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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평점 :
요즘 일본의 지진과 해일, 그리고 원전사태를 보면서 또한 이어지는 일본의 방사능 대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열정이 넘치는 우리민족은 그야말로 재앙수준의 고통을 당한 선린우방(?)을 돕고자 팔을 걷어부치지만, 일본은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응큼한 속내를 드러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하물며 방사능을 바다에 배출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나라에는 일말의 협의도 없이 강대국 미국에게만 사전협의를 한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인정이 많은 나라여서인가, 아니면 단군시조의 홍익인간 사상을 내재화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냄비근성이 가득한 사대주의로 뭉친 민족성을 가진 나라여서인가.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난 한민족이라는 변하지 않은 사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민족을 너무도 뜨겁게 사랑하고 내 자신이 그 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는 그 누구보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작가이다. 가슴 가득 터져오르는 민족과 나라에 대한 열정을 오롯히 글로써 풀어내시는 작가.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너무나도 위대한 작품들이지만, 최근에 잇따라 출간되는 <불놀이>,<대장경>,<상실의 풍경>의 작가의 초기 장,중,단편들 또한 가슴을 울리는 매력적인 작품들이었다.
<상실의 풍경>에는 40년 작가생활의 포문을 열게 했던 저자의 데뷔작 '누명'을 비롯하여 '선생님 기행','20년을 비가 내리는 땅','빙판','어떤 전설','이런 식이더이다','청산댁','거부 반응','상실의 풍경','타이거 메이저'등 총 10개의 작품이 묶여져 있다.
거개가 1970년 초반의 작품들인데, 특히 데뷔작 '누명'과 '타이거 메이져'는 미군과 함께 생활하는 카투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에 종속된 이 나라의 현실을 꼬집고 있어 인상적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 바로 '서울대 총학생회장 미문화원 방화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시위현장마다 불렸던 노래는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걸고 나가자. '로 시작되는 [반전반핵가]였다. 비장하고 가슴먹먹하게 주먹을 내지르며 불렀던 이 노래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은 채 책을 읽으면서 절로 입술사이로 흘러나왔다. 작금의 현실에도 이 얼마나 유효한 노래인가.
조정래님은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을 쓰면서 20년 후에는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40년이 흘러도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논리 사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의 길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뿐인가. 어쩌면 한반도의 반토막뿐인 땅덩어리로 영원히 자리잡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드는 시점이다.
따라서 저자는 <상실의 풍경>에 실린 작품들이 비록 불행한 일이지만, 그만큼 생명성이 연장된다고 말하고 있다.
언뜻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상실의 풍경>속의 이야기들이 지나간 과거 속의 것들로만 느껴지는 내용이지만, 슬픈 역사의 빗줄기가 오늘도 우리 등뒤로 여전히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자 한다면 조정래님의 작품은 이 땅의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