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완벽한 하루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어떤 하루라야 오늘 하루는 완벽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연이어 좋은 일이 생기는 하루? 아님 버린 시간 없이 알차게 보냈다며 만족해하는 하루? 물론 이런 날이 많지는 않다만.

『어느 완벽한 하루』는 제목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느꼈듯이 이 책에 나온 등장인물들의 하루는 참 힘들고 그들은 과거부터 계속되어온 일들로 고통 받는다. 작가도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지은 제목인 듯하다.

작가 멜라니아 마추코의 이름은 이 책으로 인해 알게 됐다. 『어느 완벽한 하루』는 멜라니아 마추코의 책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모국 이탈리아에서 많은 상을 받은 작가고 이 책이 다섯 번째 책이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영향력 있고 글 잘 쓰는 작가를 지금 알았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까웠지만 이것을 계기로 그녀의 책들을 더 소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완벽 하지 않은 두 가족의 이야기

책은 총성을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두 명의 경찰관이 카를로 알베르토 가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경찰이 총성이 들렸다는 27호의 벨을 누르고 기다리자 안에서는 무엇인가 구분할 수 없는 웅성거림이 흘러나온다. 어찌 들으면 남자의 노랫소리 같기도 한 흥얼거림.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등장인물들의 24시간으로 돌아간다. 의처증에다 폭력적인 남편이었던 안토니오와 가난과 싸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안토니오의 아내였던 엠마, 그들의 아이들이자 사춘기에 접어든 딸 발렌티나와 말더듬이 아들 케빈, 그리고 안토니오가 경호하는 국회의원 엔리오와 그의 두 번째 아내 마야, 그리고 그들의 배다른 남매인 무정부주의자 아리스와 케빈을 좋아하는 카밀라. 이야기의 두 축은 이 두 가족에서 뻗어나간다.
또 그 외에 중요한 인물로 발렌티나의 국어선생님인 사샤까지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서로 엮이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2001년 5월 4일 하루를 만들어 나간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과정 없이 보여준 갑작스러운 결말은 그것에 독자를 철저히 개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독자로 하여금 끔찍한 폭력의 현장에 눈을 돌릴 수 없이 무기력하게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결말이 열려 있어 미약한 숨을 틔워놨다지만 그때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갖고 있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과거부터 일어난 일들이 오늘의 하루를 만들었듯이 그 미약한 숨이 내일의 희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책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인물은 안토니오 부오노코레였다. 안토니오는 그에 대해 다른 등장인물이 내리는 평가와 독자들이 내리는 평가가 극명히 다를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는 훌륭한 경찰이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이며 엘리오에게선 수호천사라고 여겨지기까지 하지만 다 알고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뻔뻔하기가 그지없었다. 또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한 인물이라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까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책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가 작가가 로마라는 도시에 대해 쓴 글이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모국의 수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것이 로마에 대한 염증이라기 보단 애증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엉망이지만 그래도 사랑 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이 드러난 것 같았는데 그것이 로마에 대해 편견을 심어주기보다 로마도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사람 사는 곳이 구나란 생각이 들게 했다.

책날개 부분엔 작가의 책 중 이탈리아 최고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을 받은 책 『인생』이 근간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곧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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