작가는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여덟 살에 강릉을 떠나 육십 이 년이 걸려 먼 우회로를 돌아서 마침내 일흔 살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에게 강릉은 단순한 지명에 머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와 철학까지를 일컫는 믿음을 포함하는 말인 셈이다. 몇 해 전 윤후명 소설가와 독자들이 함께 가는 강릉 문학기행에 끼였던 적이 있다. 5월의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그가 쓴 여러 작품들의 무대가 되었던 임당동 성당, 객사문, 경포대, 헌화로 바닷길 등을 걸었다. 그때 본 강릉의 산은 푸르렀고 물은 깊었다. 대지는 부드러웠으며 공기는 달았다. 주홍빛 산당화 꽃향기가 그윽한 오죽헌 마당에서 노작가는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고향과 작품을 이야기했다. 일흔 세월을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독자들의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그들이 내는 희미한 한숨과 탄식이 공기를 흔들고 지나갔다.

 

강릉은 내년 등단 50주년을 앞둔 윤후명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작가 생애에 있어 출발점이자 귀환점인 고향 강릉을 모티프로 쓴 열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윤후명 소설전집의 첫 권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늘 위태롭고 외롭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함께 지니고 살면서 인생에 유별난 목적을 갖고 있질 않다. 삶의 편도를 산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망침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책에는 전집을 꾸리면서 새로 쓰고 고쳐 쓴 작품도 있지만 <산역山役>처럼 오래된 소설도 있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산역>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전쟁과 함께 작가의 고향 강릉의 큰 산과 큰 바다에 얽힌 어떤 사랑의 운명의 기록이다. 한 인간의 태어남을 배경으로 삶의 어느 편린에 스며 있는, 고래의 부패한 내장에서 얻을 수 있는 용연향龍涎香같은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하필 오래된 그 작품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내가 전에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익으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설명이 아닌 묘사와 이미지로 큰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 대목이 그렇다.

 

돌아가신 네 아버지가 너에게 남기셨어. 바다가 보이는 산도.”

돌아가신 아버지?”

그녀는 한꺼번에 밀려와 벼랑에 부딪치는 먼 파도 소리를 듣는 듯했다. 어머니는 석상처럼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설명하고 있었다. (330)

 

그것은 텍스트가 마구 뱉어내는 의미를 머릿속에 구겨 넣느라 소설의 참맛을 잊어버린 현대의 독자 대부분이 갖는 공통된 반응일 것이다. 소설이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 노릇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이 책에 실린 열편의 소설은 서사 이외의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함으로써 이미지로 호출한 삶의 본래 모습을 우리 곁으로 가깝게 불러낸다. 강릉은 모든 인간의 일들 속에 깃든 어떤 원류原流 혹은 시원始原과 닿는 감동의 감정선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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