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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미얀마로 여행을 가기로 작정하고 그곳에서 읽을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다. 미얀마를 배경으로 한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과 <유리 궁전>을 사서 계산대로 가려는데 검정 색 띠지를 두른 작은 책 한 권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아니 하루키가 언제 단편집을 냈지? 표지를 넘기니 내가 아는 그 하루키가 맞다. 습관대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 단편인 ‘드라이브 마이 카’로 바로 돌진한다. 117쪽을 펼쳤다. (내 음력 생일이 1월 17일이다. 그래서 어떤 책이든 117쪽을 꼭 읽어보고 산다)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중략)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 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117-118쪽)
어느 순간 저 문장이 내 심장 안으로 꽂혀 들어왔다. 당장 책을 집어 들고 계산을 마치고 신촌에 있는‘문학다방 봄봄’으로 향했다. 책을 읽기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다. 그곳에서 커피를 리필 받아 마셔가며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읽는 것을 멈춘다면 그건 하루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니면 하루키 소설이 아니든지. <상실의 시대>도 <1Q84>도 그렇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여자 혹은 남자가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떠나보낸 혹은 놓쳐버린‘상실’을 다루고 있다. 특히‘사랑하는 잠자’는 카프카의 <변신>에 하루키가 보내는 오마주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카쓰키는 분명 후자였다. (44쪽)
술 대신에 여행을 넣는다면 나 역시 분명 후자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실크로드,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들쑤시고 다닌 것도 어쩌면 뭔가를 지우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여행은 자주 멈추고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름 모를 고장을 지나칠 때마다 낯선 전율과 흥분이 눈을 찌른다. 발걸음은 더뎌지고 감상은 농밀해진다. 때론 비어있는 자리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기어코 휴지 한 장을 더 꺼내 비어 있는 옆자리까지 닦아낸다. 빈자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여행이다. 어깨를 빌려주고 옆구리를 내주는 사소한 사랑의 방식에도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여행은 불안과 주저와 한숨이 반을 차지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중략)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327쪽)
그렇다. 살다보면 사랑이 상실과 동의어가 될 때가 온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선택하는 경우다. 살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운명 앞에 놓인 그림자를 사랑할 뿐이다. 그렇게 한때를 서로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다. 여권을 챙기고 짐을 꾸렸다. 불룩해진 배낭에서 옷가지를 빼고 미얀마에서 읽을 책을 채워 넣었다. 밑줄을 그은 곳을 다시 읽기 위해 <여자 없는 남자들>도 챙겨 넣었다. 아시아나항공 OZ769편이 내일 나를 양곤에 내려주면 제일 먼저 쉐다곤 파고다로 가려고 한다. 거의 100m에 이르는 그 황금사원 꼭대기에서 내가 알던 그 여자에게 전파를 쏘아 올릴 것이다. 이 신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여자는 지구에 없는 것이다. 난 이제 그녀를 잊는다.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335-336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