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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다 ㅣ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 딕슨 카의 작품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한 적이 있었다.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를 꼽으라면 항상 이름을 올리면서도 우리나라에선 그의 명성에 비해 번역된 책이 소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작가별 장르소설 시리즈가 출간 되면서 존 딕슨 카의 책들도 한 권, 두 권 출간 되고 있다. 감질 맛 나는 시간이지만 장르문학의 척박한 땅이라는 우리나라에 카의 책을 출간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불가능한 범죄의 달인이자 기발한 트릭을 구사하는 카의 책들은 어느 면으로나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데 더군다나 이번에 읽은 『밤에 걷다』는 밀실 미스터리의 천재의 등단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데뷔작이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파리 경시청 총감인 방코랭에게 라울 드 살리니 공작이 개인적인 보호를 요청한다. 만능 스포츠맨에 긍지 높은 귀족인 살리니 공작이 이렇게 겁에 질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살리니 공작과 결혼 할 여인의 전 남편 때문이었다. 아내를 죽일 뻔 했던 미치광이 전 남편 로랑은 그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지만 전 아내의 약혼소식을 듣고 탈출하여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형 수술을 받고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해 살리니 공작과 그의 아내가 될 여인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살리니 공작은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그것도 방코랭과 부하가 문 두 개를 지키고 있던 카드룸에서. 범인은 빠져 나간 흔적이 없고 시체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완벽한 밀실의 현장에서 방코랭은 과연 사건을 해결 할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로랑은 과연 어떤 얼굴로 성형을 하고 공작과 부인의 주위를 맴돈 것일까?
사실 여기 까지 봤을 때 얼마 전 읽은 김내성의 『마인』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미모의 여인과 결혼하려는 사내에게 여인과 정을 나눴던 이가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과 결국 결혼을 마치고 사내가 살해당하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 되면서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두 작품 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니 뭐가 재밌고 뭐가 덜 재밌다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지만 둘을 비교해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밤에 걷다』의 으스스한 점은 잔인한 살인방법이나 시체의 기이함에도 있겠지만 읽을수록 머리에서 딱딱한 고성의 이미지와 어두운 파리의 밤거리가 연상된다는데 있지 않나 싶었다. 카가 미국인이지만 책에 귀족이나 고성, 유럽의 이미지들을 많이 차용하기 때문인지 그 당시 유럽의 암울함이 그대로 책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프랑스 단두대라든지 살리니 공작이 살고 있던 성에 대한 묘사가 으스스한 분위기에 한 몫 하고 있다.
비록 사건의 해결이 극적이진 않았지만 카의 데뷔작이라 마냥 좋다. 하지만 처음 그의 책을 보는 독자라면『밤에 걷다』가 만족스러우리라 생각된다. 앞으로도 계속 출간 될 존 딕슨 카 시리즈가 기대된다.
+)사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코랭 총감이 매력 있는 탐정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냉정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역시 탐정은 날고뛰며 모험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트릭을 물 흐르듯 해결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방코랭이 등장하는 소설은 하나가 더 있는데 『해골성』이라고 한다. 만약 방코랭의 매력에 빠진 독자가 있다면 읽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