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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불멸의 사랑 - 레오나르도 다 빈치부터 에디트 피아프까지 위대한 예술가들의 사랑을 통해본 감정의 문화사
디트마르 그리저 지음, 이수영 옮김 / 푸르메 / 2011년 2월
평점 :
남들은 손자의 재롱이나 생각할 나이에 잔신보다 55세나 어린 울리케 폰 레베초의 사랑을 열망했던 대문호 괴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단순히 말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이 말은 상당히 로맨틱하면서도 멋진 말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이를 펼치고자 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이성적으로도 상당히 합리적인 말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세상살이에 때가 묻은 중년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임하는 것은 그만큼 살아온 삶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다치지 않고자 하여 관계 속에서 늘 얼마만큼의 간극을 두는 자세는 어찌 보면 삶의 정수를 맛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서 대문호 괴테는 사는 것이 아닌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 말하였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독일 태생의 저자 디트마르 그리는 이 책에서 총 18쌍의 드라마틱한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예술가에서부터 우리에게는 아직은 낯설지만 나름대로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감성과 지성의 촉수가 남다른 예술가들의 인생은 늘 접할 때마다 탄식을 내뱉게 하는 절절함과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모습들이 있어 더 드라마틱하게 회자되는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개는 진한 감동의 여운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순수와 본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성애, 그것은 관념적인 승화된 동성애라고 프로이트는 정의하고 있다. 그의 놀라운 예술세계는 바로 이런 승화된 사랑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일까.
카프카의 마지막 사랑 도라 디아만트, 그 유명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 테오 사라포, 피아프를 향한 테오의 사랑을 세간에서는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고 입방정을 떨어댔지만, 정작 당사자인 피아프가 그의 사랑을 느끼고 말년을 행복하게 보냈다면 충분히 족하지 않겠는가.
내가 한 때 무척 좋아했던 시인 H.하이네의 사랑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시가 매개가 된 그들의 정신적인 사랑은 비록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도 가슴아프게 각인된 모딜리아니와 너무도 매혹적인 그녀의 잔. 왠지 모르게 어두운 눈빛의 짚시분위기를 풍기는 잔의 모습은 그들의 사랑이 파국으로 끝날 것을 예감하게 했다. 모딜리아니의 결코 성실하지 못한 삶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곁은 지킨 잔의 사랑을 운명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에드가 앨런 포의 인생과 사랑이야기를 훔쳐보며 역으로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번씩이나 엘미라와 맺어지지 못한 포의 애달픈 사랑.
포와 어울려보이지 않는 소녀같은 엘미라와 사랑이야기지만, 이 역시 아름답고 뇌리에 남는 이야기다.
모차르트의 미망인과 모차르트를 흠모하는 니콜라우스 폰 니센의 숭고한 사랑은 비록 격정이거나 운명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였다.
72세에 자신보다 55세나 어린 처녀와의 결혼을 계획했던 괴테의 사랑은 일개 범인인 나로서는 그냥 한 줄의 이야기로 그칠 뿐, 도저히 감도 안 잡히는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괴테는 고통스런 실연의 상처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빛날 <마리엔바트의 비가>로 그려낸다.
"인간이 고통속에서 말문이 막혔을 때 신이 나로 하여금 괴로워하는 것을 말하게 하는구나" 자신의 지극한 고통스러움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긍심을 이런 말로 표현해내는 괴테는 대문호로 길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클림트의 자유분방한 애정 행각과 결합된 이름없는 여인들의 운명은 침묵과 망각에 가려져 있지만, 그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두었던 17세 연하의 마리 침머만은 예외다.
두 번이나 아내를 먼저 보내야 했던 렘브란트, 헨릭 입센, 요제프 로트, 리하르트 게르스틀, 요제프 바인헤버, 프레드 애스테어, 나폴레옹...등. 나폴레옹은 당연히 조세핀 황비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될 줄 알았는데,,,어이없게도 세인트루이스섬에서 유배생활할 때의 나폴레옹 가슴에 찾아온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이란 생각이 읽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예술가들의 사랑이 꼭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어지지 못한 사랑이 더 많았고, 이어지지 못했기에 더 애틋함으로 세인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의 사랑이 아닌 범인들의 사랑이야기로 접했다면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책임지지 않는 사랑이 많았고, 그것보다 더 내 신경을 건드린 부분은 아무리 사랑이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다지만, 엄청난 나이 차이의 커플들이었다.
개인의 사랑이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코 아니지만, 그리고 몇몇의 사랑이야기는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하나같이 소녀같고 인형같은 숙녀와 중년 이후의 성공한 남자와의 사랑이야기는 여자인 내게는 매우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인들은 에디트를 향한 테오의 사랑은 색안경을 끼면서도 왜 66세의 슈니츨러를 사랑한 수잔네의 사랑은 긍정하는가. 이것은 기본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넘어서는 순수한 사랑은 여자만이 가능하다는 것은 전제하는 것인가.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깊이 학습되어 내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예술가들의 불멸의 사랑>을 접하면서 해보게 된다.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