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전 판화와 만난 우리 고전 2
김기민 지음, 이동진 그림 / 해와나무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늘과 땅이 처음 생기고 이 세상에 온갖 동식물이 퍼졌다. 그 중에서도 사람은 가장 뛰어난 존재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짐승은 흔하디흔한 탓에 점점 더 하찮게 여겨졌다. 짐승은 가짓수만 해도 육백 가지가 넘엇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이 삼백 가지이고,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이 삼백 가지나 되었다. 수많은 날짐승 중에는 꿩이라는 새가 있었다. 꿩은 닭과 크기나 모습이 비슷하지만, 잘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닭보다 알록달록한 검은 점도 많고, 꼬리가 쭉 뻗어 늘씬하고 훨신 맵시가 있었다. 장끼라고 부르는 수꿩은 오색 빛깔의 깃털 옷을 입고 있었다. 오색 빛깔의 몸은 수꿩의 미끈한 생김새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그래서 수꿩을 화려하게 생긴 짐승이라는 뜻으로 화충이라고도 불렀다.  

수꿩에 비하면 암꿩인 까투리는 수수하게 생겼다. 꼬리는 길고 맵시 있지만, 수꿩보다 크기도 작고 갈색 몸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을 뿐이다. 꿩은 다른 산새와 들짐승처럼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다. 깊은 산 속 시냇가에 휘어질 듯 자란 소나무 위에 보금자리를 짓고 살았다. 하지만 꿩은 때때로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가꾼 논밭으로 내려와 그곳에 흩어진 곡식을 주워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꿩이 마을로 내려올 때는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관청 포수와 사냥개의 눈에 띄어 잡혀갔기 때문이다. 꿩고기는 삼정승과 육조 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원님이나 서울의 부잣집 노인에 이르기까지 좋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게다가 꿩의 깃털은 쓸모가 아주 많았다. 좋은 깃을 골라 군대를 지휘하는 대장의 깃발에 꽂아 장식하는 가 하면, 심지어 가게의 먼지떨이로도 인가가 높았다. 이러니 너도나도 꿩을 잡지 못해 안달했다. 그렇다고 해서 꿩에게 산 속의 꼭 안전한 것만도 아니었다. 어쩌다 경치 구경이라도 하려고 구름이 넘나드는 산봉우리로 허위허위 올라가면 여기저기서 꿩을 노리는 통에 마음놓고 구경을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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