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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
임흥준 지음 / 더퀘스트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세계역사를 알면 비즈니스가 보인다
『나는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
임흥준 지음, 더퀘스트, 2015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운다고?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언젠가 이 드라마에서 직원 채용의 마지막 관문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함께 한 상대방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때 비즈니스 노하우가 빼곡하게 담겨 있는 '수첩'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드라마를 보던 많은 초짜 비즈니스맨들은 현실에서도 그 수첩처럼 영업 필살기가 담긴 '비기(秘記)'가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을 것이다. 마침 비기를 담은 그 수첩만큼이나 비즈니스맨 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병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미니 프린터 세계 2위 글로벌 기업인 빅솔론의 해외영업부장인 저자가 세계역사에서 배운 비즈니스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는 『나는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이다. 역사는 미래를 읽는 더없이 좋은 도구다. 월가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그의 책에서 투자와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역사를 세밀하게 공부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역사지식이나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활용하는 일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세계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는 책에서 배운 역사적 지식을 비즈니스 현장에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계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저자가 체험한 비즈니스 사례와 짝을 이루어 소개하기 때문이다. 빅솔론은 국내 최초로 미니 프린터 개발에 성공한 삼성전기에서 2003년 1월에 분사한 기업이다. 미니 프린터는 가게나 식당에서 영수증을 인쇄하거나 바코드를 찍는데 사용되는 작은 사이즈의 프린터다. 매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제품의 특성상 높은 품질을 갖춰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빅솔론이 뒤늦게 동종업계에 뛰어들었을 당시에는 이미 엡손·시티즌·스타 같은 유명한 일본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빅솔론은 분사 10년 만인 2013년 세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 기준으로 매출 840억 원, 영업이익 150억 원을 달성해 코스닥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지구를 50번 일주할 만큼의 거리를 비행했고 전 세계 60개국 이상을 발로 밟았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그렇다고 저자가 처음부터 프로 비즈니스맨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은행원으로 잠시 일했을 뿐 영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 안정적이지만 보수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것은 순전히 그의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던 해외영업에 대한 도전의식이었다. 그가 새로 들어간 삼성전기는 2003년 1월, 미니프린터를 생산판매하는 팀을 분사했다. 저자에게는 또다시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삼성’이라는 커다란 조직에 계속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회사와 함께 모험해 볼 것인가였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영업 경험이 전무한 초짜 비즈니스맨이었던 저자에게는 도움을 받을 선배나 그럴듯한 매뉴얼은 물론 찾아갈 거래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영어 학원과 중국어 학원을 동시에 다니면서 어학 실력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구할 수 있는 모든 미니 프린터를 직접 분해조립해보면서 제품의 작동 원리를 깨우쳐 나갔다. 그러나 수시로 크고 작은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영업 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로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있을 때 불현 듯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경영학의 많은 용어들이 군사 용어에서 유래됐다. 전략·캠페인·게릴라 마케팅 등이다. 비즈니스도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기계적인 인과관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업자에게 성공은 요단강 너머에 있는 신기루에 불과한 법이다. 역사를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로 되살려내서 생생하게 숨 쉬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영업의 기본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섬광처럼 찾아온 것이 바로 그때다. 이때부터 저자는 역사서, 특히 전쟁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비즈니스는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일이므로 역사에서 성공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역사 공부는 그가 전 세계 60개가 넘는 나라에서 승승장구하며 당당히 업계의 거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뢰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책은 ‘심(心): 승부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지(智):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략(略): 싸우기 전에 생각하라’ 등 크게 3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그 안에 총 21장의 ‘교훈이 되는 역사적 사건’과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녹아 있다. 스위스 용병이 목숨을 던져 신뢰를 쌓은 사실에서부터 칭기즈칸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발상,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사단의 팀워크 등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며 비즈니스 감각을 일깨워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눈길을 끈다.
