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아파트 신화의 덫에 걸린 사람들 

『하우스푸어』
김재영 지음, 더팩트, 2010

‘워킹 푸어(Working Poor, 일 하는데 가난한 사람)’라는 말을 들은게 엊그제인데, 이젠 또 ‘하우스 푸어(House Poor)’란다. 하우스 푸어는 비싼 집에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는 신조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시대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집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내집 한칸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던 사람들. 지상의 방 한 칸, 지상의 집 한 채. 더도 바라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겨우겨우 ‘내집’을 가졌으나, 이젠 그 집에 짓눌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니. 아빠는 하우스 푸어, 아들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그냥 ‘푸어’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 책을 쓴 이는 현직 방송사 프로듀서다. 당시 MBC <PD수첩>의 프로듀서였였던 저자는 방송을 통해 최근 1년 동안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했다. 판교와 강남 재건축, 인천 송도에 이르기까지 재건축 문제 등 아파트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자화상이 전파를 타고 안방에 전해졌다. 아파트 신화의 덫에 걸려 비싼 집에 살면서도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가감없이 전해졌다. 이들은 2000년대 수도권 아파트 가격 폭등기를 지나오면서 아파트 불패신화에 속아 무리한 대출로 재건축 단지, 뉴타운, 신도시 등에서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집값이 떨어지면서 부채를 제때 갚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리하게 집을 사지 않았다면, 저축을 하며 충분히 중산층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이 집 없는 중산층에서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에게 집은 더 이상 돈덩이가 아닌 빚덩어리일 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넓은 범위지만,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100만 가구에 육박한다고 한다. 포스트 버블 시대에 한국경제에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화두가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탐욕에 가득찬 몇몇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는 이유는 일반 가계의 단순한 판단 착오 때문이거나 탐욕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매우 구조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정부-금융기관-건설업체-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달콤한 환상과 사탕발림으로 그들을 꼬드기며 부동산 덫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언론까지 나서서 부동산 불패와 강남 불패를 대놓고 나불댔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미친 광고까지 거들며 부동산을 통한 대박환상과 인생역전을 부추겼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판이 너무 커졌다. 영악한 자들은 진작 낌새를 차리고 판을 떠났는데, 정작 폭탄은 뒤늦게 판돈을 건 힘없는 사람들이 맞았다. 살짝 까본 패만 보고 없는 돈까지 끌어 모아 올인을 했더니, 돌아오는 건 빚 독촉에 월급 자동 차압이다. 

이 책은 취재를 통해 숨겨져 있던 많은 사실과 진실들을 알게 해준다. 억울하고 기막힌 사람들의 증언과 전문가 인터뷰도 잇달아 나온다. 이중에서 눈길을 확 끄는것은 집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전한 중산층인 박준명 씨(가명)의 예다. 부부 연봉이 1억원이 넘지만, 그는 여전히 전세를 살고 있다. 집에 투자하는 대신 부부와 세 자녀가 여행을 다니고, 자녀들은 다양한 교육을 체험하고 있으며, 노후 자금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지금은 자신의 결정과 판단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박 씨는 고점 대비 20% 이상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집을 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 하나를 포기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행복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192-197쪽)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혹은 집이라는 존재는 인생을 걸어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거주를 위한 집’은, 어느새 ‘투기를 위한 집’으로 변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왜 아무것도 아닌 콘크리트 건물에 이렇게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거지?’ 이 책은 아파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돌이켜보라고 말한다. 하우스 푸어의 세계가 혹 자신의 세계는 아닌지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이 책은 신문에는 나오지 않는 부동산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작 알았으며 좋았을걸 하고 뒤늦게 땅을 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불편한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끝-(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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