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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노래하다 - 노래로 쓰는 인생필사
김현성 엮음 / 뉴휴먼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노래로 인생을 쓰다
『Pen으로 노래하다』
김현성 엮음, 뉴휴먼, 2015
『Pen으로 노래하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 중에서 필사하기 좋은 아름다운 노랫말을 가려 뽑은 책이다. 가수보다도 가객歌客이라는 독특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가수 겸 작사작곡가 김현성이 엮었다. 가객은 ‘노래를 잘 짓거나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말처럼 엮은이는 세 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같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작사작곡한 장본인이다. 엮은이만 있고 지은이는 없는 책이다. 물론 책에 실린 노래들의 작사자가 지은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은이가 더 있다. 바로 이 노래들을 듣고 부르고 사랑했던 우리 모두가 이 책의 지은이다. 우리가 이 책을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책장을 넘기니 정감어린 손글씨로 쓴 프롤로그의 한 대목이 눈을 붙든다. “디지털 기기들에게 내어준 눈과 손에게 제자리를 찾아주자. 그대의 마음을 손끝에 모으라. 어린 시절 연필을 깍는 마음이 되자.” 이 책의 성격을 한눈에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제껏 노랫말은 그저 노래에 딸린 일부분이고, 필사는 시나 소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노랫말만을 따로 모아 놓고 보니 ‘노래(가사)가 곧 시’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그야말로 모래사장 속에 감추어져있던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다. 거개가 낯익은 노래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사만 뚝 떼어놓고 보니 정말 우리가 그토록 불러제켰던 노래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새롭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뽑는 심사위원들은 일을 덜었다. 책에 실린 72편의 노래가사에서 고르면 모르긴 몰라도 크게 벗어나진 않을 듯하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양희은, 한계령)
책은 크게 ‘초등학교 동창회 가던날’ ‘그것이 젊음’ ‘브라보 마이 라이프’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우리의 모습 이었어’라는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등학생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의 희노애락과 정서를 담은 노래가사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 들어 앉아 있다. 이 책은 ‘노래로 쓰는 인생필사’라는 특이한 부제가 달린 책이다. 그냥 필사가 아니고 ‘인생’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필사필사必死筆寫(필사적으로 필사해라, 그래야 글을 잘 쓴다!)류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낭만필사쯤이 어울리겠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끼적일 때마다 노래와 함께 웃고 울며 술 마시고 떠들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책장을 넘기다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에 눈이 멈췄다. 젊은 시절 참 좋아했던 노래다. 3학년 때는 3학년이라 좋아했는데, 5학년이 되고 나니 더 애틋하다. 누구한테 받은 선물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만년필을 오랜만에 서랍에서 꺼내 잉크를 가득 채우고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써본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김광석, 서른즈음에)
9월과 10월은 밤과 새벽이 점차 가까워져 가는 때이다. 우리가 떠나보내지 않아도 빨리 가고, 떠나오고 싶지 않은데 자꾸 등을 떠민다. 『Pen으로 노래하다』는 그래서 노래를 부르고 싶고, 노래를 듣고 싶은 이 계절에 마주하기에 좋은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