근세까지도 스위스는 공업 기반이 거의 없었던 삼류 농업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척박했고, 가진 것이라고는 산과 호전적인 기질만 다분한 사람들뿐이던 유럽의 최빈국이었다. 요들송이나 부르고 밀크초콜릿이나 만들어 먹던 그런 스위스가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고품격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며 유럽의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그 역사적 배경에는 스위스 용병이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용병 부대가 유럽 역사의 중앙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가진 전투력 못지않게 그들이 보여준 철저한 계약정신의 역할이 컸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1527년에 교황 클레멘트 7세가 기거하던 교황청이 신성 로마군에게 공격을 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로마군 2만 명의 공격으로 교황청의 수비망이 뚫리고 189명의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근위대만이 교황을 지키는 상황이었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고 저항해봤자 죽을 게 뻔했다. 교황은 자신들을 고용한 고용주였고 고용주를 버리고 도망치면 목숨은 건지겠지만 용병으로서의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스위스 근위대는 계약의 충실한 이행을 위하여 도망대신 전멸을 선택했다. 근위대가 성베드로 성당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2만 병력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는 동안 교황은 간신히 피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용병 부대는 147명이 전사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사건은 전 유럽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위스 용병에 감동한 교황청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스위스 용병들로만 근위대를 구성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 전통은 이후로도 무려 5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가를 받고 그 계약 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고용주를 위해 싸웠던 용병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비즈니스맨들이었던 셈이다. 새로운 거래선을 찾아 유럽을 종횡무진 하던 저자한테도 비슷한 경우가 생겼다. 계약을 맺은 헝가리 전자제품 수입업체에서 출장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하필 그곳이 ‘발칸반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였다. 연일 폭격과 총성이 계속되고 있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인데다 출장을 일주일 앞두고 세르비아 총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더구나 그 무장 세력들은 빅솔론이 참가하려고하는 전시회장을 폭파시키겠다는 예고까지 한 상태였다. 세르비아는 준전시상태에 돌입하고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이쯤 되면 전시회에 참가하기위해 그곳으로 출장을 가는 일이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출장여부를 고민하던 저자는 이때 스위스 용병을 떠올렸다.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헝가리 파트너는 놀랐다. 애초에 빅솔론 말고도 4개 업체가 참가를 약속 했지만 빅솔론만 출장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약속을 지킨 저자에게 감동한 파트너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빅솔론과 특별한 신뢰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사부 장군의 전술을 실전에 써먹다
책에는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복하면서 펼친 나무사자 전술을 경쟁사와의 특허 싸움에 적용해 성공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섬나라 우산국은 울릉도의 옛 명칭이다. 고구려와 세력 다툼을 벌이며 북진을 꾀하던 신라에게 우산국은 목안의 가시 같은 존재였다. 강단 있는 우산국이 고구려나 일본과 손을 잡을 경우 신라의 배후를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사부 장군은 지증왕의 명을 받고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출항일을 앞둔 이사부는 고민을 거듭했다. 도착까지 꼬박 이틀이 걸리는 바닷길은 험하기로 유명한 난코스라 병사들은 전투를 개시하기도 전에 초죽음이 될 게 뻔했고 간신히 도착하더라도 상륙 역시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에겐 최소한의 희생으로 확실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이사부는 오랜 고심 끝에 우산국 병사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병기를 투입하기로 결심했다. 그 신병기는 무시무시한 사자의 모습을 했지만 사실은 나무로 깍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섬에서만 살아서 육지 맹수를 본 적 없는 우산국 병사들에게 군선 가득 실린 집채만 한 사자들은 엄청난 공포를 줬다. 미지의 맹수에 대한 두려움은 우산국 병사들의 전의를 꺾어놓았다. 우산국 군주는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신라군에게 항복했다. 신라 병사들이 상륙한 뒤, 맹수가 사실은 나무로 만든 가짜였음을 눈치 챘지만 이미 우산국 병사들은 모두 무장을 해제당한 뒤였다. 이렇게 신라 장군 이사부는 단 한 사람의 아군 희생자 없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저자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해외 전시회에 참가했다가 알토라는 대만 업체가 빅솔론 제품을 복제해서 팔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특허 소송을 벌여가며 대응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저자가 써먹은 방법이 바로 이사부의 나무사자 전술이었다. 빅솔론이 삼성에서 분사된 기업이며, 여전히 삼성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몇 가지 기술적 장치를 한 항의 문서를 알토의 경영진에게 보낸 것이다. 문서는 소장(訴狀)양식에 준해서 사용했고 저자의 이름 밑에는 영업사원 대신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넣었으며 소속 또한 해외영업팀이 아닌 법무팀으로 기재했다. 일종의 꼼수를 부린 셈인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알토 측으로부터 정중한 사과와 함께 특허 침해 사실에 대한 인정, 그리고 디자인 변경에 대한 확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상대의 두려움을 자극한 심리전과 이성을 찾기 전에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속도전이 성공한 사례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주옥같은 비즈니스 비법
책에는 그밖에도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 골짜기와 같은 비즈니스의 길목은 어디인지, 기업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다가 황폐해진 이스터 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단번에 전황을 뒤집은 ‘둘리틀 공습 작전’ 같은 ‘비즈니스 필살기’는 무엇인지 등 흥미롭고 유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세계 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는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서가 아니고 신화 창조류의 성공 스토리도 아니다. 저자 역시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한 학자도 아니다. 대신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역사 지식과 실전 비즈니스 노하우가 오롯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오히려 생동감이 넘친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이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며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과 기가 막히게 버무려져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25쪽에 이르는 알차게 구성된 부록은 보너스다. ‘완전히 다른, 국가별 비즈니스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각기 다른 비즈니스 스타일이 수록돼 있고, ‘어떻게 협상을 승리로 이끌 것인가’에는 협상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10가지 노하우가 담겨 있다. 세계시장을 발로 뛰며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는 ‘글로벌 미생’이 아닌 ‘국내 미생’이라면 본문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비즈니스의 주옥같은 비법을 이렇게 책으로 내놓기 아까웠을 것" 이라는 추천사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끝- (월간금융 vol.731호, 2015.2 전국은행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