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떴다
김이은 지음 / 민음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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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은 이 책에서 써야 하는 말이 아닐까? 처음엔 따뜻한 색깔의 표지만 눈에 들어왔다. 책 내용만큼이나 예쁜 표지를 욕심내는 나에게 『코끼리가 떴다』의 표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동화적인 색감에 귀여운 코끼리가 도시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그림.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표지와는 전혀 다른 메마른 문체와 난해한 글에 난 책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난 원래 단편 소설을 읽을 때 순서대로 읽지 않는다. 넘겨보다가 눈이 멎는 곳부터 읽어 나간다. 이 책에선 우선 표제작인 ‘코끼리가 떴다’부터 읽었다. 몇 년 전 일어났던 코끼리 집단 탈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동물원과 같이 창살에 갇힌 도시를 그리고 있다.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코끼리의 말이 어딘가 와 닿았다. 답답한 도시에서 어딘가로 떠나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과 코끼리의 공통점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소설에서 지극히 현실 적인 부분과 환상적인 부분을 넘나든다. 가령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 에서는 작년에 일어난 광화문 촛불운동을 담고 있고 ‘지진의 시대’ 에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나온다. 또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 에서는 숭례문 화재사건이 나오는데 시대 배경이 제각각이지만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주인공들이 모두 소외되거나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외계인, 달리다’ 의 여자 주인공은 항상 가면을 쓰고 있다. 자신은 쓴 기억이 없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본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 가면은 세상과 여자 자신을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쇼맨’ 은 유흥가에서 화려하게 살았지만 이젠 빠져 나올 수 없이 탑에 갇힌 남자를 다루고 있고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 에선 유부남과 살림을 차리고도 또 아이를 가진 사람과 바람이 나는 여자에 대해 얘기 하고 있다. 가끔 주인공들이 답답해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었는데 그들에게 희망을 발견 할 수 없는 편이 많아 더 그랬던 것 같다.

환상적인 부분은 2년 동안 아기가 뱃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과 몸이 주머니에 들어 갈 정도로 작아진 이야기, 다른 사람들을 치유 할수록 가슴이 커지는 빈의 이야기 등이 있었다. 가끔 등장하는 장치가 이해할 수 없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정말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답답하고 끔찍한 현실에 질려 책을 놨다가도 다음 순간 책을 집어 들게 하고 마는 마력을 지닌 책이기도 했다.

또 책에 실려 있는 기괴한 사진들과 건조한 문체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다가선 탓일까? 책을 읽으며 책이 주는 정신적 폭력에 신음한 기억은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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