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봄이라고 단정을 하기에는 아직은 뺨에 달라붙는 바람이 차다. 주말마다 무거운 코트와 겨울의류를 정리하다가 도중에 그만두어 버린지가 벌써 몇 번째다.

올 봄은 쉬이 우리 곁에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옷장 깊숙이 들어가야 할 겨울옷을 정리하지 않은 이유가 무색할 정로도 아침마다 출근길에 내가 선택하는 옷차림은 봄을 부를 것만 같은 옷들이다.

아직은 하늘하늘한 치마나 꽃무늬 블라우스는 무리지만,  얇은 가디건에 남방셔츠를 받쳐 입고 화사한 스카프를 목에 두른 것은 이미 내 마음에 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으스스한 찬 기운에 살갗을 떨지라도 다가오는 봄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이다.

삼월 초에 들어서면 으레껏 비가 한 두차례 내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봄이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리는 비를마치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냥 반갑게 바라보며 우리는 봄비라고 부르지 않던가.

이번 3월에는 그런 봄비가 딱 한 번 내렸고, 그러나, 봄은 오지 않은 채, 오히려 꽃샘추위가 우리를 강타해 버렸다.

요즈음의 이런 날씨탓일까...예전에는 노오란 프리지아 향기로 다가오던 봄비 내음이 오늘날에는 왠지 음산하고 으슬하게 느껴져 버렸다.

 

"비의 육체는 추억이다. 비는 추억의 힘으로 떨어진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는 표지처럼 참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제목이다. 무지개빛을 당연하게 떠올린 나는 비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아주 달콤하게 기대했다.

예전의 봄비에 대한 기억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이 책에 실린 비와 관련된 중.단편들은 모두 등단한 지 10년에서 5년 사이의 30대 신예 여성작가들이어서 더욱 기대가 컸다.

작가의 개성대로 중단편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비이야기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나의 화사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작금의 날씨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렇게, 전반적인 분위기가 회색빛으로 다가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표지에 김미월 외 지음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나는 가장 먼저 김미월의 <여름 펜터마임>을 읽었다. 일곱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내 기호와 맞았던 작품이다..그래서 매우 편안하게 읽었다. 비와 얽힌 이야기는 우리네 삶에서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당혹스러움, 배신감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어서 공감이 갔다.

맨 처음 실린 소설은 장은진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이다. 제목이 식상하지 않고 뭔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내용은 그리고 내용에 대한 결론은 너무도 식상했다. "문득 삶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가벼울 수도 상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내용에 비해 결론이 너무 단순했다.

김숨의 <대기자들>은 평이한 소재로 기다림이라는 것을 내리는 비와 함께 적절하게 형상화한 솜씨가 돋보인다. 민망하지만, 일곱 명의 작가 중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이다.

윤이형의 <엘로>는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은 소설이었다. 동화스럽고  환타지스런 이야기였지만, 환타지풍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엘로>는 나쁘지 않았다.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엘로를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실은 자신도 모르게 지키고 있었는지."...따뜻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기억에 남을 거 같다.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은 폭풍을 동반한 비이야기다. 우리네 인생속에 도사리고 있는 폭풍을 불러오는 비이야기. 끔찍한 이야기.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공지영의 <도가니>를 연상케 했다.

황정은의 <낙하하다>는 안개비를 형상화하듯, 그렇게 모호하게 느껴진다. 3년째 낙하하고 있는 비, 그러다가 상승하는 비...비의 순환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새옹지마같은 삶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여러번 읽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유주의 <멸종의 기원>은 날씨표시상자와 함께 유언으로 '불행하거라'를 남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와 살고 있던 나는 재혼한 아빠에게서 '행복하거라'를 말을 듣는다..그날 문득 날씨표시상자의 태엽을 감다가 왕과 여왕으로 상징되는 행과 불행이, 건기와 우기가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낙하하다>와 마찬가지로 다시 읽어야겠다.

 

전반적으로 단편은 짧은 내용에 메시지를 담을려고 하다 보니, 그 메시지를 중복적인 표현으로 이어간 내용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임팩트한 내용보다는 의식의 흐름이라고나 할까...내게는 낯설었다. 스토리는 없이 메시지만 담긴 소설은 내게는 불포화지방산같다.

30대의 정서와는 나는 이제 완전히 유리되어 버린 것일까...그들이 들려주는 비이야기에 깊이 침잠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채 책을 덮는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내 기억 속 비이야기 여행으로 떠나본다. 다양한 색깔로 끌려나오는 기억, 단상, 사람, 이야기들...

타인들의 일곱가지 색깔 비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를 불러내주는 촉배제로 작용한다. 곧 절기상 우수가 다가올 것이고, 또 이내 장마도 시작될 것이다. 우리네 각자의 비와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지..혹은 어떤 색깔인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재미도 좋을 거 같다. 이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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