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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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몸과 우주'를 키워드로 잡고 우리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진단한 인문 비평 에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입문서쯤으로 해석해도 좋다. 저자는 의역학醫易學을 현대의 삶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고전평론가라는 고유한 직업을 만들어냈다. 고전평론가는 오래된 고전을 우리 시대의 첨예한 문제와 사선으로 연결하는 글쓰기를 하는 그가 만든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직업이다. 남산 밑에 자리한 공부공동체 감이당坎以堂은 '몸/삶/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곳이다. '생명의 원리(醫)와 우주의 물리적 이치(易)는 하나!'라는 것이 의역학의 기본테제이다. 이 오래된 지혜를 21세기 인문학의 화두와 접속시켜 생명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여 삶의 윤리적 기술로 변환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문의역학'이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으로, 동아시아 2000년의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동양의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허준이 장장 14년에 걸쳐 완성한 책으로, 25권에 달하는 엄청난 스케일로 목차만 무려 100쪽이 넘는다. <황제내경> 이후 송, 금, 원, 명대까지 의학의 정수를 추려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 조선의 의학 전통을 잇고 있다. 특히 중국에선 30여 차례 간행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한의학의 표준적 모델이 되었다. 인체를 대우주의 여러 형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우주'로 바라보며 생명의 원천인 정精, 인체의 생리적인 운용을 담당하는 기氣, 정신활동의 주체인 신神을 기둥으로 삼고 있다. 다른 의학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담론의 질서를 갖추고 있는 실용서이며 양생서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주목하는 키워드는 '몸'이다. 저자는 몸,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사회, 경제, 운명 등 총 8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기존의 보수/진보 등과 같은 이분법적 틀에 갇힌 사회비평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평을 선보인다. 몸을 탐사하는 길에서 정치와 양생이 마주치고, 여성성과 지혜가 결합하며, 교육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가 교차하고, 삶의 비전과 우주의 충만함이 드러난다.

저자는 유행이 되다시피 한 성형중독에 대해서도 미추와는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못생겨서 무시당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싶어 성형을 했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이미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남들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가 먼저 자신을 업신여긴 다음에라야 비로소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길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타인들의 이목구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목구비가 만들어 내는 전체적인 표정과 생기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타인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기운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성형은 미친 짓이다. 보톡스만 맞아도 표정이 사라지는데 전신을 다 헤집어 놓으면 대체 무엇으로 소통을 한단 말인가? 결국,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선 상처와 번뇌만이 반복된다. "성형천국, 마음지옥!" 본문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가 몸공부의 일환으로 강력 추천하는 것이 낭송이다. 낭송은 텍스트를 소리 높여 읽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부법이다. 낭송은 노래와 춤과 달리 날마다, 오랜 시간 계속해도 해가 없다. 오히려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중에서 신장腎臟은 목소리의 뿌리다. 소리훈련을 하면 신장과 뼈를 단단히 할 수 있다. 뼈가 튼튼하면 웬만한 외부 충격이 와도 끄떡없다. 그러니 낭송은 생명력을 기르는 좋은 양생법이자 수행법이기도 하다. 고로 낭송은 힘이 세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 신체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소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체성에 바탕 하지 않는 공부는 공허하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 되지 못하고, 사람을 찌르는 창槍이 되는 시대에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기술이 본질을 억누르는 시대, 검색이 사색을 앞서가는 시대에 삶의 본질과 우주의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5장 '몸과 교육'에는 수능을 막 끝낸 이 땅의 고3 수험생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밑줄을 그어 안겨주고 싶은 구절이 가득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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