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숙 작품집 지만지 고전선집 549
한무숙 지음, 김진희 엮음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여름의 화양연화

 

한무숙 작품집 - 유수암

한무숙 지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올 여름은 유난히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주말마다 더위를 피해 집에서 가까운 숲속으로 피서避暑를 가면서도 피서避書까지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매번 책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한무숙 작품집이다. 한무숙(19181993)은 전통적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규수작가로 알려져 있다. 1948년에 국제신보 장편소설 공모에 <역사는 흐른다>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뒤 1957년에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과 한국여류문학인회 중앙위원 등을 맡는 등 여성문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한무숙 작품집에는 여성 삶에 대한 통찰과 자아 정체성, 그리고 성과 사랑의 문제 등이 배면에 흐르는 5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한편 한편이 고르게 빼어나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유수암>이라는 작품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진경이라는 이름의 늙은 기생의 일생을 통해 사랑과 욕망에 대한 회한을 보여주는 한편, 홍화와 산월이 등 주변인물의 삶을 대비시켜 여성의 성과 사랑이 갖는 서러움과 애연함을 드러내고 있는 중편 소설이다.

 

1963년에 쓰여진 <유수암>은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있는 유수암流水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뜻 둘 다 암자 같지만 같은 골짜기에 있는 청수암淸水庵이 실제로 부처님을 모신 암자이고, 유수암은 화류가花柳家, 즉 고급 요정이다. 이름처럼 이 두 곳으로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맑은 물소리와 솔바람소리가 들린다. 거기다 맑고 고아한 독경讀經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섞여 제법 유수幽邃한 풍취가 감도는 곳이다. 그러나 유수암에 불빛이 꺼진 후로는 자연 찾아오던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다.

 

가믈가믈 들리는 독경 소리는 누구의 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인지, 숭불崇佛의 경건함보다, 애애하고 곱기만 하여 오히려 서글프다. 맑은 음성이 매그러지듯, 구비 치듯, 오르락내리며 짓는 억양에는 기원보다 절원切願이 느껴졌다. 연련하고 애틋하여, 색정조차 느끼게 하도록 음색에는 윤이 흐른다. (한무숙, <유수암>, 116)

 

사만 평이 넘는 넓은 산장에 퍼져있는 크고 작은 집들 중에서 가장 수수하고 작은 집이 유수암의 안주인 진경이 머무는 곳이다. 기와는 얹었으나 촌가의 모습 그대로다. 독경 소리는 그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늙은 기생 진경은 이곳에서 친구이자 같은 노유장화路柳墻花 처지인 홍화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저녁이면 유수암 마당이 크고 작은 승용차로 뒤덮였었지만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끈끈하게 비린 육취肉臭와 함께 현악絃樂과 환락歡樂에 취한 소리가 끊긴 지 삼 년이 지났다. 젊고 애애한 시절도 있었건만 지금은 짙은 화장으로도 이미 오십에 손이 닿아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무릎을 세우고 교태 어린 앉음새로 화투짝을 떼느라 숙여진 머리의 정수리가 엷은데다 흰 것도 더러 섞여있는 것이 보인다. 홍화가 아리랑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고 두 어 모금을 빨며 화투짝을 끌어 모으며 입에 배인 잡가雜歌를 콧소리를 섞어 흥얼거린다.

 

못 살 것만 같더라.

죽을 것만 같더라.

정든 님 이별하고

못 살 것만 같더라.” (한무숙, <유수암>, 119)

 

무던히도 늙은 얼굴이 거기 있다. 거적 말아버려도 썩지 못할 한이 어린 얼굴이다. 노추老醜가 화류항에서 늙는 얼굴에는 유달리 두드러지는 것인가? 그것은 노추를 더욱 발겨 내면서 이미 여인의 한계를 넘고 있는 얼굴이었다.

 

한무숙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대개 근대의 개인주의와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사랑에 대한 환상과 허위의식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유수암> 역시 낭만적 사랑과 허위의식이 성에 대한 운명론적 긍정과 엇갈리며 표현되어 있다. 기생이 되는 이유가 대개는 가난때문이다. 간혹 유혹에 끌려드는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바닥에 깔린 것은 역시 원수 같은 가난이다. 진경과 홍화도 마찬가지다. 진경은 조촐한 물주가게를 하던 아버지가 진경이 열여섯 살 때 갑자기 죽는 바람에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급기야 기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뒤 30여년을 꺾이는 꽃의 신산한 삶을 살았다. 화류 인생에서는 정든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역경을 기생이 먼저 안다. 얽혀드는 의리가 까닭일 때도 있고, 무정한 남자의 변심과 속 얕은 여자의 변심이 사이를 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진경은 기생의 신분으로 수많은 남자를 만나고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이 한 번도 버림을 받은 일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기생노릇은 할망정 끈적끈적 눌어붙이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그의 정분은 언제나 선명한 막이 내리듯 끝났다.

