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신장섭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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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과의 대화

신장섭 지, 북스코프, 2014

 

1997.11 한국 IMF 구제금융 신청, 1999.8 대우그룹 해체, 1999.10 대우 김우중 회장 해외 출국, 2005.6 김우중 회장 귀국, 18년 전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지나갔던 IMF사태와 대우그룹 해체 관련기록을 간추린 것이다. 김우중과의 대화는 신장섭 싱가폴 국립대학 교수가 2010년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150시간가량에 걸쳐 나눈 대화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있던 IMF관련 숨은 비화와 대우그룹 해체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장섭 교수는 현대경제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이다. 1997년 한국경제가 금융위기에 들어간 뒤에는 IMF처방 및 구조조정에 비판적인 글을 쓰고 한국경제의 대안을 모색해왔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대우그룹의 성장과정, 두 번째는 대우그룹의 몰락과정, 그리고 세 번째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대화이다. 대우의 세계경영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경영 일선에 있는 경영자들이 참고해야 할 유익한 조언은 물론 특히 신흥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인들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알짜배기 정보와 노하우를 담고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의 깃발을 들고 창업 30년 만에 신흥국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뛰어올랐다. 해체 직전인 1998년에는 한국 전체 수출의 13%를 넘어 섰다. 그런 대우가 세계경영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부실이 쌓여 금융위기를 당했는데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확장 경영을 하다가 시장의 신뢰를 잃고 망했다는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보다 긴 안목으로 재평가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경제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IMF 구제금융 사상 가장 성공적인 회생을 했다는 치적治績을 내세웠다. 한국경제에 원래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했는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결과, 한국경제의 체질이 개선됐고 외국인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높아져서 금융위기를 빨리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15년간 한국경제의 정사正史로 굳어져왔다. 그동안 이와 정반대의 야사野史를 써온 저자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다. “금융위기가 온 데에는 한국경제가 일부 잘못한 것도 있지만 국제금융시장이 근본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에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경제는 IMF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회복됐다라고 주장해왔다. 한국이 다른 금융위기국들보다 빨리 회복한 것은 IMF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원래 투자도 많이 해놓고 성장률도 높았던 건강체질이었기 때문이다.”(25) 대우 해체에 관해서는 그동안 무수한 언론보도와 후속 연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김우중 회장이 그 과정에 대해 직접 공개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김 회장과 DJ 정부 신흥관료들은 애초부터 한국 금융위기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서 커다란 시각차를 보였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 재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었던 김 회장은 ‘IMF플러스라고 불릴 정도로 IMF가 실제로 요구한 것보다도 더 강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충실히 집행하려고 하는 정부측 경제 관료들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수출확대를 통한 IMF체제 극복론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위기 극복론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대우가 신흥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벌인 자동차 투자를 부실로 판단하고 유동성을 지원해 살리기보다 대우그룹을 해체시키는 길을 택했다. 1999년 대우는 IMF에서 제시한 처방전을 따르지 않고 구조조정을 가장 등한시한 재벌로 몰리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하고 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비운을 맞았다. 김우중 회장은 한국 최대의 부실 기업인으로 낙인찍혔다. 그 뒤 2006년에 법원은 정처 없이 해외에서 떠돌다 6년 만에 귀국한 김우중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214000억 원을 선고한다. 대우 해체는 당시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파산으로 기록됐다. 반면에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와중에 도산 위기를 맞은 세계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2009년 미국 정부가 인수하고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함으로써 불과 4년 만에 회생한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후에는 정부가 나서서 대우차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으로 GM에 넘겼다. 덕분에 GM은 대우가 개발한 소형차를 앞세워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죽쒀서 개준격이 된 셈이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김우중과의 대화는 여러모로 독특한 책이다. 대우라는 한 그룹의 흥망사와 IMF터널을 뚫고 지나온 과거사실을 흥미롭게 전하면서 한국 현대경제사에 대한 재해석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자료를 뒤적이고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가며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기보다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김우중 회장은 대북특사 자격으로 김일성, 김정일과만 스무 차례 이상 직접 만났다. 책에는 김 회장이 남북문제에 대해 깊숙이 간여하며 막후 접촉활동을 한 뒷이야기 등 다른데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밖에도 리비아 진출에 성공한 이야기, 삼성과의 자동차 빅딜, GM을 꺽고 폴란드 자동차회사 FSO를 전격적으로 인수하여 전 세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일 등 대우의 수많은 경영일화가 등장한다. 이 책은 역사의 교훈을 통해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국가공동체 속에서 기업과 기업인들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한국경제는 어떻게 가야 할지 등 한국사회에 던지는 충심어린 조언을 담고 있다. 기업인들에게는 단순한 기업경영을 넘어 정치경제학, 정치경영학의 참고서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김 회장은 2012년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s)과정을 운영하며 한국 젊은이들을 교육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노회장의 경륜과 젊음의 패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를 하게 만든다. IMF사태와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하여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중앙일보 기자 4명이 함께 쓴 DJ정권 5년의 경제실록인금고가 비었습디다(김수길 외, 중앙M&B, 2003)를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 5년의 경제사를 복원한 책으로, IMF 당시 상황과 대우 해체와 관련된 자료를 접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품절되어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도서관에 가야 볼 수 있다. 서초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청구기호는 ‘320.911-3-40’이다.(기획회의 401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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