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퀴즈 100 세트 - 전6권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학습지)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을 읽고 옛날에 임금님이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임금이 한강을 건넌 방법 

한강에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녔다. 하지만 왕이 행차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배를 타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만든 다리가 바로 배다리 랍니다.  

배다리는 수십 척 또는 수백 척의 배를 이어서, 그 위로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이다. 배다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리를 놓는 자리였다. 물살이 너무 센 곳에 배들을 띄우면 쉽게 떠내려가고, 강폭이 너무 넓은 곳은 다리를 놓기가 힘들었다.  

1795년에 정조 임금은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기념해 아버지의 묘인 융릉으로 행차를 하셨다. 2000명의 사람과 1400마리의 말이 뒤따른 어마어마한 규모였다.이 때에는 지금의 한강대교 자리에 배다리를 놓았다. 이 곳은 강폭이 340미터인데, 9미터나 되는 커다란 배 38척을 가로로 놓아 연결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런 배다리를 만드는 데 보통 15일이 넘게 걸렸다고한다.  

대규모 임시 다리를 놓는 일이 생기자, 나라에서는 이 일을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했다. 이 관청의 이름은 주교사로 배로 다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학교에도 방학이 있었을까? 

고려 시대에는 십이도라는 12개의 사학이 있었다. 십이도에서는 더운 여름철에 더위를 이기는 피서 교육 또는 계절 학습을 했다. 산 속의 절을 빌려 시를 읊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종친들이 모여 공부하던 종학이라는 학교가 있었다. 종학에는 매년 6월 초부터 7월말까지 여름 방학, 11월부터 12월까지는 겨울방학이었다.  

오늘날의 초등 학교와 같은 서당에서는 여름이 되면 주로 시를 읽고 짓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한편 조선 시대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성균관에는 특별한 방학이라고 할 만한 휴식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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