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난 스타벅스 메뉴를 잘 외우지 못한다. 모임장소로 수차례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건 오로지 크림 뺀 카페모카 뿐이다. 그것도 사이즈 종류를 알지 못해서 언제나 중간사이즈로 주세요란 말도 빼먹지 않고 한다. 그래서 처음 땡큐! 스타벅스란 책 이름을 들었을 땐 스타벅스에 대한 경제 책이거나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대충 읽어본 줄거리가 한 잘나가던 뉴요커가 직업을 잃으면서 인생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다가 뜻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다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내용이었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유형의 책이었다. 참새처럼 방앗간을 기웃기웃 거린 끝에 난 책을 손에 쥐고는 그 시간부터 바로 책에 빠져 들어갔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마이클 게이츠 길.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큰 광고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하던 마이클 게이츠 길. 그는 자신의 회사에 헌신하느라 바쁜 나머지 네 아이들의 성장과정도 지켜보지 못하고 그 위안을 돈을 많이 벌어 아이들 대학등록금을 보태거나 돈에 모자람이 없는 생활에서 찾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위안도 회사에서 해고당하면서 사라지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마이클은 바람을 펴 아이까지 만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부인과 이혼한 뒤로 변변한 일거리도 없어 언제 길거리에 나앉을지 알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체념하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던 바로 그때 마이클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바로 스타벅스의 직원인 크리스털이 마이클을 보고 스타벅스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본 것, 마이클은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네, 일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입에서 나온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잘나가던 엘리트였던 내가 커피 전문점에? 그것도 까마득히 어린 아가씨를 상사로 두면서? 하지만 동시에 마이클은 그 일자리를 간절히 바라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귀에 종양이 생겼지만 직업이 없어 의료보험이 없어진 그에게 스타벅스는 그야말로 꿈의 일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였던 대기업보다 따뜻하고 서로 존중해주는 동료들이 있는 스타벅스에서 더 행복을 느꼈다. 비교가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또 이제껏 청소를 해본 적이 없음에도 매장 바닥에 때를 벗기는 일과 화장실 변기 안쪽에 오물을 걷어내는 일에 뿌듯해 했다. 이전에 하찮게 여기고 심지어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치욕스럽다고 여겼던 일이 이제는 제일 자신 있는 일이라고 내세울 정도가 된 것이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엘리트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실 세상에서 누구에게는 할 수 있고 누구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구분돼 있진 않은데 노동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가볍게 여기게 된 나부터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반성했다.
그리고 막연히만 느껴졌던 내 노년에 대해 그려봤다. 마이클은 64세가 되어도 스타벅스같은 서비스 업종에서 일 할 정도로 정력적인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남아 있을지 말이다. 요즘 수명이 길어져 은퇴 후에도 20여 년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나이가 들어도 꼭 일을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 같다. 참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 책이다.


이 책은 곧 구스 반 산트 감독과 톰 행크스의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할리우드 영화와 왠지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영화로 나온다니 참 기분 좋을 일이다. 거기다 믿을 만한 감독과 주연이니 영화도 기대해 볼만 하다.


책에 쓰인 스무 살이 아니래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말은 스무 살과 한참 멀어진 나에게도 다시 시작할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을 최고의 낙천가이자 바리스타인 마이클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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