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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스캔들
박은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드라마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오래전 만화 <바람의 나라>를 보았을 때 처음 삼국에 흥미를 느낀 나는 삼국의 역사를 알고자 서점으로 달려갔지만 문고판 크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진 걸 느낀다. 하나의 사극이 방영 되면 그에 관한 책들이 서점가를 장악한다. 독자로서는 큰 즐거움이다. 예전에는 구할 수 없던 전문적인 책들, 그것도 한 분야만을 다룬 세세한 역사서들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 스캔들>은 신라의 성풍속도에 관한 책이다. 많은 부분을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 참고했다 하니 요즘 절찬리의 방영중인 <선덕여왕>의 영향이 큰 듯하다. <선덕여왕>의 팜므파탈인 미실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법흥왕부터 문무왕까지의 신라왕실을 중심으로 왕후, 화랑, 색공지신들의 자유로운 성생활과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12가지 이야기로 담아놓았다.
신국에는 신국의 道가 있다.
원래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가 재밌는 법이다. 야사[野史]는 우리에게 역사 속 감춰진 뒷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그 이야기들 속엔 왕도 왕후도 용맹한 군인도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다. 사랑의 감정도 있고 질투도 하고 실수도 하기에 옛 인물들이지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은 잘 몰랐던 신라의 가계도라든가 왕실 주변인물을 허물없이 드러내 보인다.
사실 고대가 더 성에 대해 자유로웠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지 몰랐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성골이라는 왕족의 피와 골품제를 지켜나가기 위해 근친혼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알긴 알았지만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을 읽고 나니 특히 놀랐다. 물론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형사취수제와 약간의 근친혼이 이루어졌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근친혼이 남아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신라의 고립된 지역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신라의 사람들은 이 풍속을 부끄럽거나 야만적이라 생각하지 않고 예부터 내려온 고유의 풍습이라 생각했다 한다. 왕족과 권력을 가진 신하들이 제 피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피의 끈으로 묶은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럽의 왕조들도 많은 근친혼들을 했으니 말이다.
또 신라에는 색을 숭상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아녀자의 슬픔을 색으로 위로하거나 미실에게 흠뻑 빠진 진흥왕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진흥왕의 빈첩 보명에게 진흥왕의 아들 동륜이 색으로써 기쁨을 주려한 것도 좋은 예이다. 그것은 남녀 간의 교합이 그들의 최고의 즐거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솔직한 지 신라를 폐쇄적이고 매력 없는 나라라 생각했던 내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의 기준으로썬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이 많이 등장한다. 남매간의 결혼이나 아버지와 아들에게 같이 색을 바친 미실, 어머니와 딸이 한 왕을 모신 경우도 있고 남편이나 아내가 있어도 왕의 명이 있다면 신분 높은 자에게 색을 바쳐야 한 경우도 있었다. 신라에서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자에게 색을 바치는 것이 당연시 여겼기 때문에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분을 상승시키기에 좋은 기회였다고 하니 색은 정치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을 거라 생각된다. 색을 ‘천한 것’이 아닌 道로써 숭상한 신라가 결국은 삼국통일을 하고 천년왕국을 이룩했으니 이 끈끈한 유대감에 삼국통일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이와 같이 색으로 채워진 열두 가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신라의 모습들을 알려준다. 또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 되어 있어 등장인물들을 드라마 인물로 바꾸어 보니 몰입도 더 잘되었다. 다만 드라마와 책 사이의 차이도 종종 등장해서 드라마는 편집하기 나름, 역사는 각색하기 나름(?)이라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신라를 알려진 그대로만 봐왔던 사람이나 신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