 

의차피 귀밑머리 마주 푼 사이가 아닌데, 파뿌리 되도록 같이 늙자는 건 아녜요. 가정으루 돌아가세요. 기생과는 외입하는 거지 항아릴 빚는 건 아니거든요. 당신의 가정이라는 항아리는, 나 때문에 금갔지만, 테 메우듯 메우면 그릇 구실은 할게외다.” (한무숙, <유수암>, 125)

 

진경의 사랑이 한 막을 내릴때마다 또 진경이가 사내를 차버렸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경 역시 회한을 가슴속에 품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의식은 스스로를 소외와 고독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것을 가로 막곤 한다. 사노라면 피를 가진 인간이라 병이 생긴다. 기생의 병은 정분나는 것(진심으로 연정을 느낀다는 화류계의 술어)’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끝장이 오고, 기생은 아픔 하나와 남자 다루는 솜씨 하나를 더 얻고 다시 웃음을 팔아야 한다. 영리한데다 여느 기생과 달리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아 지식과 교양도 높았지만 진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스물 한 살의 젊은 여인이던 시절에 일본의 인류 대학에 유학하며 고등 문과 시험을 패스한 남자에게 첫 정분을 잃고 그 비련 끝에 죽으려고 약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진경의 길고도 질긴 연분은 따로 있었다. 유명 정치인인 정진수와의 꿈같은 7년이 그것이다. 그의 승용차가 어엿하게 유수암 앞마당 느티나무 밑에서 밤이슬을 맞고, 정계의 요인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유수암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더니 4.19 혁명으로 정진수가 투옥되었고 진경은 그를 잊지 못하고 정진수가 풀려나기만을 기다리며 유수암을 지켰다. 그러던 그가 1년 전에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나온 것을 알았지만 정진수는 여태 진경을 찾아오지 않고 있다. 진경이 갖고 있는 남모를 애달픔은 그것만이 아니다. 죽자 사자 한 사람의 씨는 받지 못하고, 싫은 사람의 아이를 갖는 것도 기생의 업인가. 아니면 아무 남자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체의 슬픈 약속인가. 진경은 한때의 어리석은 인연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 스물여섯살 때, 피치 못할 의리로 싫어하면서도 잠시 가까이 한 남자의 씨였다. 몸을 풀자 다시 밤이면 분세수하고 요정에 나가야 하는 어미에게 아기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마음에 모성이 자리 잡을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기생의 몸으로 아이를 키울 수가 없다는 생각에 일치감치 아이 없는 언니에게 보내 남몰래 키우게 했던 것이다. 줄곧 아이의 양육비와 교육비를 보내주었다고는 하나 그건 책임이 아니고 방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아들이 어느새 스물세 살 청년으로 자라 군에 입대하는 전날 생모인 진경을 찾아온 것이다. 진경은 비로서 왈칵 부끄러움이 솟고, 참괴慙愧로 가슴이 쓰렸다. 그러나 낳으면서 모성일 수 없었던 삶이, 생각한 것보다 이내 덜 부끄러운 것이 스스로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십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아들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묘한 말을 하며 한 번도 어머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두 번째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며 문이 너무 삐걱거리는군요. 이담에 와선 고쳐드리겠어요.”하며 아들은 그때서야 조금은 살갑게 진경을 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진경은 도로 자리에 누우며 자꾸만 솟구쳐 오르는 착잡한 눈물을 어찌하지 못한다. 전날 밤 잠 못 들며 생각으로 밝힌 사람은 아들이 아니고 정진수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성과 사랑으로부터 오는 생명감과 환희에 대해서도 긍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손자를 안을 나이에 자나 깨나 사랑 타령하는 친구 홍화가 그렇다. 부처님 모시고 보살로 살겠다며 입산했다가 다시 내려와서는 기껏 열세 살이나 손아래인 기둥서방을 만나는 바람에 딸 같은 본처에게 알망신을 당하는 홍화를 진경은 대놓고 나무라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가장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을, 오직 육체로만 확인하려 하는 그의 추행은, 오히려 여심女心의 극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의 사랑 노래를 들으며, 경은 관음경보다도 더 절절한 기원을 가려들었다. 가여운 중생-지나고 보니 살았다는 실감조차도 엷어졌지만, 이 친구에게 끌리어 헛딛게 된 자기 삶도,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한무숙, <유수암>, 132)

