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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다. 겉표지와 줄거리를 보면 내 취향일 것 같은 책인데 막상 손에 잡고 읽어 나가면 더 이상 페이지가 나가지 않는 느낌이 드는 책들. 이번에 읽은 코맥 매카시의 책 <국경을 넘어>도 그랬다. 페이지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심리 등 이유를 열거하자면 여럿이다. 하지만 쉬이 책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매력도 분명 있었다.
이 책은 코맥 매카시의 초기작에 속한다. 작가는 그 전까지 평단의 화려한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1992년에 쓴 작품 <모두가 예쁜 말들>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름을 올렸고 이어 발표한 <국경을 넘어>, <평온의 도시들> 소위 국경 3부작으로 인기작가임을 증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다음 2000년대 작품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로드>가 더 빨리 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인 <로드>나 <모두가 예쁜 말들>은 내가 모셔놓고 읽지 못한 책들 중 하나이다. 그 작품들을 먼저 읽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 <국경을 넘어>먼저 읽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과 동생 보이드와 살고 있는 소년 빌리. 소년은 마을에서 소가 자꾸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자 아버지와 함께 덫을 놓게 된다. 어느 날 기대하지 않던 차에 덫에 걸린 늑대를 발견한 빌리는 늑대가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넘은 국경에서 늑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늑대는 개들과 싸우며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새끼를 밴 채로 살기위해 개들과 싸우는 늑대를 차마 볼 수 없었던 빌리는 총으로 늑대를 쏘아 죽인다.
그렇게 늑대와 새끼들을 묻고 돌아온 집에는 큰 비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도둑들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보이드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 소년 두 명은 부모님을 쏘아죽이고 말을 훔쳐간 자들을 찾아 다시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그 긴 여정 속에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소년들은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빌리가 사로잡은 늑대를 돌려보내기 위해 국경을 넘는 것이 1부, 빌리가 동생 보이드와 말을 찾기 위해 다시 국경을 넘는 것이 2부 격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예전에 본 영화 <늑대 개>가 생각나기도 했거니와 빌리가 굳이 늑대를 국경 너머로 보내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 쉬이 이해가지가 않았다. 그게 늑대를 더 사지에 몰았을 수도 있는데(지나는 사람들마다 봤으니) 그의 선택을 잘 모르겠다.
얼마 후 동쪽이 잿빛이 되었고, 얼마 후 하느님이 창조한 올바른 태양이 다시 한 번 떠올라 아무런 차별 없이 만물을 비추었다. p.561
이 문장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책의 궁극적인 주제가 아니었을까. 부모님의 죽음, 동생이 그를 떠나고 그 후 알게 된 동생의 죽음까지. 소년은 많은 절망을 맛보고 슬퍼하지만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른다. 또 태양은 감춰진 곳조차 차별 없이 구석구석 내리쬔다. 그렇게 계속 되는 삶만이 소년을 구원하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경 3부작은 연결 되어 있다고 한다. 가운데 먼저 읽었으니 앞 뒤편이 모두 이 책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동안 코맥 매카시의 문장에 압도되어 힘들었으니 그의 다른 작품은 또다시 뒤로 미뤄야겠다. 지금은 우선 이 메마름에 단물이 되어 줄 유쾌한 작품들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