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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사 ㅣ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센터 문학총서 2
호르헤 부카이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알 모양의 구형에 가득 찬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 열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책을 만났다. <영혼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비록 두께는 얇지만 이야기의 교훈은 그 어떤 책보다 많았다.
작가인 호르헤 부카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 치료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었다. 또 직업상 다져진 것인지 원래 작가가 가진 것인지 모를 통찰력이 책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3~4장 길이의 짧은 이야기고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을 생각나게 하는 우화형식이지만 이야기엔 인간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이 있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책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여러 이야기 중 내 시선을 가장 끈 건 <찾는 자>와 <탐욕>, 그리고 <우물들이 있는 마을>이다. 교훈은 각각 다르지만 내가 이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지 못한 반전(?) 비슷한 결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찾는 자>에서 한 남자는 인생의 목표이자 특기인 찾기를 하다가 끌림으로 어느 무덤에 다다른다. 그 무덤 묘비석에는 하나같이 5년이나 8년, 오래되어봤자 11년을 채 못산 아이들의 날짜들이 적혀 있었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 남자에게 묘지 관리인이 다가와서 그 이유를 묻는데, (뒤는 약간의 반전 가까우므로 생략^^) 이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수첩은 없지만 내가 행복했던 시간들은 언제였을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 자꾸 퇴색되어버리는 기억, 그리고 불행했던 기억들은 내 행복했던 기억들을 밑으로 눌러 버린다.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이 잠시이고 힘든 나날만 계속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그 수첩이 하나 필요하겠다.
<탐욕>은 자신에게는 탐욕이 없다 우기지만 사실은 가장 큰 탐욕을 지닌 남자 이야기, <우물들이 있는 마을>은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하여 속을 채우는 우물들이 나온다. 결국 제 자신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라는 성찰의 이야기인데 그 과정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 외에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고 시 형식의 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 같다. 마치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와 내 세계가 넓어진 그런 기분?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을이라 내 피부만큼이나 감성이 메말라 있었는데 갈라진 논바닥에 단비마냥 읽는 내내 좋았다. 영혼의 연금술사라니 제목과 딱 맞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