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개, 고양이, 앵무새, 원숭이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물들은 많다. 가축의 역사로 보면 신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먼저 가축화 된 동물은 개였고 기원 전 8천 년 전엔 돼지도 가축화 되었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돼지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었지만 여러 편견에 휩싸인 동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돼지는 식용으로 생각하며 게으르고 욕심 많고 지저분한 동물 일순위로 뽑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편견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돼지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사랑스러운 돼지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저명한 지휘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는 대개 크리스로 불린다. 크리스는 어미에게서 새끼돼지가 10마리 이상 태어나면 도태된다는 ‘무녀리’ 중 하나였다. 암컷 돼지는 젖꼭지가 12개이지만 젖이 잘 나오는 젖꼭지는 10개  뿐이라 10마리 이상 태어나면 도태되는 새끼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녀리’라고 한다. ‘무녀리’는 덩치가 작고 약하지만 존재 자체가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야생의 본능이 남아 있는 어미돼지는 물어죽이기도 한단다. 크리스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는 슈즈 박스에 담겨 작가의 품에 안겼다. 살아날 확률은 적었다. 그리고 작가는 가혹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작가는 병든 아버지와 크리스를 동일시했고 둘 다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의 희망이 다른 희망으로 이어지듯이.

어렸을 적 돼지 사육장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갔다 만난 마을 분의 집이었는데 수컷 돼지 한 마리와 암컷 돼지 10마리를 키우고 계셨다. 분홍 돼지들이 끊임없이 꿀꿀거리고 출산을 앞 둔 암컷 돼지가 누워 있는 광경은 내 눈에 정말 멋져 보였다.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지만 그 돼지들은 식용으로 보이지 않고 귀여운 동물이자 친구로만 보였다. 난 새끼가 태어나면 한 마리 달라고 졸랐고 아저씨는 그러마하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당연하게도 지켜지지 않았다. 자라고 난 뒤엔 난 그 즐거웠던 기억을 저편에 묻고 이 <돼지의 추억>을 보기 전까지 꺼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의 표지를 본 순간 기억은 되살아났고 책은 나를 멋진 돼지의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사랑스러운 돼지 크리스가 잔뜩 나온다. 크리스는 헛간을 탈출해 이웃의 상추밭에 들어가거나 도로를 질주하는 말썽꾸러기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면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돼지가 본능에 충실한 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는 게 작가의 지론이다. 행복과 소망이 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스의 매력적인 모습에 이끌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 크리스를 찾아오면서 그에게도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나도 점점 크리스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크리스가 기쁠 때 낸다는 낮은 음역의 꿀꿀 소리도 듣고 싶었고 돼지마사지로 크리스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또 돼지고원에서 크리스와 함께 뒹굴 거리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크리스에게 열중했다. 돼지가 똑똑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크리스는 그 이상이었다. 그는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않고 열심히 가꾼 정원을 망치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사람마다 반기는 꿀꿀 소리가 다 달랐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그린 책은 항상 끝이 슬프다. 이 책도 크리스의 죽음을 전했다. 14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직접 동물을 키운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는 것을.
크리스는 뉴햄프셔의 스타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많은 친구들이 생전의 크리스에 대한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책은 크리스의 이야기 뿐 아니라 동물학자인 작가 개인의 이야기와 이웃 친구들, 가족이야기, 일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이는 작가의 동물에 대한 관점과 주변 상황, 가족의 갈등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서 크리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도 이야기 한다. 또 작가는 동물들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 용서의 마음을 배우기도 한다. 다른 종[種]을 이해한다는 것, 그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큰 연관이 있다. 작가는 그 마음을 배웠고 글을 씀으로써 독자들에게도 그 마음을 가르쳐 준다.

나에게도 교감을 나누는 동물이 있다. 이 강아지는 나에게 온지 8년째이고 우리는 그 세월만큼 서로를 알아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또 재밌어 하는 일들을 안다. 지금도 옆에서 이불을 꺼내 달라고 조르는 강아지가 사랑스럽다. (절대 바닥에서 자지 않는다.) 작가가 크리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듯이 나도 하루하루 배움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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