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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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렌즈로 바라본 인간과 자연

 

생물학 이야기

김웅진 지음, 행성B이오스, 2015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종이 수천만 종이나 있고, 4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생존했던 생물 종들은 수천억 종에 달한다. 현대 생물학은 거대한 인큐베이터였던 원시해양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44억 년 전 지구 표면에 형성된 바다는 맑은 유기물의 수프상태였다. 최초의 생명체는 거기에 있던 자기 자신을 꼭 닮은 복제물을 만들 줄 아는 유기물 분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온갖 분자들이 만들어지면서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분자가 물속에서 생겨났고, 그것이 생명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분자적 자연선택으로 시작된 생명체의 발생은 세포생물과 다세포생물의 출현, 그리고 유성생식 기제에 의한 생물진화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진화야말로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이라 할 수 있는데, 세포의 발생은 진화 사상 매우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에너지 대사, 세포의 기본 구조, 유전, 변이, 다양성 등의 다른 특징들은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파생적인 성질에 불과하다. 이렇듯 생명의 진화과정은 진부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흥미롭고 일관성 있는, 우연과 필연의 장엄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생물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은 공부하기에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특히 순 오리지널 문과출신임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김웅진 미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가 쓴생물학 이야기는 과학 문외한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에서부터 최신 뇌과학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생물학의 얼개를 일목요연하게 짚어준다.

 

현존하는 생물들은 몸속에 과거 생물들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인간에게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동물로부터 유래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있다. 동물적인 행동이 인간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까닭이다. 특히 생존과 번식에 관한 원리는 인간과 동물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 20만 년 전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진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왔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대략 3만 년 전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여전히 수렵채취인이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살게 된 것은 멀리 잡아도 수천 년에 지나지 않고, 현대사회는 길어야 100년이다. 반면 뇌에 각인된 무의식의 역사는 수억 년이 넘는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문명 이전의 삶, 수렵채취인 사회에 적응된 상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인류는 지구의 시계로 보면 지극히 최근에 나타났다. 우주 시간의 스케일로 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생물들은 거의 얼마 전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1년 치 달력으로 표시하면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600만 년 전을 110시라고 한다면, 인류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시점은 1231일 오전 6시가 된다. 도시가 형성된 것은 같은 날 오후 3시이고, 1140분이 되어서야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이렇게 인류는 대부분 기간을 원시인처럼 수렵채집을 하며 지냈고, 우리의 유전자와 뇌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하게끔 진화해 왔다. 1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계통분화와 가지치기를 하며 진화적 발생을 시작한 인류는 어느 날 직립보행을 하며 언어와 불을 사용하는 전대미문의 종으로 등장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6만 년 전 북부아프리카에서 중동지방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유인원에 속한다. 사람과 침팬지는 약 600만 년 전에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친척이고, 사람과 침팬지와 보노보는 700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종이었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체는 매우 흡사하다. 사람의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 중 30%는 침팬지의 단백질과 동일하다. 분자생물학을 이용하면 침팬지가 해부학적으로 원숭이보다 인간에게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침팬지의 두뇌 구조가 그 크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두뇌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동물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지능은 확장된 대뇌피질의 산물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두뇌가 수행하는 일련의 기능이다. 누가 착한 아이고 나쁜 아이인지는 산타클로스가 알겠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뇌가 안다.

 

우리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복제물질, 즉 유전자(DNA)의 입장에서 보면 세포나 생물이란 자신(DNA)을 운반하고 영속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생물이라는 것 자체가 그 생물체 속에 기생하는 유전자의 숙주라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라고? 맞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줄곧 주장했던 말이다. 우리의 외모와 기능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유전자 자신을 위해서다.(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아니다.) 진화의 간계는 교묘하다. 자의식이나 자아도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의 영속화를 위해 인간 개체의 두뇌 속에 투사하여 나타내는 일종의 신기루와 같은 것일 뿐이다. 인간은 유전자가 지시하는 본능과 무의식을 마치 자신의 의지인 것처럼 착각한다. 유전자는 인간과 생물들이 쏟아 붓는 모든 노력이 모두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믿게 하고, 삶과 번식을 위해 전력투구하도록 만든다. 결국 이 모든 분투의 궁극적 수혜자는 영속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러니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 삶의 정의는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유전자를 위한 대리전쟁인 셈이다. ‘라는 개체는 번식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죽고 없어지지만 유전자는 새로운 운반체, 즉 후손을 통해서 보존된다. 재주는 운반체들이 넘고 영속하는 것은 유전자, DNA인 것이다.

 

과학의 본질이자 최대 공로는 과학적 사고이며,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과학, 특히 생물학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생물학은 직관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생명현상의 실체를 밝혀냈고,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길을 열었다. 인간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생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 속에는 문명사회 이전의 본성이 밑바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무의식적 행동은 인간 행동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윤리는 무엇인가?’ 등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적 물음에 대한 사실적 탐구를 위해서는 철학이나 심리학보다 생물학에 기대는 것이 유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생물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솔직히 세포 하나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생물학의 현주소다. 가령, 사람의 유전자는 2만 개가 넘는데, 40%는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은 생명과 인간을 둘러싼 지상 최고의 드라마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을 제공한다. 생물학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유전과 진화에서 상당부분 진척을 일궈내면서 생물의 본질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 증거다.

 

20세기가 찬란한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의혹과 질문으로 가득 찬 생물학의 시대다. 생물학은 탐구의 주체가 바로 탐구의 대상이 되는 특별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 맨 앞줄에는 진화생물학이 자리 잡고 있다. 생물학은 인간의 본성과 정신현상을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그런 지적 호기심이야말로 과학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더욱 정교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프로이트가 아니라 다윈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지막 쪽을 덮을 때쯤이면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궁금증이 들지 모른다. 그러면 책을 제대로 읽은 셈이다. 생물학 이야기좋은 과학책이 늘 그렇듯이 대답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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