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견딜 수 없어! - 아지즈 네신의 유쾌한 세상 비틀기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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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터키 문학은 생소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2006년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터키 문학은 더 이상 변방의 문학이 아니었다. 동서양이 교묘히 섞인 독특한 문화와 터키의 현실을 그린 문학들이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터키에는 오르한 파묵 뿐 아니라 국보급 작가들이 더 있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아즈지 네신이다. 거침없는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아즈지 네신은 터키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그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해온 정부를 비판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내란선동이나 좌익활동이란 죄목으로 250번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그의 모습은 활동하는 지식인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아즈지 네신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읽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에서 그의 명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책은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의 형식이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는데 그 중 제일 마음에 남았던 건 ‘행복한 고양이’ 와 ‘우리 집’ 이었다. ‘행복한 고양이’ 는 사람들이 남의 말을 따라 자기 주위에 원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내용인데 그들이 그 원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금지’ 됐기 때문이었다. 자유를 원하지만 보이지 않는 구속을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인 듯 했다. 무관심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정책에 대해 찬성도 비판도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상황을 바꿔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변하기가 힘들다.

‘우리 집’ 은 읽으면서 힘없는 나라가 떠올랐다. 조상들이 물려준 큰 대지와 깨끗한 물, 하지만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는 나라, 그 곳에 힘을 가진 강대국들이 몰려오면서 그 나라를 개발하고 돈을 번다. 그리고 그 개발이 힘없는 나라에게 꼭 필요한 산업이라며 꼬여 내곤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요구한다. 여기서 대한제국 말기에 우리나라에 일어난 열강들의 이권침탈을 떠올렸다면 너무 비약인 걸까? (물론 우리나라는 크지 않고 자원도 많지 않았지만) 돈 되는 산업을 찾아 국토를 유린한 열강들과 ‘우리 집’에서 나온 세입자들은 아무래도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나 군부독재시절에 소신을 갖고 현실을 비판한 글을 쓴 작가들이 많이 있다. 작품에 대한 검열은 당연하고 자신, 그리고 가족에게 까지 손을 뻗는 세력들을 견디며 저항 글을 써온 작가들을 난 항상 존경 했었다. 아즈지 네신도 그렇다.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는 터키에서 아직 오르한 파묵도 ‘자국비판’을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는데 그 전엔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하니 아즈지 네신 역시 존경스러웠다.

상황은 왜 이렇게 반복 되는 것인지. 억압의 역사는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건 억압하는 자들도 시기와 장소를 막론하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시대에 몇 십 년 전 다른 나라의 작가가 쓴 글이 이렇게 마음에 스며들 줄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은 웃음을 잃지 말아야 산다. 그것이 이 세상을 향한 비웃음 일지라도. 그래서 아즈지 네신의 한 줌 유머가 더 소중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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