홀로 된 외로움이 육체에까지 사무치는 진경은 방 안을 둘러보다가 옛 연인이 두고 간 아프리카 토우를 바라보며 그 육체에 새겨진 관능성과 생명감을 기억하려 애쓴다. 거기에는 원시인의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는 동시에, 불가해한 것에 대한 불안도 꾸밈새 없이 나타나 있다. 소설 속에서 여성성을 잃어가며 점점 늙어가는 여인이 가까스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애달파하는 모습은 성과 그에 대한 욕망이 인간에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요정과 기생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을 읽다보니 불현 듯 40년도 더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충남 공주의 한 읍 소재지이다.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를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불렀다) 들어가기 직전이었으니까 일곱 살쯤 되었을 때다. 우리집은해동여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던 요릿집과 담장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우리집과 해동여관이 자리잡은 좁은 골목이 우리들 놀이터였다. 넓은 학교 운동장은 대개는 덩치 큰 형들 차지라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골목에서 공을 차며 놀곤 했다. 그곳에는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행사 때면 귀빈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상장과 부상을 수여하시는 높은 분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찬 공이 그만 그곳 담장을 넘어갔다. 방향을 가늠해보니 다행히 안채가 아닌 뒤뜰 쪽이었다. 누군가 담을 넘어가서 공을 찾아와야 했다. 설사 걸린다 해도 이웃인 내가 낫지 않겠냐며 애들이 내 등을 밀었다. 할 수 없이 발밑에 납작 엎드린 한 아이의 등을 밟고 담장을 넘었다. 지금처럼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라 뜰에는 나리꽃, 목백일홍, 호박꽃, 무궁화 같은 꽃들이 우거져서 좀처럼 공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저쪽 마루 끝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분홍빛 한복을 위아래로 곱게 차려입은 스무 살 후반쯤으로 보이는 누나뻘 되는 여자들 몇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여자의 고무신 발밑으로 우리가 갖고 놀던 축구공이 보였다. 내게 나이와 이름 등 이것저것을 물으며 까르르 웃어대는 그녀들한테서는 엄마나 동네 아줌마들한테는 맡지 못했던 화장품 냄새와 향수 향기가 훅 하고 끼쳐왔다. 순간 취할 듯 아득해졌다. 공을 갖고 있던 여자가 공을 건네주며 자기가 먹고 있던 양갱과 약식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주인아줌마한테 들키면 경을 칠테니 조심해서 나가라며 친절하게도 바깥으로 나가는 숨은 샛길을 알려주었다. 골목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이들 앞에 축구공은 물론 먹을 것까지 얻어서 나타난 나는 졸지에 영웅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가끔씩 밤늦은 시간에 담 너머에서 장구나 가야금 소리에 맞춰 들려오던 알 수 없는 노래 소리와 높은 웃음소리의 정체를 얼핏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젊었던 진경과 홍화가 춤추고 노래하던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골목에서 공을 찰 때면 담장 너머로 공을 넘기기 위해 그 누구보다 힘껏 공을 차곤 했지만 어린 아이가 차는 공이 다시 담장을 넘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좁은 골목에서 노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어른들의 꾸지람이 이어지자 우리는 학교운동장으로 옮겨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그때부터 공차는 게 시들해졌다.

 

한무숙 소설의 주인공들은 현실에 패배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삶에 절망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나아간다. <유수암>의 주인공 진경은 흐르는 물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반추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지나간 사랑을 붙들며 살았던 진경은 비로서 사랑은 이미 떠났고 자신은 늙어가고 있다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경의 눈은 저기 못 박혀 있었던 것이다. “저것 보세요. 언니. 저 물가의 버들이 시들었지요? 물은 변함없이 흐르구 있는데. 허지만 예전 흐르던 그 물이 아니군요. 그러면서 언제나 여긴 물이군요. 언제나 같은 물이군요. 언제나 시시로 새로우면서. 이 물같이 모두들 가버리구, 또 모두들 있군요. 다만 버들만 시들구. 나만 시들구.” (한무숙, <유수암>, 188)

 

그러나 체념과 단념은 다르다. 오히려 그녀는 그러는 동안에 부재의 의미를 뼈저리게 터득한다. 부재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충실하고 뿌리 깊은 현존이라는 것을 진경은 실감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 익숙해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진경은 절감한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기억하기 마련이다.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한들 기억의 빛이 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힘든 순간이 찾아올수록 그 장면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 온 몸을 감싼다. <유수암>의 결말에서 홍화는 애애한 목소리로 태평가를 뽑는다. 마치 그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애써 기억하려 하는 듯이 말이다. 두 여자가 믿고 의지하는 현 박사가 유수암에 왔을 때, 마지막까지 유수암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탁 주사가 현 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인들이 수각에서 놀구 있지요. 놀게 해주어야죠.” 어쩐지 애닮고 쓸쓸하게 들리는 말이다. <유수암>은 여성 정체성의 탐구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탐색과 존재의 자기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더위를 피해서 이 소설을 읽던 곳이 북한산 줄기의 한자락이어서 그런지, 거기서 얼마큼을 더 들어가면 실제로 유수암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어디선가 유장悠長한 태평가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해서 한참동안 귀를 기울였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 (2015 한무숙문학관 리뷰대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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