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과의 악수 - 문예시선
정묵훈 지음 / 21문예정신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시를 읽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학창 시절 시를 분해하여 작가의 의도나 사상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훈련’을 받았지만 그건 의도된 훈련이었다. 다 자라서 읽는 시는 가슴으로 느꼈지만 시의 주제나 작가가 배치해 놓은 함축적인 어휘의 뜻을 혼자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불편과의 악수>가 눈에 띈 건 그 붉은 색 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술과 음악 등 문화 교양지나 전문지에 다양한 글을 기고 한 작가의 이력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사로잡은 건 제목이었다. <불편과의 악수> 라는 제목이 이유 없이 내 눈을 이끌었다.   

(처음 시집을 펴자 몇 개의 미술 작품이 실려 있었다. 그림과 이어진 시라 제일 먼저 눈이 갔고 7부로 나뉜 시들의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

시는 역시나 어려웠다. 형식을 파괴하는 시의 나열이 그러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시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가 내 자신의 상처와 마주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칼날 같은 언어에 베이면서도 끝까지 책을 잡고 화자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보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딘가 있을 희망의 한 조각을 찾으려 하려 했을지도. 

참, 아픈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을 가장하지 못한다. 또 상처 받은 사람들만이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에 대해 잘 쓰는 법이다. 작가는 ‘가난한 식탁’ 에서는 지리멸렬한 가난에 대해 노래하고 ‘피에 취한 말의 산책’ 과 ‘헐크’ 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에 희생당하는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엔 체념도 맞서 싸울 용기도 매한가지라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어딘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호소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녀가 건네준 것이 보름달이었다고/ 입 안 가득 베어 물고 있는 건 아내의 달이었다고/ 혀를 보드랍고도 따뜻하게 감싸는/ 달물/ 뚝,/ 뚝,//-

석 달째 일을 못하고 있는 남편, 집 나간 아들, 팔 개월째 밀린 집세. 지긋지긋한 일상이겠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쥐어 준 설렁탕 한 사발은 그 현실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온기인 것이다.

시는 옷장에 넣어 둔 옷들의 화려했던 옛 외출을 되뇌고 있고, 4인용 식탁엔 사람 대신 온기 없는 꽃병만 놓여 있지만 스스로 고독을 빛나게 하는 법을 노래한다. 또 스스로 구원하고 이제라도 <자기와의 포옹>처럼 수신해보라고도 한다.

불편한 현실과 삶의 무게를 짓누르는 권태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미디어가 발달 하면서 기계를 통한 거리는 가까워 졌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이렇게 먼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선은 나와 나 자신과의 불편한 동거를 허락해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아껴야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해의 손길을 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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