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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평점 :

책을 읽는 데 꼬박 2주 정도가 걸렸다. 우선 예상을 뛰어 넘은 우량한 몸집이라 갖고 다니면서 읽을 수가 없었기도 하고 방대한 지식에 압도되어 하루에 많은 페이지를 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집으면 어디서나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이 책만은 예외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을 보며 내내 흥분해 있었는데 그건 내가 알고자 했던 지식들을 이 책이 많은 부분 충족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공들인 2주간 오늘은 또 어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될지 궁금해 했고 또 즐거웠었다.
이 책의 작가 빌 브라이슨은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 라고 평가받는다. 난 이 책 전에 다른 책으로 그의 글을 접해본 적이 있었는데 미국의 숨겨진 이야기라던가 부조리를 재밌게 설명해 놓은 글이었다. 워낙 재밌게 본 터라 [발칙한 영어 산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사실 제목보다는 부제로 쓰여 있던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모든 역사란 글이 내 관심을 더 끌었었지만.
내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안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영어가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어 알파벳과 몇 개의 단어를 외우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고작이었을 때였다. 그럴 때에 영어 선생님이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발음의 차이를 몇 개 소개해 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세계사에 대한 기본이 잡혀 있지 않기도 한 때라 왜 두 영어의 발음이 다른 건지 이해는 잘 못했었다. 특히 그때는 미국이 모국인 영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난 독립전쟁과 흑인노예의 해방과 관련 있는 남북전쟁, 서부영화에서 본 총을 쏘는 카우보이와 인디언을 학살한 개척인들 등 그 모든 게 한 나라의 일이라고 조합하기가 어려웠었다.
이 책은 아직도 미국역사에 대해 힘겨워 하던 나에게 처음 pilgrim들이 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가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의 전반적인 역사와 미국식 영어단어의 유래와 만든 사람, 단어가 등장하는 배경 등에 대해 한 권으로 자세히 설명해준 멋진 책이다.
책에 나온 일화들을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뒤집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표 없는 과세는 폭정이다”라는 말로 영국을 겨냥한 제임스 오티스가 사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만약 그 말을 했다 해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을 거라고 한 부분이다. 40여년이 지나고 나서야 제이슨 오티스가 그 말을 한 사람이라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의 미국에 대한 세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 영국인의 50분의 일인 6펜스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영국인들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음식을 먹었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 미국의 독립전쟁은 자유를 찾기 위한다기 보다 이 모든 생활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만화에서 나오는 많은 단어들이 미국의 영어가 됐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유명 만화가 T.A. 테드 도건이란 사람이 yes man(윗사람의 말에 항상 동조하는 사람), you said it(바로 그거야) 등을 만들고 [뽀빠이]가 ‘goon(불량배)',jeep(지프차)란 말을 유행시킨 것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이 갑자기 톡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 문장이 얼마나 재치 있던지 미국식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책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도 놀랍지만 이 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찾고 읽었을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중에라도 다른 곳에서 미국의 역사나 단어의 유래를 보게 되더라도 이 책을 먼저 펼쳐 볼 것 같다. 읽는 내내 지식에 대한 욕구를 느낀 만큼 앞으로도 재미와 지적 탐구 모두 충족 할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접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