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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강렬한 제목의 책 『내 심장을 쏴라』는 처음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꼬리표로 먼저 내게 다가왔다. 표지의 그로데스크함( 한 남자의 머리가 180도 돌아가 있다.)과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희한한 이야기일까 하고 제멋대로 상상했었다. 내 상상은 조금은 맞았고 많이 틀렸다.
사실 정신병원이라는 소재는 영화나 책에서 여러 번 다룬, 어떻게 말하면 흔한 소재다. 여러 번 다뤄왔기에 진부하게 흐를 수도 있는 소재를 작가는 매력적인 인물들과 기발한 표현력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공감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담고서 말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단지 집에 가고 싶을 뿐’ 이었던 이수명은 성폭행미수죄라는 죄명을 안고 [수리 희망병원]에 끌려가게 된다. 그날 그곳에서 수명은 첫 번째로 탈출 시도를 하던 류승민을 만나게 된다. 같은 방에 수감되면서 둘은 병원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신뢰와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는 승민의 탈출 시도로 수명은 속에 갇혀 있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점차 가지게 되는데...
예전엔 정신병원이 정말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가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행방불명자가 정신병원에서 발견되는 해프닝도 있고 해서 그 체계를 백퍼센트 믿지는 못하게 됐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도 말했듯이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지만 우리에겐 그것을 확신할 증거가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승민도 다른 이유로 [수리 희망병원]에 오게 됐다. 늦기 전에 이곳에서 꼭 탈출해야 한다는 승민. 하지만 다른 이해관계로 승민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는 병원에 화도 났고 답답함도 느꼈다. 병원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비슷한 듯하다. 틀에 맞춘 듯, 정상적이고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되는 사회. 거기서 도태된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세상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상적’ 인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비정상’ 적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도 그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도달하지 않고 흩어져 버린다. 세상도 [수리 희망병원]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승민과 변해가는 수명처럼.
병원에서의 수명과 승민은 덤 앤 더머같은 존재다. 같은 날 입원 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둘이기에 더 흥미로웠다. 덤이 있어서 더머가 있고 더머가 있어 덤이 있는 것처럼 수명과 승민도 같은 곳에 있었기에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수명이 자신의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올 계기가 되어준 건 승민이지만 승민도 수명이 없었더라면 그 눈을 하고서 탈출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작가는 ‘운명이 내 삶을 침몰 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작가는 이 책을 씀으로써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냈을까?
또 실제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일주일 동안 정신병원에 출퇴근 형식으로 머물며 취재를 했다고 하는데 그 열정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류가 이 책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수명이 세상에 발을 딛게 된 것과 승민의 비행을 축하하고 싶다. 그들은 시작할 때 끝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선택만이 중요했을 뿐.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p.338
책에서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명과 승민을 위해 건배! 그리고 분투하는 모든 청춘들을 위해 건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