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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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30대 초반 문학에 심취했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에 해마다 등단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들을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쉬이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 때 그 때 작품으로 만나지 못한  연유도 있지만, 문체와 글이 주는 분위기가 다들 고만고만해서 기억에 각인되지 못한 까닭도 있다.

<7년의 밤> 저자인 정유정은 앞으로 해도 정유정, 뒤로 해도 정유정이어서 기억이 쉽게 되기도 했지만, 비록 그다지 매력있어하지는 않지만 세계문학상 수상작<내 심장을 쏴라>로 만났을 때, 여성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느껴지지 않아 기억에 남았었다.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내 심장을 쏴라>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평이한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배경의 참신성으로 인해 저자명을 기억해 두리라 맘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거대한 상상력, 역동적 서사, 강렬한 메시지!

띠지에 아로새겨진 문구가 엄청날 정도로 강렬해서 누군가 하고 들여다 봤더니 기억세포 한 쪽에 아로새겨놓았던 바로 그 정유정 작가였다.

그러나, 엄청난 문구에 대한 부담감(기대에 못 미칠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평소에 스릴러나 서스펜스, 미스테리 문학에 대해 경원시했던 마음은 잠시 <7년의 밤>을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여러 호평들을 보며 뒤늦게 <7년의 밤>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고, 이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참 여러번 후회를 할 뻔 했다.

한번 놓쳐버린 책은 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다시 되짚어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독서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뒷장에 몇 줄의 글로 520페이지에 달하는 서스펜스 작품에 대한 내용을 너무도 훌륭히 압축해 놓고 있다.

"뒤돌아 보지 않는 힘있는 문장, 압도적인 서사, 생생한 리얼리티,

그 위에 세워진 묵직하고 매혹적인 세계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7년의 밤 동안 전직프로야구선수였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서원에게 일어난 슬프고도 아름다운,  

신비로우면서도 처절한 이야기를 정교하고 치밀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리얼리티와  저자의 압도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놓은 소설로서,

<7년의 밤>은 그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힘이 좋은 매혹적인 소설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나의 오감의 감촉이 때때로 주인에게조차 윤색 변형된 모습으로 각인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앞에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7년의 밤>은 크게 지키려는 자와 빼앗고자 하는 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사실과 진실 사이의 이면, 선과 악,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삶에 대한 의지 등에 관한 것들을 정교한 짜임으로 엮어내어 저자만의 서사성을 완성해내고 있다.

독서 후의 느낌은 요 근래에 결코 만나볼 수 없었던 아주 신선하고도 통쾌한 기분이었다.

세령호를 둘러싼 안개 자욱한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서스펜스 작품답게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악착같이 중산층의 삶에 진입하고자 갖은 방법을 다하는 강은주가 가진 캐릭터의 힘이 일상의 리얼리티를 보여줌으로써 <7년의 밤>을 소설이 아닌 현실의 사건으로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저자가 여자였기에 강은주라는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지 않았나 여겨지고, 잠수부의 세계나 밤호수 주변풍경, 호수밑바닥 풍경에 대한 묘사(마치 눈앞에 환영처럼 보일 것만 같은 세밀한)는 저자가 발로 뛰는 작가라는 것을 인증하고 있으며, 이렇듯 작품에서 열정과 땀이 느껴지니 독자는 읽는 즐거움이 더 배가될 수 밖에 없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당신이라면 저주받은 생을 어떤 타구로 받아칠 것인가'

최현수의 상황이 마치 나의 상황인 양, 마음조리고 가슴아파했던 시간, 위 질문을 잠시나마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생각에 잠긴다. 정유정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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