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경제학자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김영사, 2009(개정판)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쉽지 않은 개념과 온갖 수식, 그리고 복잡한 그래프 등으로 인해 난해하고 복잡한 과목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방법론을 익히는 데 많은 기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현실 문제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답답하고 잔인한 학문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학생들과 일반인에게 경제학의 난해함과 현실 문제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입문용으로 맞춤한 책이다.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의 이론부터 카너먼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연구까지 위대한 경제학 대가들이 펼치는 300년 경제사상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버지 조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크 부시를 말함) 행정부 시절에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낸 관록과, 직접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특유의 입담과 어우러져 방대하고 난해한 경제학 및 경제사상사를 쉽고 재치 있게 풀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경제학의 창시자로 떠받들지만 그는 경제학을 가르친 적이 없다. 심지어 경제학 자체를 배운 적도 없다. 경제학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이미 도덕감정론이라는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다룬 책을 출간한 철학자였다 (하긴 마르크스도 철학자였고, 케인스는 수학자, 폴라니는 역사학자였다). 어쨌든 스미스가 프랑스에 머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200년도 훨씬 전에 쓴 국부론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세상사에 대한 특히 철학정치학상업경제의 세계를 사실, 분석, 예언, 우화 등 명료하고 매력적인 방식을 동원하여 설명했다. 특히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라는 원제가 말해주듯이 스미스는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설명해줄 인과법칙을 찾아내는 데 특별히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인간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한다는 본성과,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하고, 교역하고, 거래하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래서 국가의 부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런 인간의 자연적인 충동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하며, 인간의 이기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제사상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다음 구절이 그것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66) 주류 경제학자들이 앵무새처럼 늘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은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먼저 언급했고 두 책 모두 한차례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모두 이런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맡긴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 조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지휘자, 즉 자유시장을 상징한다. 비록 애덤 스미스가 자유무역과 상인의 동기를 칭송했지만, 그는 부르주아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았다. 부자들을 옹호하거나 변론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탐욕스런 상인들을 비판했다.

 

비운의 혁명가이자 경제학계의 이단아인 카를 마르크스(18181883)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르크스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과 더불어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며 역사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르크스의 논리대로라면, 자본주의는 계급 제도에 의존하기 때문에 혁명은 불가피하고, 노동자 계급의 승리 또한 자명한 것이 된다. 마르크스는 강한 어조와 선동적인 문체로 무덤을 파는체제로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노동가치설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마르크스는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 같은 역동적이고 관념적인 수많은 요인들을 논의 과정에서 간과했다. 현대의 급진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정신적 스승인 마르크스의 유물에 맞서 많은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들이 이겼다는 승전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의 실업률이 3%에서 25%까지 치솟았고, 국민소득이 반토막이 났던 대공황기에 많은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온종일 직업 알선소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무료 급식 시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자유방임주의에 뿌리를 둔 시장경제학자들의 고전경제학은 대공황시기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 그 때 대안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의 구원투수로 나선 사람이 존 메이나드 케인스(18831946)이다. 케인스는 공황 발생의 원인을 경제 전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유효수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시장의 합리적 조정 능력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지출을 늘려서 대공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경제사상사를 관통하며 정부와 시장을 등에 업은 경제학자들 간의 끊임없는 대리전을 보여준다. 개정판에서는 제목과 달리 존 스튜어트 밀, 앨프리드 마셜,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뷰캐넌 등 죽은 경제학자는 물론 로버트 루커스나 대니얼 카너먼 같은 살아 있는 경제학자들도 만날 수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세기에 걸친 명화들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닥 둘러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모른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고 음미할 시간도 가져보지 못한 채 빠르게 달리는 격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사상사의 맥락과 진수를 살아있는 언어로 흥미롭게 전해주는 매력을 선사한다. 위대한 경제학자들 사이의 불꽃 튀는 비판과 논쟁을 통해 지성의 향연은 물론 굽이치는 열정의 파도를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좋은 경제 정책이란 철수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영희에게 주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는 것과, 경제사상의 역사는 종종 배고픈 사람들, 누추한 사람들, 그리고 재빠른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면 경제사상사의 거대한 흐름을 꿰뚫는 명강의를 들었다는 포만감이 저절로 들게 되는 책이다. 1994년에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 이후 사람들 입에 그토록 자주 오르내린 이유를 알게 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기획회의 405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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