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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비밀
틸만 뢰리히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카라바조 이전에도 미술이 있었고, 카라바조 이후에도 미술이 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 때문에, 이 둘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딱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바쿠스를 제목으로 한 그림. 더군다나 제대로 알고 있는 제목도 아니었다. 이 책을 계기로 알게 된 제목은 '병든 바쿠스'였다.
그리고 소설 속 내용대로라면 카라바조 자기자신을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지 7년 후, 또 다른 미켈란젤로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바로 '미켈란젤로 메르시 다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는 그가 태어난 도시이름이며, 미켈란젤로와 구분하기 위하여 이름 뒤에 카라바조를 붙이다가 종래에는 이름으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2010년 7월 18일은 카라바조의 사망 400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며, 현재 유럽 전역에는 '카라바조 전시회'열풍이 한창이라고 한다.
미켈란제로 메르시 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시대 말기와 바로크 시대 초기에 걸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활동한 화가로서, 기존의 화가들처럼 주로 성전의 성화들을 그렸으나, 신성성만을 추구하던 그림의 형식을 벗어나 대담하고 개성적인 구성과 자연주의적인 인물 묘사, 그리고 강렬한 명암 대조를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양식을 확립하여 '악마적 천재', '회화의 반 그리스도'라는 별명으로 동시대인들에게 불려졌다.
그러나, 사후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화폐에 등장할 정도로 그 나라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국민화가이자 예술의 역사를 바꿔놓은 천재화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인지...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라바조 없이는 서양회화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미켈란젤로에 그 존재감이 필적하는 카라바조는 그가 창시한 조명기법으로 바로크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의 위대한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설에서는 23개의 카라바조의 그림을 책 앞머리에 실어놓고 있는데, 소설의 전개는 이 실린 그림의 순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700p가 넘는 매우 두꺼운 분량의 소설이지만, 한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짜릿함 때문인지 순식간에 읽혀졌다. 앞 부분에 함게 실린 그림을 소설속에서 언급하는 방법대로 감상하는 재미 또한, 매우 크다.
비록 몇 줄로 남겨진 카라바조의 일생의 흔적을 단초로 하여 구성된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의 그림이 있어 실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카라바조의 삶은 그가 왜 위대한 화가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카라바조의 어린시절, 도제로 시작한 화가의 길, 그 길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뇌, 외로움, 동성애의 경험, 어린시절을 함께 한 파올라와의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동성애와 이성애, 에술혼으로 빚어지는 자기 분열 등..을 작가는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는 종교적인 근엄하고 신성시하던 화풍은 과감히 배격하고 오히려, 집시나 창녀, 거리의 부랑아들을 그림의 주인공들로 내세웠던 카라바조는 기존 화단의 강력한 질시를 받게 되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재능을 알아봐준 델 몬테 추기경, 그를 끝까지 후원했던 코스탄차 후작부인, 순정한 연인 파올라, 카라바조를 사랑하고 따르던 마리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부랑아 친구들이 있어 카라바조는 그만의 그림을 계속 그릴 수가 있다.
그림에서도 자유로웠지만, 사생활에서도 그 어떤 규제나 도덕적 제약없이 자유로웠던 카라바조는 잦은 폭행과 명예훼손으로 수사대상에 오르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과잉방어로 살인까지 하기에 이르러 힘겨운 도피의 길을 떠나게 된다.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로 떠돌며 밝은 세상으로 나오고자 했으나, 결국 39살의 나이에 모래사장에서 안타깝고도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한 위대한 화가의 인생을 밀도있게 그려낸 이 소설에서 우리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일화와 카라바조가 살아냈던 중세의 시대상, 그리고 안타깝고도 격정적이었던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다시 카라바조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