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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도 망하지 않아 - 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
강도현 지음 / 북인더갭 / 2012년 11월
평점 :
망하지 않는 착한카페 이야기
『착해도 망하지 않아』
강도현 지음, 북인더갭, 2012
홍대앞을 지나다가 한 카페 앞에 세워진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 차렸소!’ 순간 웃음이 났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절반 이상이 자영업을 한다면 카페를 생각한다. 음식점 차릴 만한 요리 솜씨는 없고, 술장사는 뭔가 복잡할 것 같아서다. 반면 커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수요층도 충분한 데다 아기자기한 맛도 있으니 카페야말로 직장인들의 로망이요 퇴직자들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영업 생존율은 20%가 안 된다.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적자 안 나는 카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는 사람만 안다.
『착해도 망하지 않아』는 ‘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프랜차이즈에 치여 거리 구석구석에 숨은 동네카페들을 찾아 그들의 착한 경영방식을 밝힌 책이다. 대한민국 자영업의 적나라한 생태계를 고발한 화제작 『골목사장 분투기』의 저자 강도현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경영 컨설턴트를 거쳐 외국계 헤지펀드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트레이더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폐해를 느끼게 된다. 결국 3년 만에 트레이더 일을 그만두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감하게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했다. 소셜 카페의 기획자로 ‘카페바인’을 운영하며 자영업자의 삶을 사는 한편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활발한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저자는 2009년에 작은 카페의 무덤이랄 수 있는 홍대 중심가에 ‘카페바인’을 열었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을 안고 시작한 일이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평범한 직장인 등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고 작은 공간이지만 큰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 그러나 상권이 좋으면 그만큼 임대료도 비싼 법. 홍대근처는 1층에서 장사를 하려면 하루에 커피를 2백잔 팔아도 임대료조차 못내는 곳이다. 열심히 일해서 땅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연 지 얼마 못 가 적자에 허덕였고 개인적으로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결국 희망제작소 컨설팅그룹 연구원들로부터 임대료가 비싼 홍대에서 빠져나오라는 것과 소셜카페로서 본연의 목표를 정하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지역에 완전히 밀착된 공간을 만들라는 컨설팅을 받기에 이른다. 이미 착한 카페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동네카페들을 벤치마킹하라는 조언도 함께 들었다. 저자는 미련 없이 홍대를 뒤로 하고 동교동으로 카페를 옮겼다. 그때부터 전국의 ‘착한 카페’를 찾아 순례의 길을 나섰다. 큰길가의 좋은 상권에 버티고 앉아 세련된 인테리어로 폼 나게 장사하는 프랜차이즈 틈에서 과연 동네카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떠난 카페 기행에서 저자는 놀랍고 감동적인 사례들과 마주친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그 유명한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카페‘작은나무’다. 200명이 넘는 출자자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나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곳이다. 카페를 통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카페가 마을공동체의 각종 행사와 회의의 장소는 물론 편한 쉼터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공간 자체가 ‘개인적 사건’이 될 정도로 생활과 깊숙이 밀착되어 있다. ‘작은나무’는 마을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에 굴하지 않고 공동이익을 감당해 나가며 어떻게 대안적 카페를 꾸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협동조합 모델이다. 카페‘신길동그가게’는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윙W-ing센터에서 운영하는 동네카페다. 윙센터 최정은 대표는 사회복지단체를 중심으로 해오던 자활 ‘프로그램’에 회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인문학 공부였다. 공부공동체를 지향하는 ‘수유너머’ 등의 도움을 받아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다. 강요된 자활 ‘프로그램’에는 반응하지 않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책을 읽기 시작했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는 그 외에도 ‘행복한 카페’, ‘동네변호사카페’, 카페‘이로운’ 등 착한 경영이 빛나는 여섯 곳의 카페가 더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비자본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야심을 품은 저자의 ‘카페바인’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저자가 착하게 살아남은 카페들을 돌아보며 밝혀낸 비밀은 바로 ‘스토리’이다. 커피는 마케팅이 아니라 관계다. 입지나 인테리어보다 소통의 자산이 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 고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은 언제든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따라하지 못할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스토리는 함부로 따라할 수 없다. 스토리는 마케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결국 스토리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것이 가장 비자본주의적 발상으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지역에서 살아남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는 장사는 대개 3년이 지나면 결판이 난다. 자본주의 계산법으로는 망했어도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카페바인’은 6년이 지난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그동안 ‘카페바인’이 큰 수익은 내지 못하지만 공동체의 삶이 살아 있는 실천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 동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을 재해석하여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그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스토리를 쌓아가며 삶과 밀착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결과다.
『착해도 망하지 않아』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실무자들을 만난 현장기록을 바탕으로, 착한 경영이 카페 경영에 실제로 어떻게 유용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영탐구서에 가깝다. 자영업으로서의 ‘카페’ 날것의 모습과 카페 운영자들의 희로애락, 무엇보다 사회를 향해 강력하고도 착한 힘을 발휘하는 ‘카페’라는 위대한 공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한다. 카페도 커피머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성공의 기준은 돈을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가 아니라 도전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느냐에 달려 있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파고 속에서 이러한 착한 공간이 우리 주변 곳곳에 꿋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지속 가능한 카페 운영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기획회의 4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