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외 지음, 신상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이 모든 게 뇌 때문이라고?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빌라야누르 라만찬드란샌드라 블레이크스리 지음, 신상규 옮김, 바다출판사, 2015(개정판)
미국의 철도 공사 감독이었던 피니아스 게이지는 작업 도중 끝이 뾰족한 쇠막대기가 왼쪽 뺨에서 왼쪽 눈 뒤를 통해 머리 윗부분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좌뇌 전두엽 부분이 거의 없어지고 두개골이 크게 파손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의 게이지가 아닌 딴 사람이 되었다. 책임감 있고 유능하며 사교적인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칠고 적대적이며 이기적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 게이지의 일화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뇌에 의해 좌우되며, 뇌의 특정 부위가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인격’이라 부르는 것은 동일한 변연계의 구조 및 그것과 복내측 전두엽 사이에 있는 연결과 연관되어 있다. 전두엽의 손상은 의식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우리 인격을 중대하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의 저자인 라마찬드란 박사는 <뉴스위크>가 가장 주목해야 할 21세기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한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다. 병원 침대를 실험실로 옮겨 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이 만났던 기이한 증상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과학적 실험으로 연결하곤 한다. 이 책은 내과의로서 시각 지각을 연구하다가 신경증 분야로 관심을 옮긴 그가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출간된 첫해인 1998년에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뇌과학 분야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았다. ‘뇌과학계의 셜록 홈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저자는 도대체 우리 뇌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질병이 어떻게 생기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그 어떤 과학자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뇌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추적한다.
우리 두뇌는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게 되면 매우 기이한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책에는 환각, 자폐, 정체성 상실 등 뇌 기능 이상과 관련된 흥미로운 증세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헛팔다리 또는 환상지는 절단되어 존재하지 않는 팔이나 다리 또는 손가락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이다. 팔 또는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 중 60〜80%가 경험하는 증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팔이나 다리에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느낀다. 카프그라 증후군은 가까운 사람들, 가령 자신의 부모나 배우자, 친구들의 모습은 정확히 알아보면서도, 그들이 실제 인물이 아니고 신분을 사칭한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다. 절단충동증도 있다. 이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다보니 이를 거북하게 느끼는 나머지, 그 부위를 절단하기를 원하는 증상이다. 측두엽 발작으로 신의 목격, 종교적 확신, 환청, 환각 등의 증세를 보인 역사적 인물도 이외로 많다. 예수, 모세, 무하마드, 붓다가 그랬고 근대의 인물로는 화가 반 고흐,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등이 있다. 이들 중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히 두뇌가 사고하는 메커니즘에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저자는 이들 증상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책의 원제이기도 한 ‘뇌 속의 유령’을 발견한다. 이들 증세는 뇌의 자기보전 메커니즘의 산물이다. 믿음이나 행동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결국 뇌의 작용이므로 이에 대한 치료는 수술과 같은 물리적 치료가 아니라 뇌 스스로를 납득시킬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뇌가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뇌 스스로 납득할 때 비로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과연 ‘정상적인 뇌’라는 게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그저 조금씩 서로 ‘다른 뇌’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이들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인간의 의식과 자의식은 인류 최대의 수수께끼이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나’라고 하는 것(나의 자의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수면 위에 떠오른 빙산의 일각과도 같다.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물속에 잠겨 있는 빙산과 같은 거대한 무의식의 존재를 강조한다. 현대 심리학에 의하면 의식적인 삶이란 무의식적 충동에 의해 행해진 일에 대한 의식의 사후적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본능적 행동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무의식의 진화적 뿌리는 깊다. 무의식적 행동은 인간 행동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무의식은 동물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의식은 자신의 인식 그 자체를 인지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자의식이 거울신경계가 나타내는 기능이라고 추측한다. 자유의지free will란 가능한 행동들 가운데 자신이 의식적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나 잘못까지도 뇌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는 없을지 모르나, 무의식의 지시를 자유롭게 거부할 능력free won’t은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행동 결정은 본능과 무의식, 환경조건의 영향을 받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무의식적으로 결정된 의도를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검토하고 취소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인간의 뇌에 관한 현대 의학의 이해를 바꾸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책을 읽다보면 우주론, 진화, 두뇌과학이 왜 비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주를 연구해 초시간적인 통찰을 갖게 되면서, 우리가 더 큰 무엇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우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드라마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개인적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게 된다. 우리가 단지 구경꾼이 아니라 시바(저자가 인도 태생임을 기억하자)가 추는 거대한 우주적 춤의 일부라면 우리의 불가피한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자연과의 행복한 재결합이 된다.
뇌는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존재다. 회색과 흰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145세제곱센티미터 물질로 겉모양은 다소 괴기하게 생겼다. 뇌는 섬유질과 액체로 가득 찬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모든 생각과 감정은 물론이고 행동까지 다스리는 기관이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게 생겨난다. 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본질을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사람의 뇌는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합친 것만큼이나 복잡한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는데, 이 속에는 2천억 개의 뉴런이 들어 있다. 은하수에 있는 별만큼이나 많은 숫자다. 그리고 각각의 뉴런은 천 갈래로 접속될 수 있다. 우리의 삶, 희망, 성공, 동경 등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두뇌의 뉴런 활동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굴욕적 이기보다 우리를 고귀하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주론이나 진화, 특히 신경과학을 포함하는 과학은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어떤 특권적 지위도 갖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우주론자인 폴 데이비스의 말마따나 우주 속의 우리 존재가 단지 운명의 변덕이나 역사의 우연, 거대한 우주적 드라마의 우발적인 잡음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우주적 차원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기 위한 신비한 질문에 대해 두뇌과학의 힘만으로 대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존재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측면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550쪽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술술 잘 읽힌다. 마지막에 달린 80쪽이 넘는 주석도 그냥 넘기면 안 된다. 함께 책을 쓴 과학 필자인 샌드라 블레이크스리가 라마찬드란의 설명을 보충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을 분명히 하기 위해 3, 4쪽씩 할애해가며 해설을 붙인 공로가 엿보인다. 뇌과학과 신경의학의 놀라운 성과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쉬운 언어로 쓴 독창적인 이 책에 ‘의학계의 시인’이라고 불린 올리버 색스가 추천사를 썼다. 책에는 색스가 여전히 뉴욕대학교 교수로 되어 있는데 그는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났다. 추천사를 읽으며 ‘인간을 사랑한 가장 인간적인 의사’로 알려진 색스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면 우리 뇌(특히 변연계)가 선사하는 보너스라고 여기면 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