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인가,...

후지와라 신야를 <동방기행>이라는 아주 독특한 여행서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많은 여행서를 접했지만, 후지와라의 여행서는 그 동안 내가 만났었던 여행서와는 너무도 달라서 평소 여행서에 대한 생각을 아주 완벽하게 전복시켜 주었다. 음울하고 음습하고 그러면서도 왠지 외면할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을, 그 찰나의 진실들을 말해주는 듯한 그의 사진과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흔히 아름다운 풍경이나 역사적 장소에서 개인의 감상위주로 써내려간 여행서들은 감탄사를 동원하면서 가볍게 읽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그러나 후지와라의 책은 결코 그렇게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깊이있는 공부와 성찰로 풀어낸 여행지에서 건져올린 그의 단상들은 그저 단상에 그치는 것들이 아닌 철학적, 사회적, 역사적, 계급적 문제들을 총망라하는 물음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곤 했다.

이번의 <여행의 순간들>은 그러나 기존의 그의 여행서와는 조금 다르다. 무겁게 다가오던 주제의식보다는 그동안의 여행서에는 담지 않았던 여행의 일상에서 겪었던 단순하고 즉물적인 사건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지와라만의 매력이 감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후지와라가 지난 시절에 겪었던 여행지에서의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즐기면 그만이다.

그는 이를 "여행의 일상에서 수도 없이 발에 채였던 돌맹이"이라고 표현하며 이 원석들을 가공하지 않고 독자 앞에 그냥 내던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도, 한국, 미국, 캐나다, 일본, 티베트, 쿠바, 등지에서 그가 겪었던 사건들은 여행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에피소드로 꽉 차 있다.

그냥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닌 적극적으로 그 생활에 뛰어들어 밀착한 여행을 했던 후지와라의 모습은 세계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감동과 용기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돌돔공방으로 치달은 횟집에서의 에피소드나 목포에서의 간첩오인사건등은 비록 우리나라 지난시절의 모습이지만,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며, 티벳사원에서 야반도주하는 승려의 대다수가 40대가 압도적이라는 통계와 그에 대한 저자의 사유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흔히 40을 불혹이라 하지만, 이는 역설법이 아닌가 나 또한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오히려 40은 미혹의 시절이었다. 저자는 사람이 늙음을 의식하는 40대가 자신의 위치를 옮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오히려 미혹의 나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미혹되는 40대가 인간적이라고 결론을 짓는 저자의 마음 언저리가 깊이 공감되었다.

저자는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저 화려하다거나, 유명한 것에 포인트를 두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그 나라만이 특색과 생동감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여행지. 해서 그는 전쟁 혹은 고도성장과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가 하나로 뭉쳐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나라는 변변한 구경거리가 없다 하여 방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정한 여행자의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인도의 신분과 직업에 따른 차별제도에 대한 그의 사유도 인상깊다. 어쩌면 세상은 단순한 이념과 지성이 널리 통용될 만큼 단일하지는 않기에 제도화된 차별로 인간 존재를 보호하겠다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긍정적인 이해의 시선이 직접 몸으로 부딛힌 저자의 경험속에서 나온 것이어서인지 공감이 되기도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경험도 할 수 없듯이, 여행지에서도 적극적인 그의 자세(코브라독을 마시는 것)는 여행을,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다.

3D업종 인력난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유입문제를 차별의 관점이 아닌 상생의 관점으로 보자는 젊은치들의 견해에 일침을 가하는 저자의 견해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 그의 견해가 단순히 국수주의, 민족주의의 개념이 아닌 경험과 결과의 산출로 표현되어 있음을 볼 때, (유럽에서도 자국민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다)우리도 간과하지 말고 주의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발리에서의 공심채꽃으로 낚시한 구라미 요리, 아프리카 세이셸 제도의 작은 섬에서 보라성게의 만찬과 떠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검은 개 해피와의 만남은 어느 동화속에서나 만날 법한 환상적인 에피소드들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은 좋아했지만,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이 책 속, 저자의 글을 통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쿠바여행에서 알게 된 내용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말한다.

셔터는 염불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촬영자가 '기도'하면서, 또는 '소망'하면서 셔터를 누르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눈앞의 대상이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이다.

가슴과 몸으로 겪는 깊은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한 줄의 깨달음은 이래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힘이 있다. 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상은 절제되고 사유가 깊이 개입하는 그의 여행 글쓰기 방식은 이 책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동양기행>에서 크게 다가와 오히려 가슴을 무겁게 했던 그의 사유의 세계가 이 책으로 조금은 수월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후지와라의 책은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색감의 그만의 독특한 사진세계가 무겁다고 하여 한권만 만나보고는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는 사람도 보았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만큼 후지와라를 이해하는데 이책을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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